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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un 09. 2018

과연 폭력이 끝났을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자비에 르그랑 2017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작이자, 베니스 영화제에서 각각 감독상과 신인감독상에 해당하는 은사자상과 미래 사자상을 동시에 석권한 자비에 르그랑 감독의 <아직 끝나지 않았다>를 시사회로 먼저 만났다. 이미 별거한 상태에서 이혼소송을 진행주인 미리암(레아 드루케)과 앙투안(드니 메노셰), 그리고 그들의 두 자녀인 줄리앙(토마 지오리아)와 조세핀(마틸드 오느뵈)의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이다. 미리암과 앙투안의 이혼소송 심리로 시작되는 영화는 이혼사유가 미리암에게 있는지 앙투안에게 있는지를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영화의 초중반부까지 관객은 과연 줄리앙의 진술대로 앙투안이 폭력적인 사람이었는지, 혹은 앙투안의 주장대로 미리암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영화 중반부 진실이 드러나기 전까지 말이다. 

 영화는 이혼소송을 통해 가족이 붕괴되는 익숙한 서사를 따라가는 것 같지만, 진짜로 폭력적인 앙투안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점점 스릴러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몇몇 장면을 제외하면 관객은 줄리앙의 시선으로 앙투안을 바라보게 되는데, 거대한 덩치를 지닌 앙투안의 폭력적인 면모는 종종 관객의 숨통을 조여 온다. 특히 후반부에 등장하는 장면은 는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을 연상시키는 어느 해외 매체의 평이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긴장감을 선사한다. 이혼소송에 있어서 자신이 우위를 점하기 위해 아들을 장기말처럼 이용하는 앙투안의 모습은, 자신이 뜻하는 대로 가정을 다스려야 한다는 그릇된 가부장제에 찌든 아버지로 인해 고통 속에 놓이는 아들의 시선에서 그려지며 끔찍함을 더한다. 앙투안이 줄리앙이나 조세핀을 직접적으로 폭행하는 장면은 당연히 등장하지 않지만, 그가 폭력적인 언행을 보여주는 장면이 등장할 때마다 가슴 졸이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결국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가부장제 하의 광적인 집착이 어떠한 공포로 배우자와 자녀들에게 다가오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다만 몇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플롯 상 중요한 소재인 것처럼 등장했던 조세핀의 임신 테스트 장면이 그 이후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사실상 그 장면이 영화 속에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앙투안이 드러내는 폭력성 역시 몇몇 장면에서는 정도가 과하다. 특히 그가 줄리앙에게 폭력적으로 위협을 가하는 장면에선 그 장면이 필요하다는 생각과 동시에 다른 우회적인 방법이 존재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폭력의 전시는 항상 그것이 쾌락적으로 소비될 가능성을 내포하는데, 이 작품에선 그것이 어린 소년을 향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불쾌감이 느껴졌다. 또한 영화 자체가 줄리앙의 시선만으로 이루어져 있지도 않은데, 이러한 시점의 이동이 산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의 원제는 <Jusqu'a La Garde>, 즉 ‘양육권’이라는 뜻이다. 양육권을 주장하며 줄리앙을 아내와의 관계 회복 및 가부장제 하에서 작동하는 자신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장기말로서 사용하는 앙투안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아무래도 원제가 영화에 더 적절한 제목이 아닌가 싶다. 영화 내내 유지되는 긴장감은 이혼소송 이후에도 끝나지 않은 그들의 문제가 극단적인 결말로 치닫게 된다는 것을 암시하긴 한다. 하지만 앙투안의 진면모가 드러나자마자 그를 제거하지 않고서야 상황이 해결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원제가 더욱 영화에 충실한 제목이 아닐까 싶다. 하여간 여러모로 끝나지 않은, 영화 속의 이야기는 일단락되지만 스크린의 문이 닫히고 계속될 이야기 속에서 어떤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 기대되지 않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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