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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r 27. 2018

멈추지 않는 하라 카즈오의 카메라

<센난 석면 피해 배상소송> 하라 카즈오 2017

 석면 문제가 내게 가시화된 것은 중고등학교 때였다. 아파트 길 건너 구역의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철거되는 건물에 사용된 자제에서 나온 석면가루가 어린이집과 학교를 비롯한 인근 지역에 흩날리고 있다는 보도를 통해서였다. 때문에 재개발구역 인근 거주자들과 재개발을 주관하는 건설사 사이에 법정공방이 이어졌고, 본래 내가 졸업하기 전 입주가 시작됐어야 할 뉴타운 지역에는 대학교 새내기가 되고 난 이후에야 입주민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을 때 <센난 석면 피해 배상소송>이라는 직관적인 제목을 접하고 나서 저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중학교를 들어가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약 6년의 기간 중 대부분의 시간 동안, 재개발 공사는 석면과 관련된 소송으로 멈춰있었고 어린 시절 친구들이 살던 골목길은 전시의 폐허처럼 변해 멈춰있었다. 하라 카즈오 감독의 <센난 석면 피해 배상소송>의 피해자들이 8년 반 간의 투쟁을 진행하는 것을 보고 위와 같은 생각이 들었다. 

 8년 반이라는 기나긴 시간을 기록한 215분의 기나긴 영화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영화에 등장하는 이들의 얼굴이다. 피해자의 얼굴. 그들의 가족과 유가족의 얼굴. 변호인단의 얼굴. 연대자의 얼굴. 영화를 찍는 감독의 얼굴. 영화를 보면서도, 영화를 보고 나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그들의 얼굴이다. 그들의 얼굴은 그림으로 박제되어 스크린에 등장하기도 하고, 프리즈 프레임과 함께 사망했다는 정보가 제시되기도 하고, 장례식장의 영정과 창백한 시신으로 변한 얼굴로 등장하기도 한다. 원고 측 사망자들의 얼굴과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며 마무리되는 영화는 그들의 얼굴을 관객의 뇌리 속에 각인시킨다. 석면으로 인한 각종 질병을 앓으며 점점 야위어가고, 코에 산소호흡기 튜브를 끼지 않으면 일상을 이어갈 수 없는 그 얼굴들은 국가가 은폐하려 했던 열악하고 위험한 노동현장의 얼굴이다. 기나긴 소송의 과정을 담는 하라 카즈오의 카메라는 그들의 얼굴에서 분노, 체념, 인생, 위로, 연대, 승리, 기쁨, 진보를 읽어낸다. 그 얼굴 중에는 일제강점기에 개발된 한반도의 석면 광산에서 일했던 사람의 얼굴도 담겨있다. 이러한 역사적 관계성과 얼마 전까지 한국의 재개발 구역을 비롯한 곳곳에서 벌어지던 석면 문제는 <센난 석면 피해 배상소송>이 단지 물 건너 다른 나라의 이야기만이 아니라는 점을 (적어도 한국 관객들에게는) 확실하게 어필한다. 

 이러한 측면만 바라본다면 어쩌면 단순한 투쟁에 대한 기록과 사법체계를 통한 승리의 서사만으로 영화가 구성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하라 카즈오의 카메라는 멈추지 않는다. 멈추지 않는다는 말이 <센난 석면 피해 배상소송>의 카메라와 가장 어울리는 수식어인 것 같다. 영화는 단순히 투쟁을 기록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이번 인다다큐페스티발에서의 상영에서는 제공되지 않았지만, 영화 속에 삽입된 휴식시간 이후의 분량은 이러한 투쟁과 운동이 지닌 방향성에 대한 확장과 그다음의 전진을 논한다. 대법원의 판결로 원고는 배상을 받았고 후생노동청 장관이 직접 센난을 방문해 사과하기도 했지만, 판결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1972년 이후에 노동을 시작한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은 인정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1958년과 1971년 사이의 노동자만 배상 대상에 포함시키는 판결은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석면 산업의 피해자들을 포괄하지 못한다. 더 나아가 석면 공업지대 인근 지역의 거주자들, 수치에 포함되지 못한 피해자들 등의 문제도 남아있다. 게다가 과거 군국주의 일본이 남긴 한반도의 석면광산과 산업, 이탈리아와 캐나다 등 해외 여러 국가의 석면문제 등은 (영화 속에서 언급되는 시점에서는) 미해결 상태에 머물러 있다. 이를 이야기하는 아오키 씨의 말대로 ‘센난 석면 피해 배상소송’의 결과는 그 자체로 시작이다. 하라 카즈오의 카메라는 그 시발점을 마련하기 위한 투쟁의 방식과 이후 이어질 운동의 방향까지 다가간다. 215분의 기나긴 러닝타임을 지나 <센난 석면 피해 배상소송>이 당도한 지점은 또 다른 시발점이자 이를 지속하겠다는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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