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행증> 크리스티안 팻졸트 2018
파리로 망명 온 독일인들은 점점 다가오는 나치를 피해 마르세유로 도피한다. 게오르그(프란츠 로고스키) 역시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들은 마르세유에서 곧 떠날 것임을 통행증과 비자로 증명해야 그곳에 머무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곳에도 나치가 도착하기에도 얼마 남지 않자, 그들은 해외로 떠나려 한다. 그러던 중 게오르그는 이동 중 죽은 친구의 아내와 아이를 만나게 되고, 탈출을 위해 죽은 작가 행세를 하던 중 작가의 아내 마리(폴라 비어)를 만나게 된다.
나치라는 언급 때문에 <통행증>이 2차 대전 당시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놀랍게도 영화는 현대의 프랑스를 배경으로 삼는다. 나치들은 현대의 전투경찰 제복을 입고 등장하고, CCTV 화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통행증>이 나치가 패망하지 않은 대체역사를 배경으로 삼은 것도 아니다. 그저 나치의 얘기를 현대의 배경에서 할 뿐이다. 이러한 대범함을 우아함으로 승화시키는 크리스티안 팻졸트의 연출이 놀랍기만 하다. 동시에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희망의 건너편>과 같은 과도한 휴머니즘 등으로 빠지지 않고(물론 나는 <희망의 건너편>도 좋아한다), 오롯이 필요한 이야기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통행증>이 더더욱 흥미롭다.
이러한 방식 때문에 현재의 난민 문제가 나치의 홀로코스트와 공명하며 <통행증>만의 독특한 감동을 만들어낸다. 특히 나치를 전투경찰로 표현한 부분은 명백하게 <통행증>이 난민 문제를 다루는 것으로 느껴지게 하는 장치다. 여기에 죽은 친구를 대신하여 친구의 아들을 보살피려 하고, 죽은 작가 행세를 하면서 그의 아내 마리와도 사랑에 빠지는 게오르기의 정체성 문제가 더해진다. 떠날 것을 증명해야 마르세유에 머물 수 있다는 이야기는 게오르기로 대표되는 난민들이 정착할 곳은 유럽에 없다는 것이며, 정착하지 못하고 떠나간 (죽은) 사람을 대체하며 성기게 살아갈 수 없는 그들의 상황을 묘사하는 것만 같다. <통행증>은 현대를 배경으로만 삼은 나치 영화라는 시도를 통해 뜻밖의 성취를 일궈낸다. 아마도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신작 중 가장 기대 이상의 작품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