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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y 12. 2018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 후기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에 다녀왔다. 작년 처음 다녀오고 이번이 겨우 두 번째 방문일뿐인 전주영화제 초짜이지만, 전역과 복학 사이 가장 여유로운 시기이기에 7박 8일의 일정을 짜고 28편의 영화를 예매했다. 오랜 기간 머물다 보니 체력적인 문제도 발생하고, 좁고 답답하게 느껴지는 영화의 거리에 약간 숨이 막히는 것 같은 일정이었다. 5월 4일 출발해 여러 만족스러운 영화들을 즐기며 중간중간 맛집들을 찾으며 쉬었지만, 여러모로 피곤하여  마지막 날 3편의 영화(<네이팜>, <과부 마녀>, <세 마리의 슬픈 호랑이>)는 취소하고 5월 11일 오전 일찍 서울로 올라왔다. 그럼에도 최근의 영화제들 중 가장 안정적인 라인업을 선보인 회차이기에 소위 '지뢰'작은 많지 않았다.(남들은 하나도 없었다는데 나는 왜 지뢰가 3개나 있었을까) 이래저래 즐겁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했던 영화제였기에, 다음부터는 전주영화제 일정을 5일 이상 계획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며 이번 영화제에서 관람한 작품들의 간단한 후기를 남긴다. 영화 중 몇 편은 긴 리뷰를 남길 예정이다.



1일차: 5월 4일

<스탈린의 죽음> 아르만도 이아누치 2017

한 남자가 뇌출혈로 쓰러진다. 그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모여든 사람들은 의사를 부르는 대신 가식적인 슬픔을 보이며 앞으로 각자의 거취를 걱정한다. 쓰러진 사람의 이름은 스탈린, 소련의 독재자이다. 영화는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가 쓰러지고 사망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스탈린의 사망 이후 그의 최측근들이 벌이는 권력투쟁이 이 영화의 줄거리다. 아르만도 이아누치는 이를 날이 선 정치 스릴러로 그려내는 대신 블랙코미디를 택한다. 온갖 육두문자와 황당한 상황들, 웃지 않을 수 없는 슬랩스틱이 107분의 러닝타임 동안 펼쳐진다. 우스운 만큼 살벌하며, 살벌한 만큼 비웃음이 나오는 영화 속 광경은 스탈린 체제 하의 소련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웠으며 그렇기에 공포스러웠는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스티브 부세미, 사이먼 러셀 빌, 제프리 탬버, 제이슨 아이삭스, 올가 쿠렐린코 등의 코미디 연기가 빛을 발하는 작품.

<24 프레임>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2017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유작인 <24 프레임>은 그가 무빙 이미지를 다루는 작가로서의 열망을 담은 4분 30초짜리 단편 24편을 연작 형식으로 묶은 작품이다. 영화가 시작하면서, “회화 작가는 단일 프레임 안에 이야기를 담지만, 영화 작가는 24 프레임의 무빙 이미지를 열망한다”라는 자막이 뜬다. 영화의 첫 파트는 어느 겨울 산골 마을을 담은 그림으로 시작한다. 멈춰있는 그림 속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순간 관객은 영화 프레임 속 움직임에 주목하게 된다. 뒤이어 강아지, 까마귀 등이 움직이고 눈이 내리고 소리가 난다. 여기서 관객은 카메라도 움직이지 않는 아주 단순한 무빙 이미지 속에서 이야기를 찾아내고 내러티브를 구성해낸다. 이어지는 영화의 다른 프레임들도 마찬가지다. 관객은 고정된 카메라가 담아내는 무빙 이미지들 속 운동성을 관찰하면서 그 안에서 내러티브를 도출해낸다. 최초의 영화(뤼미에르)를 연상시키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마지막 작품은 무빙 이미지 그 자체에 대한 그의 열망으로 가득하다.

<프로토타입> 블레이크 윌리엄스 2017

1990년 텍사스를 강타한 허리케인이 남긴 사진과 영상 등의 잔해를 3D로 컨버팅하고 그걸 SF적으로 재구성한 작품...인데 3D로 펼쳐지는 오래된 영상들과 플리커의 향연, 전송되는 신호를 영상화한 것 같은 일렁이는 이미지들은 당황스럽기만 하다.


2일차: 5월 5일

<낯선 자들의 땅> 오원재 2017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간 철은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귀휴를 나오게 된다. 다시 돌아온 고향은 원전이 폭발하여 제한구역이 되어 있고, 형인 찬은 피폭 구역 안에서 식량 등을 구해 아내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원전이라는 소재에 홀려 예매한 작품이지만, 정작 작품이 중요시하는 것은 누명을 쓰게 된 철이 직접 범죄를 저질러 넣고 종교인이 된 나성을 대면하는 것이 중요한 모티프로 작용한다. 결과적으로 원전 사건은 그들에게 절박한 상황을 부여하는 장치로만 기능할 뿐이다. 때문에 <낯선 자들의 땅>은 익숙하고도 지겨운 종교적 속죄에 관한, 조악한 또 한 편의 이야기일 뿐이다.

<누가 총을 쐈는지 궁금해?> 트래비스 윌커슨 2017

트래비스 윌커슨은 자신의 증조부가 저질렀던 인종차별적 범죄를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것의 계기는 흑인 소년을 살해한 경찰 조지 짐머맨의 무죄 선고였다. 증조부의 범죄를 파고들던 그의 조사는 인종차별 범죄, 성차별적 범죄들이 어떻게 벌어졌으며, 백인 남성인 자신의 증조부와 흑인 남성/여성인 피해자들과 그가 같은 공간에서 전혀 다른 세계를 살아가고 있었는지를 드러낸다. 영화는 영화 <앵무새 죽이기>, 감독 증조부의 홈 무비, 감독이 직접 촬영한 푸티지와 인터뷰, 다양한 자료영상, 어느 인권운동가를 기리는 포크송 등 다양한 영상과 사운드를 동원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감독 본인의 내레이션은 이들을 하나로 연결하며 1940년대에서 60년대에 이르는 인종차별, 그리고 이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성적 폭력에 대해 서술한다. 너무 많은 내레이션이 조금은 버겁기도, 지루하기도 하지만 관객은 트래비스 윌커슨과 함께 그의 증조부가 저지를 차별괴 폭력의 역사를 파헤친다는 영화의 설정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

<더 큐어드> 데이빗 프레인 2017

메이즈 바이러스가 세계를 강타하고, 감염되어 좀비로 변한 사람들이 도시를 초토화시킨다. 시간이 흘러 치료제가 개발되고 감염자의 75%가 회복된다. 하지만 감염 당시의 기억은 지울 수 없다. <더 큐어드>는 익숙한 좀비 영화의 서사를 벗어나, 좀비 세상 그 이후를 그리려고 한다. 영국 드라마 <인 더 플레쉬> 등에서 앞서 시도된 바 있는 이야기다. 영화는 꽤나 현실적인 톤으로 사건에 접근한다. 치료된 사람들은 사회로 복귀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비감염자들은 그들을 살인마라 부르며 차별한다. 결국 코너라는 감염자가 테러를 감행하기에 이른다. <더 큐어드>의 이야기는 다양한 현실 속 차별에 기반을 둔다. 난민, 인종, 성 소수자(메이즈 바이러스 그 이루를 다루는 몇몇 모습은 에이즈 바이러스를 연상시키고, 등장인물 중 몇이 퀴어로 등장하기도 한다) 등에 대한 차별이 이야기 속에서 연상된다. 좀비 영화의 장르적인 재미를 충족시키기 위한 클라이맥스로 서사가 돌진하기만 한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특히 엔딩의 허망함이 그렇게 다가온다), 현실에서 유사한 사건이 일어난다면 벌어질 사건들이 나열되는 것으로도 느껴진다. 약간의 아쉬움이 있지만 어떤 상상력을 제시하고 일정 부분 성공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작품이며 좀비 영화의 팬이라면 즐겁게 볼 수밖에 없는 작품이 아닐까?

<한나> 안드레아 팔라오로 2017

체력 문제로 초반부를 조금 졸았지만, 이 영화로 베니스 여자연기상을 수상한 샬롯 램플링의 놀라운 연기가 돋보인 작품이다. 그가 연기한 한나는 어떤 사건으로 인해 남편이 감옥으로 수감되고 외로운 생활을 이어가는 인물이다. 그가 연기수업을 받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자식과 불화가 있는 모습, 가정부로 일하는 모습, 홀로 남은 집에서 말없이(종종 <한나>는 샬롯 램플링의 표정과 육체로만 이루어진 무성영화 같다는 느낌을 준다) 생활하는 모습 등을 보여준다. 외로움과 무력함 속에서 살아가는 노년 여성의 육체와 표정이 안드레아 팔라오르 감독이 보여주고자 한 이미지가 아닐까? 관객은 한나를 쫓아가는 카메라를 통해 삶 속에서 벌어지는 불가항력적인 사건과 시간을 경험하고, 끝내 사라질 수밖에 없는 나이 든 육체를 직시하게 된다. 러닝타임 내내 관찰의 장소였던 지하철이 프레임 속으로 광폭하게 침투하여 한나의 육체를 싣고 사라지는 순간의 강렬한 무력감은 <한나>가 보여주고자 한 이미지를 단박에 설명하는 듯하다.


3일차: 5월 6일

<겨울밤에> 장우진 2018

<춘천, 춘천>에 이어 장우진 감독이 자신의 고향인 춘천을 배경으로 삼은 작품이다. 겉으로 보이는 틀은 전작과 유사하다. 영화는 춘천을 배경으로 중년의 커플과 20대 커플이 어떤 공간을 공유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려낸다. 묘하게 홍상수의 향기가 나는 이 작품은 중년의 커플을 분열시키고 20대 커플을 그들의 과거인 것처럼 설정함으로써 시공간의 연속성을 만들어낸다. 분열된 중년의 커플 중 남자는 옛 추억(사랑)이라는 유령을 쫓아다니고, 여자는 20대 커플과 장소를 공유하며 자신을 회복한다. 기묘하게 접착된 두 커플의 시간은 봉합인지 분열의 유지인지 알 수 없는 중년 커플의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판타지아> 제임스 알가 외 10명 1940

디즈니의 <판타지아>는 개봉 당시 난해하다는 혹평과 함께 흥행에 실패했던 작품이다.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의 지휘 아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8개의 프로그램에 맞춰 다양한 애니메이션이 하나의 콘서트처럼 펼쳐지는 작품이기에 그러한 평이 일부 이해는 가지만, 극장에서 이 작품을 보고 있자면 시청각적인 황홀경에 이르러 그저 스크린을 볼 수밖에 없다. 바흐 ‘토카타와 푸카 D단조’ 차이코프스키 ‘호두까기 인형 조곡’ 등 익숙한 클래식 음악들과 어우러지는 애니메이션들은 때로는 추상적이고 때로는 이야기를 품고 있기도 하다. 음악을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쇼가 이제는 익숙할지도 모르겠지만, 초기 디즈니 애니메이션 특유의 운동(행군과도 같은 캐릭터들의 행렬)과 사운드트랙을 시각적으로 등장시키는 유머 등 발군의 기량을 선보이는 디즈니의 걸작은 그저 감동적일 뿐이다.

<사라와 살림에 관한 보고서> 무아야드 알라얀 2018

사라는 이스라엘 여자고 살림은 팔레스타인 남자다. 둘은 각자 가정이 있지만 둘은 은밀한 사랑을 나누고 있다. 그러나 어떤 사건으로 인해 살림이 체포되고, 위기가 찾아온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사라와 살림에 관한 보고서>는 제목 그대로 보고서를 읽는 것만 같은 작품이다. 동/서 예루살렘으로 갈라져 있는 두 민족은 단순한 치정극으로 끝날 이야기에 독특한 결을 부여한다. 살림의 체포로 인해 사건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관계에 얽힌 문제로 확장되고, 사라와 살림 그리고 사라의 남편인 이스라엘 육군 대령 다비드와 임신한 살임의 아내 비산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사건 안에서 스스로의 위치를 붙잡으려 행동한다. 치정극이기에 굉장히 감정적인 작품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영화는 무덤덤하게 느껴질 정도로 네 인물을 쫓으며 이를 기록한다. 네 인물이 처한 상황을 설명하는 초반부(특히나 지역적인 관계를 잘 모르는 관객에게는 더더욱)는 살짝 지루하긴 하지만, 각자의 인물이 주어진 상황 안에서 무엇이 최선인가를 고민하고 행동하는 후반부는 답답한 그곳의 현실을 정확하게 전달한다.


4일차: 5월 7일

<예조 산책하는 침략자 극장판> 구로사와 기요시 2017

<산책하는 침략자>와 세계관을 공유하는 드라마 <예조 산책하는 침략자>를 극장판으로 재편집한 작품이다. 독특하게도 드라마의 전체 분량보다 조금 긴 140분의 러닝타임을 지닌 작품이 되었다. 이는 몇몇 장면이 추가되었기 때문인데, 몇 캐릭터의 꿈 장면이 삽입되어 있다. 구로사와 기요시 특유의 불안감을 조성하는 연출이 어떤 정점에 달한 이 작품은 기존의 영화판 <산책하는 침략자> 보다 더욱 기요시의 정점에 선 작품으로 느껴진다. 사랑이라는 개념의 공유 가능성과 불안감을 동시에 드러내며 마무리된 영화판과 유사하면서도 조금 더 비관적으로 보이는 <예조>의 엔딩은 공포스럽다. 

<덤보> 사무엘 암스트롱, 노만 퍼거슨 1941

아주 어렸을 때 봤던 기억만을 가진 채로 디즈니의 고전들을 다시 보는 것은 언제나 흥미로운 경험이다. 그때는 몰랐던, 혹은 잊어버렸던 영화 속 요소들이 새롭게 다가오며 더더욱 열광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한다. 아마 유치원 때 이후 처음 보는 것만 같은 <덤보>는 후자에 가까웠다. 미국의 2차 세계대전 참전 직전에 개봉한 <덤보>는 동물학대, 인종차별, 장애 등의 요소들을 담은 착한 애니메이션의 겉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결국 서커스단 안에 머무는 온건한 엔딩과, 그것과 함께 제시되는 프로파간다에 가까운 덤보에 대한 신문기사들을 보고 있자면 디즈니가 2차 대전 당시 수많은 선전용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할 수밖에 없다. 

<녹색 안개> 가이 매딘, 에반 존슨, 게일런 존슨 2017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는 이후 등장한 수많은 영화에 영향을 끼쳤다. 가이 매딘과 존슨 형제의 신작 <녹색 안개>는 <현기증>과 같은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한 수많은 영화 및 TV 프로그램들의 푸티지를 모아 <현기증>을 재구성한다. 다양한 푸티지들의 장면들을 모아 <현기증>의 시퀀스를 유사하게 재현하고, <현기증>의 유명한 녹색과 샌프란시스코의 안개를 결합하여 시공간을 묘하게 뒤트는 이미지들로 <현기증>을 재해석한다. <녹색 안개>에는 히치콕의 <현기증>과 <새>를 비롯한 고전영화부터 <더 록>, <고질라>(2014), <샌 안드레아스> 등 현대 블록버스터를 아우르는 다양한 영화들의 푸티지가 등장한다. 같은 공간, 다른 시간대, 다른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기묘한 시공간의 결합은 영화를 통해 한 지역 자체를 재해석하려는 시도로 읽히기까지 한다. 동시에 <현기증>이라는 맥락만 파악한다면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매우 시네필리한 작품이기도 하다. 참고로 스틸컷의 장면은 영화 속의 장면이 아닌, 영화 상영과 연주가 동시에 진행된 <녹색 안개> 상영회의 사진이다.

<추방자들의 대화> 라울 루이즈 1975

이번 전주영화제 특별전을 통해 라울 루이즈의 영화를 처음으로 관람하게 되었다. 처음 접한 라울 루이즈의 <추방자들의 대화>는 쉽지 않은 작품이었다. 파리로 망명 온 칠레 좌파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다큐멘터리와 극의 경계에 서있다. 촬영자의 존재감이 강하게 느껴지는 (등장인물들은 종종 카메라를 쳐다보며 촬영자에게 말을 걸거나 인터뷰를 하고, 촬영자가 인물들에게로 손을 뻗기도 한다) 이 작품은 라울 루이즈 본인이 칠레에서 파리로 넘어오면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영화가 제작된 당시 칠레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면 더욱 풍부하게 다가올 영화였만,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 아쉽다.


5일차: 5월 8일

<비스비 1917> 로버트 그린 2017

1917년 7월 12일, 멕시코 국경에서 고작 11km 남짓 떨어진 마을 비스비에서 대규모 추방이 일어난다. 비스비 추방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1차 세계대전 당시 구리를 텅해 큰 수익을 올리던 광산회사가 인금인상, 안전 노동 등을 주장하며 파업한 노동자들을 국경지대의 사막으로 추방시켜 버린 사건이다. 노동자뿐만 아니라 파업 지지자 등 2천여 명의 남성이 추방되었고, 지방정부가 관여하고 보안관 대행이 주도했으며, 이들 대부분은 이민자였기에 비스비 추방은 일종의 인종청소이기도 했다. 로버트 그린은 비스비 추방 100년을 맞아 이를 기억하고자 하는 비스비 마을 주민들의 활동을 따라간다. 주민들은 사건을 2017년의 비스비에서 재연함으로써 사건을 기억하고, 연대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한다. 사건 당시 마을에 남았던 이민자의 후손과 사건 이후 이주해 온 이민자들이 재연에 동참하고, 자세히 알지 못했던 역사를 기억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감동적이다. 더욱이 재연에 참여하는 주민 중에는 어린이와 청소년도 눈에 띄어, 이들의 경험이 앞으로 어떤 미래의 비스비를 만들게 될지 궁금해진다. 재연은 노동자와 회사가 각각 파업과 추방을 준비하는 것에서 시작되어, 마을 곳곳에서 벌어진 체포와 추방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총 6개의 챕터로 나누어진 영화는 이것의 준비과정과 재연된 사건, 비스비 추방에 대한 기존의 기억과 재연 이후 달라진 주민들의 생각을 담아낸다. 여기서 재연을 담는 방식이 흥미롭다. 주민들이 재연하는 비스비 추방은 마치 극영화 같은 모습인데, 주민들은 마을 전체를 무대로 고용된 배우들처럼 연기하며 여러 대의 카메라가 이들을 쫓으며 촬영한다. 카메라에는 연기하는 주민들과 다른 방향에서 촬영하고 있는 카메라, 1917년과는 다른 2017년의 마을 풍경(자동차나 상점의 물건 등)이 프리임 속에 모두 담기게 된다. 때문에 이러한 재연이 극영화 속 장면이 아니라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기획한 사건이라는 것이 계속해서 상기된다. 이를 통해 <비스비 1917>은 잊히도록 의도된 역사를 다시 기억하고, 공유하고, 교육하는 방식을 이야기한다.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의 탄생> 하이파 알 만수르 2017

최근 몇 년 간 가장 흥미로운 필모그래피를 지닌 배우를 꼽으라면 엘르 패닝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거장부터 신예까지 다양한 감독들의 영화에서 활약해온 엘르 패닝은 이번에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저자 메리 셸리를 연기했다. <매리 셸리>는 엘르 패닝에 필모 그래피에서 ‘그래, 이런 작품 하나 없으면 섭섭하지’를 담당하고 있는 것 같다. 19세 영국의 여성 작가라는, 시대적으로 척박한 상황에 놓인 인물의 성공을 이야기하는 이번 영화는 익숙한 전기영화의 서사를 따르며 페미니즘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영화가 다루는 것은 메리가 집을 떠났을 때부터 [프랑켄슈타인]을 내기까지의 2년이다. 시인 퍼시와 사랑에 빠져 집을 떠난 메리는 2년 동안 천국에서 지옥으로 추락하며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절망과 좌절의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버려진 개인으로서 보낸 시간이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어 냈으며, 메리는 이것이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것이었으므로 후회는 없으며 자신의 재능의 결과물이 타인의 이익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노력한다. 이러한 이야기가 감정적으로 폭발하는 후반부는 점점 성장하는 엘르 패닝의 연기와 서사가 주는 메시지가 맞물려 꽤나 폭발적인 감정을 선사한다. 그러나 이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이 러닝타임에 비해 조금은 길게 느껴지기도 한다. 전기영화의 전형성을 정직하게 따라가는 방식을 택하다 보니 이런 결과가 나온 게 아닌가 싶다. 

<레모네이드> 이오아나 유리카루 2018

루마니아에서 미국으로 취업 온 마라는 미국인과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영주권을 취득하려 한다. 그러나 이민국의 담당자는 마라와 남편의 사랑이 진정성이 없으며, 영주권을 받고 싶다면 성관계를 하라 요구하고, 경찰은 루마니아에서 건너온 아들을 잠시 홀로 두었다는 이유로 아동 유기죄를 적용하려 한다. <레모네이드>는 언뜻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연출한 션 베이커의 영화를 연상시킨다. 주변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비가시화된 인물을 조명하고, 그들의 시점에서 그들이 살아가는 지역과 미국이라는 국가를 그려낸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션 베이커에 비해 착취적으로 느껴지는 몇몇 장면, 필요한 정보량에 비해 늘어지는 몇몇 장면은 아쉽게 느껴진다. 

<블루벨벳 돌아보기> 피터 브라츠 2016

데이빗 린치의 <블루벨벳>을 촬영 당시의 비하인드 푸티지와 스틸컷, 감독이 직접 린치와 나눈 대화 등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린치적 다큐멘터리를 표방하는 이 영화는 여러모로 실패적이다. <블루벨벳>을 재구성하거나 재해석하는 부분은 찾아보기 어렵고, 린치스럽다라기엔 겉핡기 식으로 몇몇 사운드트랙의 활용과 편집에만 린치스러움이 방점을 찍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블루벨벳>의 DVD 부가영상을 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게끔 만든다. 앞서 린치적 다큐멘터리 만들기를 표방하며 <이레이저 헤드> 이전의 데이빗 린치를 그려낸 <데이빗 린치: 아트 라이프>에 비해서도 부족하게만 느껴진다. 린치의 팬이 만든 습작 같다는 느낌을 도저히 지우기가 힘들다.


6일차: 5월 9일

<황금 보트> 라울 루이즈 1990

영화를 30분 정도보다 나왔다. 영화가 안 좋아서가 아니라 어제 밤새 마신 맥주 때문인지 갑자기 컨디션이 안 좋아져서 숙소에 가서 쉬었다. 앞부분 30분 정도만 본 <황금 보트>는 상당한 괴작이었다. 뉴욕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의 청년이 괴상한 강박증을 가진 노숙자이자 흉악범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담아낸다. 하지만 사건이라기엔 30분 동안에도 일관되게 이어지는 내용도 없고, 노숙자가 이스라엘을 따라다니며 이런저런 헛소리들을 늘어놓는다는 것이 전부다. 라울 루이즈는 자신이 뉴욕에 가지고 있는 어떤 경멸감을 담아내려 했던 것일까? 여러모로 미국과 프랑스의 범죄영화들을 연상시키는 패러디 작품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통행증> 크리스티안 팻졸트 2018

파리로 망명 온 독일인들은 점점 다가오는 나치를 피해 마르세유로 도피한다. 그러나 그곳에도 나치가 도착하기에도 얼마 남지 않자, 비자와 통행증을 발급받아 해외로 떠나려 한다. 나치라는 언급 때문에 <통행증>이 2차 대전 당시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놀랍게도 영화는 현대의 프랑스를 배경으로 삼는다. 나치들은 현대의 전투경찰 제복을 입고 등장하고, CCTV 화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통행증>이 나치가 패망하지 않은 대체역사를 배경으로 삼은 것도 아니다. 그저 나치의 얘기를 현대의 배경에서 할 뿐이다. 이러한 방식 때문에 현재의 난민 문제가 나치의 홀로코스트와 공명하며 <통행증>만의 독특한 감동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대범함을 우아함으로 승화시키는 크리스티안 팻졸트의 연출이 놀랍기만 하다. 동시에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희망의 건너편>과 같은 과도한 휴머니즘 등으로 빠지지 않고(물론 나는 <희망의 건너편>도 좋아한다), 오롯이 필요한 이야기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통행증>이 더더욱 흥미롭다. 

<노나> 카밀라 호세 도노소 2018

과거의 연인의 집에 화염병을 던짐으로써 복수한 63세의 여성 노나는 작은 해안가 마을에 내려와 살아간다. 그가 내려온 이후 마을에는 원인불명의 연쇄방화가 일어나고, 주민들은 그를 의심하지만 노나는 재창조라는 신념에만 충실할 뿐이다. 이와 같은 시놉시스를 보고 생각되는 영화와는 여러모로 다은 작품이었다. 노나의 재창조가 어떤 것인지도 알 수 없고, 8mm 홈비디오와 같은 촬영과 와이드 비율의 촬영이 번갈아 등장하는 형식은 산만하기만 하다. (그 와중에 타이틀 시퀀스는 비스타 비율이다) 역시 전주영화제를 찾았던 카밀라 호세 도노소 감독의 전작 <클럽 로셸>은 퀴어 다큐멘터리로서 호평받았지만, 극영화인 이번 작품은 아쉽게 느껴진다.


7일차: 5월 10일

<가상의 기억> 라울 루이즈 1986

주인공은 친구와 극장을 찾는다. 극장에 앉아서 영화를 보는 주인공의 모습과 상영되는 영화 속 영화가 번갈아가며 <가상의 기억>이라는 영화를 채운다. 영화는 주인공이 관람하는 SF, 시대극, 범죄영화 등을 계속해서 삽입한다. 영화 속 영화들은 주인공의 영화 경험 및 감정과 동화되고, 영화가 진행될수록 영화 속 영화와 극장에 있는 주인공에게 벌어지는 사건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극장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조차 영화적이다. 극장 안에 비둘기가 날아다니고, 자전거를 탄 사람이 돌아다니고, 이상한 헤드폰을 쓴 사람이 객석에 앉아있으며, 스크린 뒤편에는 경찰서가 있고 심지어 객석에서 총격전이 벌어진다. 페드로 칼데론의 희곡 <인생은 꿈>을 느슨하게 각색한 이 작품은 희곡의 내용을 영화 속 영화로 삽입시키고, 주인공은 희곡 전체를 암기한 사람으로 등장한다. 희곡의 내용과 유사한 사건들이 주인공에게 이어지면서, 그는 정해진 운명에서 탈출하려고 시도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영화가 취한 독특한 방식은 영화적 장치를 통해 원작이 품은 자유의지를 보여준다. 꽤나 복잡하고 난해한 방식이지만, 그것이 영화적으로 매력적인 것임은 틀림없다. 

<바로네사> 훌리아나 안투네스 2017

주인공은 브라질의 슬럼가에서 살고 있다. 남편이 투옥되어 홀로 아이를 기르는 여성과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여성이 주인공이다. 생활과 섹스에 대한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그들의 주변엔 마약을 두고 전쟁을 벌이는 갱단들이 있다. 영화 속에서 직접적으로 묘사되진 않지만, 대사와 마약의 존재, 외화면 사운드 등을 통해 갱단의 존재는 계속해서 가시화된다. 무덤덤할 정도로 그들의 일상을 쫓는 카메라는 딱 한 번 거칠게 흔들린다. 아마도 촬영 중 예기치 않게 들여온 실제 총소리 때문일 것이다. 영화 내내 간접적으로 드러나던 갱들의 전쟁이 실제적인 사건으로 관객에게 가시화되는 순간이다. 영화의 마지막 슬럼가를 떠나 한적한 바로네사에서 집을 짓고 있는 주인공이 고단한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며 맥주를 마시는 장면은 그래서 더욱 감정적으로 다가온다. 

<항해사의 3 크로네> 라울 루이즈 1983

<항해사의 세 개의 왕관>이라는 번역제는 틀렸다. 영화 속에서 왕관은 등장하지 않고, 극의 화자인 항해사가 언급하는 3 덴마크 크로네(crown)가 등장할 뿐이다. 영화는 살인을 저지른 학생이 우연히 항해사를 만나 3 크로네에 그가 항해하며 겪은 이야기를 밤새 듣는다는 것이 그 줄거리이다. 항해사의 여정은 천일야화처럼 느껴지는데, 범죄영화에서 볼 법한 익숙한 이야기부터 초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영적인 사건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항해사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흑백으로 진행되는 대학생&항해사의 장면과 컬러로 진행되는 항해사의 이야기 장면의 대비는 이야기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누아르 영화부터 바로크 양식까지 다채로운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항해사의 3 크로네>는 스토리텔링의 유희적이면서도 우아한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혼란스러운 항해사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이미지들을 보고 있자면 황홀하기까지 하다. 

<유예된 소명> 라울 루이즈 1978

1942년과 1960년에 각각 만들어진 <유예된 소명>이라는 작품을 하나의 작품으로 엮은 영화다. 때문에 같은 이름의 인물, 유사한 배경, 같은 이야기가 다른 배우의 연기와 흑백 및 컬러 화면으로 나뉘어 이어진다. 영화는 종종 두 영화의 같은 장면을 연달아 붙이거나, 흑백에서 패닝 하여 컬러의 같은 장면으로 이어 붙이는 등의 방식을 사용한다. 이를 통해 두 영화 속에 평행하는 두 세계가 하나로 봉합되는 듯하지만, 끝내 봉합될 수 없는 두 세계의 모습이 라울 루이즈의 <유예된 소명> 안에서 그려진다. 이는 1942년과 1960년의 영화가 애초에 다른 목적을 지니고 만들어진 같은 내용의 작품이라는 오프닝 자막에서부터 예견된 게 아닌가 싶다. 교회와 수도원의 미로 같은 건축 속을 돌아다니는 인물들을 보고 있자면, 그 미로들을 봉합하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며 라울 루이즈는 이러한 불가능성을 포착하려 한 게 아닐까?



전주에서 먹었던 음식들. 순서대로

양푼일번지 - 양푼짜글이

한양불고기 - 불고기

차녀 - 버섯 치킨 새우 크림파스타&김치 베이컨 필라프

또순이네 - 양푼갈비찜

삼백집 - 콩나물국밥&모주

새참국수 - 비빔국수&김밥

전주물짜장 - 물짜장&탕수육

차가운 새벽 - 어른을 위한 아이스크림

전일갑오 - 황태&맥주

사랑,꽃,피자 - 하트피자

경아분식 - 바지락라면

충만치킨 - 치킨 세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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