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 아리 에스터 2017
<언더 더 스킨>이나 <더 랍스터>부터 <플로리다 프로젝트>, <굿 타임> 등의 최근작까지 다양한 장르와 감독의 놀라운 작품들을 제작 및 배급하고 있는 A24의 신작 <유전>이 공개되었다. 지난 선댄스영화제에서 공개되어 호평받은 호러인 <유전>은 몇 편의 단편영화를 통해 온라인 상에서 논란이 되기도 한 아리 에스터 감독의 신작이다. 여기에 <식스 센스>의 어머니 역할로 알려진 토니 콜렛을 비롯해, <유주얼 서스펙트>의 가브리엘 번, <쥬만지: 새로운 세계>로 얼굴을 알린 신예 알렉스 울프 등이 주연을 맡았다. 영화는 애니(토니 콜렛)의 어머니의 장례식으로 시작한다. 애니를 비롯해 남편 스티브(가브리엘 번), 아들 피터(알렉스 울프), 딸 찰리(밀리 샤피로)는 장례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다. 어느 날 애니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의 모임’에서 만난 조안(앤 도드)을 통해 엄마의 비밀을 발견하고, 엄마와 애니를 거쳐 두 자녀에게 까지 뻗어나간 저주의 실체가 드러난다. 포스터나 시놉시스가 언뜻 <컨저링>이나 <애나벨> 등의 제임스 완 호러를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유전>은 보다 70년대 오컬트 및 지알로 호러영화들과 닮아있다.
<유전>에는 점프 스케어가 없다. 점프 스케어란 갑자기 프레임 속에 유령 따위가 튀어나와 관객을 놀라게 만드는 영화 장치를 일컫는다. <컨저링> 등의 제임스 완 호러영화들과 최근 개봉한 <제인 도> 등의 영화들을 떠올리면 이러한 장치가 얼마나 쉽게 관객들을 놀래 킬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러한 효과는 사실 무섭다기 보단 불쾌함에 가까운데, 많은 호러영화들이 관객들을 놀라게 하는 데만 집중하고 이야기, 연기, 사운드 등으로 만들어 내는 무서움 자체에는 크게 관심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유전>은 이런 얄팍한 꼼수를 쓰지 않는다. 물론 점프 스케어를 잘 활용한다면야 좋은 작품이 되겠지만, 아리 에스터 감독은 익숙한 경향에 휩쓸려가는 것에 정면으로 맞선다. <유전>이 이용하는 것은 불안감이다. 사실 전체적인 이야기는 과거 오컬트 영화들의 전형을 따라가는 것만 같지만, 이미 <컨저링> 류의 영화에 익숙해진 관객들은 <유전>의 이야기를 쉽게 예측하지 못한다. 때문에 영화 내부에 세세하게 설치된 복선들에 의해 발생한 불안감이 다음 상황을 쉽게 예측할 수 없는 관객은 손에 땀을 쥐고 영화를 보게 된다. 토니 콜렛을 필두로 한 배우들의 호연은 불신 속에서 어떻게든 붕괴되지 않으려는 가족이 지닌 불안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러한 불안감이 무섭게 폭발하는 영화 후반부 30여분 동안의 클라이맥스는 호러영화의 가장 순수한 체험이 되기도 한다.
애니는 디오라마(실물 축소 모형)를 만드는 작가다. 그는 종종 자신의 집과 가족을 담은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이는 영화 속에서 본격적으로 사건이 전개되면서 더욱 심해진다. 애니는 엄마의 장례식이 진행된 공간이나, 사고가 벌어진 장소를 재현한 디오라마를 제작하기도 한다. 자신의 몽유병 때문에 피터 그리고 찰리와의 관계가 소원해진 애니는 이를 통해 가족을 다시 봉합하려고 시도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는 이러한 기대를 산산이 부셔버린다. 아리 에스터 감독은 스스로 사악한 신이 된 것처럼 캐릭터들에게 고난을 가한다. 때문에 영화의 결말은, 피해갈 수 없는 유전적인 저주의 두려움을 생생하게 느끼게 한다. 아마 올해 가장 무서운 장르 영화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