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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r 25. 2018

깁스 속 뼈를 다시 붙게 만드는 재료

<레이디 버드> 그레타 거윅 2017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에 한 고등학생이 살고 있다. 부모가 지어준 크리스틴이라는 이름 대신 스스로가 지은 이름 레이디 버드(시얼샤 로넌)를 사용하는 그녀는 하루빨리 새크라멘토를 벗어나 뉴욕으로 향하고 싶어 한다. 부모의 결정으로 카톨릭 학교에 다니게 된 레이디 버드는 그곳에서의 마지막 1년을 보낸다. 영화 <레이디 버드>는 <미스트리스 아메키라>, <프랜시스 하>, <매기스 플랜> 등의 영화에서 독보적인 캐릭터로 등장했던 배우 그레타 거윅의 감독 데뷔작이다. 새크라멘토에 살았던 본인의 어린 시절을 토대로 한 <레이디 버드>는 그간 그레타 거윅이 연기해온 캐릭터들이 왜 뉴욕으로 향하고 그곳에 머물게 되었는지에 대한 프리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동시에 레이디 버드가 새크라멘토라는 지역에 가진 애증과 어머니 매리언(로리 멧칼프)에 지닌 애증을 교차시키며 그 관계성을 영화로 그려내기도 한다. 어쩌면 94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에 담기엔 긴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레타 거윅이 지닌 특유의 리듬감은 이를 가능케 하며 신선한 영화적 경험을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영화는 “캘리포니아의 쾌락주의를 말하는 사람들 중 새크라멘토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낸 사람은 없다”라는 조안 디디온의 문장을 인용하며 시작한다. 문장이 지나간 이후 스크린에 등장하는 것은 자신의 현재가 지루해서 견딜 수 없다는 표정의 레이디 버드이다. 매리언이 운전하는 차에 타서 개학으로 향하는 레이디 버드는 ‘대학은 꼭 뉴욕으로 가고 싶다’며 운전자와 말다툼을 이어간다. 익숙한 영화라면 말다툼 끝에 차는 학교에 도착하고, 지루한 카톨릭 학교의 일상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레이디 버드의 모습이 러닝타임 내내 등장할 것이다. 그러나 그레타 거윅의 영화에서 레이디 버드는 말다툼 중에 차에서 뛰어내려버린다. 덕분에 핑크색 팔 깁스는 레이디 버드의 시그니처처럼 영화 내내 등장한다. 그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으로 떠나기 위한 마지막 한 해 동안 겪는, 매리언과의 갈등, 뉴욕에 있는 대학에 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 첫 연애와 첫 섹스에 따라오는 생각들, 각자의 시기를 보내는 친구들과의 차이 등에서 오는 갈등 등이 레이디 버드의 깁스 안에 함께한다. 시간이 지나고 팔이 회복되면 깁스를 풀어야 하듯, 이러한 시기도 결국 지나가기 마련이다. 쾌락주의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새크라멘토, 카톨릭 학교에 다니는 레이디 버드는 그 지겨운 시간 동안 오른팔의 뼈가 다시 붙으며 더욱 단단해진 것처럼 자신 스스로도 더욱 단단해졌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이야기 자체가 지겹지만 말이다. 그레타 거윅은 이 지겨운 이야기를 다시 한번 꺼내 든다. <레이디 버드>가 익숙한 성장영화들과 다른 지점은 깁스 속 부러진 뼈를 다시 붙게 만드는 재료들이다. 새크라멘토에서 나고 자란 그레타 거윅 본인의 경험이 녹아들어 간 디테일들은 다양한 맥락을 부여하며 영화를 풍성하게 만들어낸다. 가령 모녀관계에서 나오는 애증과 지역에 관해 가지는 애증을 병치하며 레이디 버드가 가지는 감정선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거나, 조안 디디온의 문장과 존 휴즈의 영화,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가사 등 여러 대중문화 요소를 인용한다거나, 관객의 예측을 빗나가면서도 호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독특한 리듬감(가령 중고샵에서의 레이디 버드와 메리온 또는 뮤지컬 수업의 풋볼 코치)은 <레이디 버드>만의 고유한 매력을 자아낸다. 결국 그레타 거윅이 <레이디 버드>를 통해 증명한 것은 모두의 삶엔 각자의 리듬이 있고, 그것의 충돌 사이에서 각자는 살아간다라는 명제이다. 이는 리처드 링클레이터가 <보이후드>를 통해 증명한 것과도 유사하면서, 그것을 온전히 한 여성의 이야기로 풀어냈다는 점이 <레이디 버드>가 지닌 가장 큰 성취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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