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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un 01. 2018

카메라가 지닌 아름다움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아녜스 바르다, JR 2017

 20회를 맞이한 올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개막작은 개막식 하루 전 90세 생일을 맞은 아녜스 바르다의 신작이다. 2017년 칸 경쟁부분에서 공개된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은 바르다와 사진작가 JR의 공동작업을 담아낸 다큐멘터리이다. 국내 개봉제목보다는 <얼굴들 장소들>(Faces Places)라는 원제가 더욱 적절하게 영화를 설명한다. 바르다와 JR의 작업 내용은 간단하다. 대형 프린트가 설치된 JR의 트럭을 타고 프랑스 곳곳을 돌아다니며 여러 장소들에 존재하는 얼굴들을 촬영하고, 거대하게 인쇄하여 벽에 붙이는 것이 그들의 작업이다. JR의 기존 작업방식이 바르다를 통해 영화로 확장된 모습을 지켜보는 느낌이랄까? 

 그들의 여정은 다양한 장소의 다양한 얼굴들을 스크린 위로 불러낸다. 버려진 탄광 마을에 남은 최후의 주민, 어느 염산 공장의 모든 직원들, 다른 곳과 달리 동물들을 존중하며 기르는 농장의 염소, 해변에 버려진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의 벙커와 그 해변에서 바르다가 찍었던 동료의 얼굴, 항만 노동자의 아내들의 모습이 붙은 트레일러…… 노동, 연대, 사랑, 환경, 죽음, 여성, 역사, 동료, 영화,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누벨바그 시절부터 90세가 된 지금에 이르는 아녜스 바르다 본인의 이야기까지,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은 그가 영화 인생 내내 다루어 온 주제들을 89분의 영화에 녹여낸 것만 같다. 거기에 영화의 주인공이라도 할 수 있는 카메라의 존재감은 영화감독이자 동시에 사진작가이기도 한 바르다와 전업 사진작가인 JR이 협업하게 된 이유와도 같다. 영화는 바르다와 JR의 카메라를 통해 익명 혹은 무명의 얼굴들을 호명하고, 그것을 어떤 장소의 벽에 붙임으로써 이름들과 장소들이 품은 주제를 도출해낸다. 거대한 사진을 벽에 붙이는 행위는 마치 벽에 영화를 영사하는 것과 유사하게 보이기도 하는데, 이를 다시 카메라로 촬영하여 극장의 스크린에 영사하는 것은 여러모로 압도적인 체험이 된다. 벽에 붙은 거대한 얼굴을 보는 얼굴의 주인의 얼굴이 카메라에 담기는 순간은 정말 아름답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은 아녜스 바르다가 자신의 영화 인생을 되돌아보는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종종 누벨바그 시절의 작품들, 가령 장 뤽 고다르의 <국외자들>이나 본인의 작품인 <아녜스 바르다의 해변> 등이 인용되기도 하고, 고다르와 자크 리베트, 안나 카리나 등과의 에피소드가 바르다의 입을 통해서 전해지기도 한다. 눈이 나빠져 눈에 주사를 맞는 자신의 모습을 루이스 부뉴엘의 <안달루시아의 개> 속 장면과 대치시키는 장면과 같은 씨네필적 유머 역시 영화 곳곳에 뿌려져 있다. 여기에 앙리 카트리나 브레송, 기 부르댕 등 바르다가 영화를 만들기 전 함께 사진을 찍었던 동료들과의 이야기 또한 등장한다. 바르다가 고다르를 만나러 그의 집으로 찾아가는 후반부의 이야기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누벨바그와 영화를 추억하는 바르다의 진심을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때문에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은 카메라에 담긴 피사체와 그것을 보여주는 방식이 관객에게 무엇을 남기는지, 바르다 자신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제작될 수 있는 작품이다. 카메라라는 매체가 지닌 아름다움을 체험하고 싶다면, 이 영화는 완벽한 선택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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