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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Apr 13. 2018

영리한 장르영화의 표본

<콰이어트 플레이스> 존 크래신스키 2018

 배우이자 감독인 존 크래신스키의 세 번째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웰메이드 호러’라는 수식어가 썩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갑자기 지구에 나타난 괴생명체들은 소리를 낸 사람을 찾아가 살해하고, 리(존 크래신스키), 에블린(에밀리 블런트), 레건(밀레몬트 시몬스), 마커스(노아 주프)로 구성된 한 가족은 괴생명체의 위협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것이 영화의 설정이다. 보통 신선한 설정에 비해 각본의 힘이나 연출 등이 아쉬워 영화 전체가 지루해지는 많은 저예산 영화들과는 달리,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힘 있는 연출로 소재의 신선함을 러닝타임의 마지막까지 밀고 나간다. 영화의 전체적인 서사는 다소 익숙하지만, 기획/각본/연출/주연을 모두 맡은 존 크래신스키의 능력은 기대 이상으로 즐거운 장르영화로 <콰이어트 플레이스>를 이끌어간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 든 첫 생각은, 존 크래신스키는 호러영화의 미장센은 좋아하지만 호러영화 자체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그 장면만으로도 너무나 유명하여 관객들의 뇌리에 박힌 여러 장면들을 가져온다. <나이트메어>의 유명한 욕실 장면, <에이리언>의 크리처 디자인과 그것이 등장하는 장면 등은 적재적소에서 장르영화 팬들을 만족시킴과 동시에 영화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다만 존 크래신스키가 호러영화 자체에 대한 호감이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이유는 그중에서 서스펜스를 연출하는 방식 때문이다. 영화는 히치콕의 스릴러 영화를 연상시키는 서스펜스 연출 방식을 택한다. 히치콕이 자신의 영화 속 서스펜스를 설명하며 언급한 ‘탁자 밑의 폭탄’과도 같은 시한폭탄 방식의 긴장감이 <콰이어트 플레이스>의 러닝타임 90분을 지배한다. 특히나 이러한 시한폭탄이 동시에 중첩되며, 네 가족을 각각 교차편집으로 보여주는 장면과 그것에 대한 해결 방식은 놀랍고 즐거운 순간이다. 존 크래신스키는 히치콕의 걸작 <싸이코>의 욕실 장면을 연상시키는 장면을 집어넣어 자신의 연출적 지향점을 확실히 하기도 한다. 

 <콰이어트 플레이스>가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데 사용된 세부 설정 역시 흥미롭다. 소리를 낼 수 없는 세계관에서 에블린은 만삭의 임산부이고, 딸인 레건은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이다. 소리를 낼 수 없지만 소리가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인 임신과, 소리를 내면 죽는 세상에서 소리를 듣지 못하는 인물이라는 아이러니는 관객이 끝없이 긴장감을 놓지 못하도록 유도한다. 레건이 청각장애인이라는 설정은 등장인물들이 소리 낼 수 없는 세상에서 자연스럽게 수화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좋은 설명이기도 하다. 게다가 극장에서 보기에 최적화된 사운드 디자인(소음이 차단된 극장 속의 고요함은 몰입감을 제대로 높여준다)은 캐릭터들이 지닌 성격을 십분 활용한다. 때문에 두 캐릭터가 합심하여 만들어낸 엔딩의 쾌감은 배가된다. 또한 청각이 극대화되었다는 설정의 크리처 디자인은 (물론 익숙한 레퍼런스가 보이지만) 괴수영화 팬에게 기대 이상의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배우 존 크래신스키에게 건 기대감이 없었기 때문일까, 연출가로서의 능력에도 묘한 의구심을 품고 극장을 찾았다. <콰이어트 플레이스>가 호러/스릴러 장르에 오래 남을 걸작은 아니겠지만, 아마 2018년에 가장 즐겁게 관람한 장르영화 리스트엔 필수적으로 오르게 될 영화가 아닐까 싶다. 물론 지겹기 짝이 없는 부성애가 강조되는 부분처럼 ‘굳이?’라는 생각이 드는 장면들 또한 존재한다. 그럼에도 <콰이어트 플레이스>가 주는 장르적 재미는 약간의 아쉬움을 달래주기에 충분하다. 두 아이들을 연기한 밀레몬트 시몬스와 노아 주프는 각각 자신의 이름을 알렸던 <원더스트럭>과 <원더> 이후 새로운 대표작을 얻은 것처럼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언제나처럼 좋은 연기를 선사하는 에밀리 블런트의 모습 또한 <콰이어트 플레이스>가 좋은 작품이 되는데 큰 공을 세운다. 즐거운 장르영화 한 편을 만나고 싶다면,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여러모로 후회하지 않을 작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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