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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y 19. 2018

필요한 이야기, 안일한 접근

<플라스틱 차이나> 왕 지우 리왕 2017

 “중국은 유럽을 비롯해, 한국, 미국, 일본의 가장 큰 쓰레기 수입국이다” 왕 지우 리왕의 다큐멘터리 <플라스틱 차이나>는 이러한 자막과 함께 시작한다. 이어 산둥에 있는 어느 재활용 비닐 공장을 비춘다. 카메라는 사장인 쿤, 직원인 펭, 펭의 딸인 이 지에를 주인공 삼아 공장에서의 일상을 그려낸다. 한 없이 쌓인 비닐 쓰레기들 사이에서 노는 이 지에를 비롯한 아이들, 비닐 쓰레기들을 재활용해 다시 전 세계로 수출하는 일을 하는 쿤과 펭, 그리고 둘의 아내들. 쿤은 공장을 통해 번 돈으로 아이들을 학교에라도 보내려고 하고, 이후엔 베이징으로 이사 가려는 꿈을 품고 있다. 그러나 펭은 대책이 없다. 그저 아이들이 학교 갈 나이가 되면 고향인 쓰촨으로 보내 적당히 학교를 보낼 생각만 하고 있다. 물론 펭이 아이들을 산둥에서 학교나 유치원에 보내기엔 240 달러 가량의 월급은 턱없이 부족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쿤이 많은 돈을 취하는 것도 아니다. 국가에서 떼가는 세금, 공장 유지비 등을 내고 나면 자신의 아이도 겨우 유치원에 보낼 수 있는 수준이다. 이 지에는 하루 종일 일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자신의 동생들과 쿤의 아들을 돌본다. 틈틈이 일을 돕기도 하고, 익숙하게 저녁상을 차리기도 하고, 아이들과 함께 쓰레기 더미를 뒤져 장난감을 찾아내기도 한다. 

 영화는 이러한 일상을 보여줌으로써 극단적인 양극화라는 문제를 환기하려 한다. 쓰레기 더미의 대부분은 대기업의 상표나 바코드가 찍혀 있는 상품들의 포장지이며, 쿤의 공장은 이것들을 다시 플라스틱 자재로 만들어 수출한다. 쿤은 마을에만 5천 개에 달하는 재활용 공장이 있다고 말한다. 인서트로 삽입된 거대한 비닐 쓰레기의 산에서는 위압감이 느껴진다. 영화는 세 인물 중 이 지에에 집중한다. 카메라는 이 지에의 일과를 따라다니고, 대부분의 클로즈업은 그의 얼굴을 향한다. 이 지에는 빈곤한 삶 속에서도 적응하여 살아가고 있다. 쓰레기 더미에서 미키마우스 장난감을 찾고 씻어서 동생들 손에 쥐어주기도 하고, 버려진 잡지나 박스 등을 모아 모형 컴퓨터를 만들기도 한다. 영화는 내내 동생들을 돌보고 함께 노는 이 지에의 모습, 부모님을 도와 공장 일을 돕는 이 지에의 모습을 담아낸다. 82분의 러닝타임 대부분이 아이들의 모습을 그려내는데 할애된다. 영화의 첫 쇼트가 비닐 쓰레기 더미 속에서 굴을 파고 노는 아이들의 모습이고, 마지막 쇼트가 비닐 쓰레기로 피운 불을 끄는 아이들의 모습이라는 점은 영화의 주인공이 아이들이라는 것을 더욱 명확하게 해준다. 이렇게 <플라스틱 차이나>는 ‘순수한 아이들’에 집중해서 재활용 쓰레기 문제를 환기하려 한다. 

 때문에 영화는 ‘순수한 아이들’을 보여주는 것에 머물기도 한다. 아이들의 일상에서 산더미 같은 비닐 쓰레기의 문제는 그저 배경에 머문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비닐 쓰레기의 순환은 처음과 마지막에 등장하는 짧은 자막과, 공장에서 재활용되는 비닐의 모습을 통해서만 간간이 확인할 수 있다. 영화가 담아내는 아이들의 모습은 빈민촌에서도 순수함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극영화였다면 상당히 전형적으로 느껴졌을 모습뿐이다. 영화가 아이들에 집중하면서 재활용 쓰레기라는 구조적인 문제는 조금씩 뒷전으로 밀려난다. 중국 정부는 재활용 쓰레기를 처리하는 공장에 왜 이리 많은 세금을 떼어가는지, 공급된 쓰레기들은 어떻게 순환되는지, 궁극적으로는 양극화의 원인이자 결과로써의 재활용 쓰레기는 어떤 의의를 지니는지 등에 대한 문제들은 영화 속에서 소거되어 있다. 때문에 종종 <플라스틱 차이나>는 아이들의 얼굴을 내세워 비닐 쓰레기를 축소하라는 단순한 이야기에 머문다는 인상을 준다. 물론 필요한 이야기지만, 다소 안일한 접근으로만 느껴진다는 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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