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un 12. 2018

끊임없이 되새겨야 할 여성들의 역사

<허스토리> 민규동 2017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로 장편 데뷔해 <내 아내의 모든 것>, <무서운 이야기> 시리즈, <간신>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들어온 민규동 감독이 이번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주인공으로 한 <허스토리>를 연출했다. 영화는 할머니들을 모아 소송을 이끈 원고단 단장 문정숙(김희애)을 중심으로 원고인 배정길(김해숙), 박순녀(예수정), 서귀순(문숙), 이옥주(이용녀) 할머니, 그리고 소송의 변호인인 재일교포 이상일(김준한)의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영화가 다루는 사건은 일본 재판부가 최초로 일본군 성노예 사건에 일부승소 판결을 내린 관부재판이다. 문정숙과 10명의 피해자 할머니로 구성된 원고단은 1992년부터 1998년까지 6년에 걸쳐 23차례 일본을 방문하며 재판을 진행했다. 

 정숙이 원고단을 모으고 소송을 시작하게 되는 초반부는 조금 지루하다. 편집은 뚝뚝 끊기고 강하게 내지르기만 하는 대사들은 종종 잘 들리지 않으며, 정길의 아들(최병모)이 등장하는 장면은 <허스토리>의 민규동 감독이 어쩔 수 없이 남성 감독임을 다시 한번 인식하게 만드는 폭력성을 드러낸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재판이 시작되고, 영화가 중심으로 삼는 네 할머니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등장하면서 영화는 동력을 얻는다. 국내 중장년층 최고의 배우들이 모였기에 가능한 작품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할머니들이 가진 이야기는 배우들의 열연을 통해 불필요하고 착취적인 플래시백 없이도 전달되며, 때문에 앞서 <귀향> 등의 작품들이 보여준 윤리적인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 또한 문정숙이 부산지역 여성경제인연합의 회원이었으며, 영화 내내 본인도 여성이기에 할머니들과 연대한다는 뜻을 표하며 여성연대를 보여주는 장면들은 <허스토리>가 제목처럼 여성영화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종종 조금 더 짧게 끊어 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장면들이 있지만, 수많은 필모그래피를 통해 내공을 쌓은 배우들의 연기가 이러한 단점을 중화한다는 점에서 <허스토리>는 온전히 여성배우들의 영화이기도 하다. 

 관부재판은 일본 재판부가 여성차별, 민족차별 등을 이유로 일본 정부가 전후 입법과정에 있어 노력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최초로 일부승소 판결을 내린 작품이다. 그러나 위안부가 아닌 정신대 피해자 등에 대한 보상은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보상액 또한 300만 원 정도밖에 되지 않고, 무엇보다 일본정부의 사죄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판결이었다. 영화는 1998년의 판결을 끝으로 마무리되지만, 5년 뒤 히로시마 법원에서의 판결로 앞선 시모노세키에서의 판결이 엎어졌다는 사실이 자막을 통해 전달된다. 2017년 4월 관부재판에 원고로 참여했던 마지막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아직까지 일본정부의 사죄는 없고, 3년 전 박근혜 정부는 일본과 제멋대로 불합리한 합의를 하기도 했다. 관부재판의 원고단 단장이었던 문정숙은 여전히 위안부 피해 기록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현재 위안부 피해 생존자 할머니는 28분이다. 아직 할머니들께서 살아계시고, 일본정부가 사죄를 하지 않는 이상 <허스토리>는 끝나지 않는다. <허스토리>는 분명 영화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되새겨야 할 기록이자 국내 최고의 여성배우들을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불안감이 만들어낸 최고의 공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