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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길 들어주길 소리치면서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사람들

자비의 돌란의 6번째 장편영화 <단지 세상의 끝>

자비에 돌란의 여섯 번째 장편영화이면서 가장 아쉬운 영화이다. ‘완벽한 캐스팅을 이토록 소리만 지르는 멜로드라마에 헛되이 쓰다.’라는 칸 영화제 때의 평처럼 보고 나면 귀가 아플 지경이다. 극에 등장하는 5명의 인물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가족을 찾아오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대면한다. 그러면서 정작 아무런 이야기도 꺼내지 못한다. 인물들이 꺼내고 싶었던 과거는 아무 이야기도 꺼내지 못하는 인물들 덕에 드러나지 못하고, 덕분에 관객들을 답답하게 만든다. <단지 세상의 끝>은 돌란의 전작들에서 드러나던 단점들로 가득 찬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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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돌란의 여느 영화들처럼 클로즈업으로 가득하다. 인물들의 얼굴을 화면 가득 담는 클로즈업은 설명 없이 화와 짜증의 감정만 담긴 대사들을 과장되게 그려낸다. 끝없이 이어지는 크롤즈업 장면들을 순식간에 지겨워진다. 관객들에게 이야기를 제시하지 않은 채 인물들의 감정을 주입식으로 제시하는 방식은 피로감 말고 아무것도 전달하지 못한다. 뮤직비디오를 만들어도 네러티브가 필요한데, <단지 세상의 끝>의 인물들은 각 인물들을 묘사하는 부분이 없다. 영화는 95분의 러닝타임 동안 현재의 감정만을 묘사하며 관객과 극 중 인물의 거리를 멀찍이 떨어트린다. 관객들은 아무런 판단도 몰입도 할 수 없이 저들의 과잉 된 감정을 지켜보기만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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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오프닝부터 시작해 영화 중간중간 등장하는 뮤직비디오 같은 시퀀스들이 현재로 가득한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과거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백그라운드로 작게 음악이 깔리다가 갑작스런 장면전환과 함께 음악의 볼륨이 커지며 시작되는 이런 장면들은 굉장히 뜬금없이 느껴진다. 루이(가스파르 울리에)가 캐서린(마리옹 꼬티아르), 앙투완(뱅상 카셀), 수잔느(레아 세이두), 엄마(나탈리 베이) 등과 대화를 나누고 난 뒤 막을 나누는 장치로 삽입한 것 같다. 하지만 각 시퀀스의 이미지들을 인물들을 충분히 묘사하지 못하고 ‘이건 뭐야’정도의 감상만 남긴다. 돌란의 전작 <마미>에서 오아시스의 ‘Wonderwall’이 흘러나오던 순간을 떠올려보면, <단지 세상의 끝>의 이 장면들은 실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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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세상의 끝>이 칸 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는 점이 의아하다. 조지 밀러를 비롯한 심사위원단은 이 영화의 어떤 부분이 맘에 들었던 것일까? 끝임 없이 과잉 된 감정만 들이대다가 보여준 상징 하나를 인정한 것일까? 영화 내내 아무런 설명도 과거도 상징도 없이 여백 위에 현재의 감정만 뿌려둔 채 어떻게든 깔끔히 마무리 해보려는 엔딩은 95분 동안 버틴 관객을 허탈하게 만든다. 흰 스크린에 감정을 물감처럼 마구 흩뿌려둔다고 영화가 잭슨 폴록의 작품이 되진 않는다. 자의식과 허세만 보이는 결과물만 극장에 걸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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