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쉘> 알렉산드라 딘 2017
1940년대 할리우드 스타 헤디 라머에 대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 있다. 그가 지금의 와이파이, 블루투스 등의 기술의 기반이 되는 주파수 도약 기술을 발명한 발명가라는 사실이다. 그는 2차 대전이 한창이던 때, 나치의 어뢰로 인해 많은 사상자가 났다는 기사를 보고 친구인 작곡가 조지 앤테일과 함께 주파수 차단을 방지할 보안되는 무선 통신 기술에 대한 아이디어를 냈다고 한다. 이는 당시에 바로 상용화되진 못했지만, 이후 미국 해군과 육군에서 이를 활용하였고, 더 나아가 현재의 스마트 폰 등에 적용되는 기술로 발전하였다. 배우 수잔 서렌든이 제작하고 알렉산드라 딘이 연출을 맡은 다큐멘터리 <밤쉘>은 이러한 헤디 라머의 삶을 따라간다.
영화는 헤디 라머가 한 저널리스트와 나눈 전화 인터뷰의 녹취 테이프가 발견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당대 가장 아름다운 배우이자 디즈니의 백설공주와 DC코믹스의 배트걸이 모델로 삼은 사람, 오락가락하는 필모그래피 속에서 세실 B. 드밀의 <삼손과 데릴라>를 통해 40년대 최고 히트작의 주연을 맡았던 사람, 남성과 미국인 위주의 할리우드에서 오스트리아 이민자 여성인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여러모로 투쟁했던 사람, 발명가 기질이 있어 여러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냈던 사람. 헤디 라머를 단순히 아름답지만 멍청한 금발 미녀로만 묘사했던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그의 다양한 면모가 <밤쉘> 안에 들어있다. 영화는 헤디 라머의 출생부터 <엑스터시>를 통한 영화계 데뷔와 첫 결혼, 할리우드 진출과 주파수 도약의 발명, 그 이후의 삶까지를 차근차근 담아낸다.
문제는 영화의 톤이 지나치게 단조롭고, 영화가 헤디 라머를 대하는 태도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연출은 지식채널e 같은 영상물에서나 볼 것 같은 방식을 택하고 있어 89분의 짧은 러닝타임에도 종종 지루해진다. 단순히 그의 생애를 쫓아가기만 하다 보니 생의 고비마다, 또는 그를 설명하는 인터뷰이에 따라 그를 대하는 영화의 태도가 달라지는 것은 큰 단점이다. 영화 속에서 제시되는 헤디 라머는 온몸으로 2차 대전과 남성 중심의 할리우드를 받아내고 투쟁해온 배우이자 발명가라는 다채로운 정체성을 지닌 인물이지만, 영화는 일관되게 여러 인터뷰이와 헤디 라머의 육성을 받아 적기만 한다. 더군다나 멜 브룩스처럼 “헤디 라머는 당시 가장 아름다운 여배우였어요. 저도 한 번 안아라도 보고 싶었어요.”따위의 말이나 하는 불필요한 인터뷰이가 등장하는 바람에 영화의 태도는 더욱 불분명해진다. 영화가 알려준 헤디 라머의 삶은 그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지만, 영화 자체는 그러지 못하다는 게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