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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동양계 래퍼로 살아남기

동양계 미국인 래퍼들의 이야기 <배드랩>

‘미국에서 성공한 동양계 래퍼는 왜 없을까?’라는 물음에서 <배드 랩>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시작되었다.배틀 래퍼로 유명한 덤파운데드(Dumbfoundead), 크리스챤 래퍼가 되기를 바라는 리릭스(Lyricks), 독특한 캐릭터를 뽐내는 렉스티지(Rekstizzy), 개성있는 음악으로 시작해 유투브를 거쳐 영화계까지 진출한 아콰피나(Awkwafina) 등 네 명의 래퍼가 미국에 사는 동양계 미국인 래퍼로써 어떻게 살아가는지가생생하게 담겨있다.

영화는 덤파운데드가 뉴욕에서 계약을 위해 차를 타고 이동하는 길에 촬영한 대화 사이사이에 플래시백처럼 네 명의 래퍼들의 이야기를 집어 넣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성공한 백인 래퍼도, 라티노 래퍼도 있는데 왜 동양계 래퍼는 없는 것인지 답을 찾기 위해 네 명의 래퍼들은 스스로에게 묻고, 제작진은 문화학교수나 음반업계 전문가 등을 찾아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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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래퍼는 사실 답을 알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그렇기에 자신을 ‘래퍼’로만 규정하길 원하면서도‘동양인 래퍼’인 자신을 어떻게 마케팅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그들의 모습이 동양계 래퍼를 대표하는모습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하며 행동한다. 이는 온전히 ‘음악만 좋으면 성공할 수 있다’라는 믿음에 대한불확실한 확신으로 이어지면서 그들이 겪는 고민이 드러난다.

영화 중간에 등장한 어느 교수가 말했듯, 미국은 언제나 소수민족의 문화를 착취하면서 자신들의 대중문화를 만들었다. 특히나 흑인의 것을 백인의 요구에 맞게 수정하는 사례들이 많았는데, 블루스를 락앤롤로 만들고, 알앤비가 성공하자 블루아이드소울을 그것에 대응하는 장르로 소비하게 만들었다. 힙합마저그들의 니즈가 소재와 트렌드를 결정하는데 영향을 미친다. 같은 맥락 안에서, 동양계 래퍼들이 음악과뮤직비디오가 소비되고 있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물음이 생긴다. 동양계로는 처음으로 이름을 알린 배틀래퍼 진과 덤파운데드가 랩배틀에서 인종비하적인 랩에 맞서 원래 흑인들이 하던 방식으로 공격을 되돌려줬을 때의 리액션은, 그들의 랩 실력이 뛰어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양인이 이런 랩을 한다고?’라는차원의 놀라움에서 오는 리액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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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에서 인종적인 부분은 중요하다. 스트릿 크레딧이 랩의 진정성에 미치는 영향과, 평등을 외치면서도여전히 남아있는 인종의 스테레오 타입을 생각해 보면 동양계 래퍼가 미국에서 성공하기는 험난해 보인다. 무려 드레이크(Drake)가 덤파운데드를 가장 주목하는 배틀래퍼로 꼽았음에도, 기자들은 그에게 ‘성룡, 엽문, 이연걸 중 누굴 가장 좋아하는가?’따위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들의 모든 음악이 히트할 만한노래들인 것은 아니지만, ‘좀 더 성공할 수 있는 음악들이 이렇게 주목 받지 못하는 구나’하는 아쉬움이밀려왔다.

영화는 덤파운데드가 계약하러 가던 길 2년 후를 보여주며 마무리된다. 뉴욕의 공연장 SOB에서 모여공연을 하는 네 래퍼는 여전히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랩을 하고 있다. 덤파운데드는 다시배틀랩에 뛰어들기도 했고, 아콰피나는 유투브와 방송 등을 통해 인지도를 쌓았고 책도 출간했다. 리릭스와 렉스티지는 각자 자신 만의 길을 가며 랩을 이어간다. 그들의 음악이 계속 이어지고, 그들의 바람대로 그들이 성공한 동양계 래퍼의 선례가 되길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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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덤파운데드
덤파운데드는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한국계 남성 래퍼다. 무엇보다 그는 지역랩 배틀 대회에 참여해 뛰어난 실력을 드러내며 알려지기 시작했다. 즉 '배틀 래퍼'로서 명성을 얻었다는점에서는 2000년대 초중반에 미국 메이저 힙합 시장에 데뷔했던 중국계 래퍼 진과 비슷한 면이 있다.에픽 하이, 박재범 등과 작업한 적이 있고 에픽 하이의 투어 오프닝 무대를 맡기도 했다.

# 아콰피나
아콰피나는 뉴욕 퀸스에서 태어난 동양계 여성 래퍼다. 중국과 한국의 피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뉴욕주립대 알바니 캠퍼스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했고 중국 베이징에서 학교를 다닌 적도 있다. 뮤직비디오에 주로 엉뚱하고 당돌한 이미지로 등장하는데, <My Vag>처럼 힙합의 전통적인 남성성에 입각해 한번쯤 고민해볼만한 메시지를 던지기도 한다. 2014년 초에 데뷔앨범 [Yellow Ranger]를 발표했다. 최근에는 <나쁜이웃들2> 등의 코미디 영화에도 얼굴을 비추고 있으며, 현재 <오션스 에이트>촬영을 앞두고 있다.

# 렉스티지
렉스티지는 뉴욕 퀸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한국계 남성 래퍼다. 뉴욕 힙합 아티스트의 음악을 주로 듣고 자랐지만 데빈 더 듀드 같은 텍사스 휴스턴 출신 뮤지션의 유머와 재치 등에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재키 조는 그를 가리켜 "정말 또라이 같은 친구"이고 "가장 날 것의 이야기를 랩으로 표현하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뮤직비디오를 보면 이 말을 이해할 수 있다. [Whatever You Say] 등 두 장의 정규앨범을 발표했다.

# 리릭스
리릭스는 버지니아 페어팩스 출신의 동양계 남성 래퍼다. 기독교적 신앙심이 음악을 시작하게 된 강한동기였다고 한다. 유투브에서 몇몇 영상을 찾아보면 매우 유려한 랩을 구사함을 알 수 있다. 라임, 플로우, 톤 모두 훌륭한 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자신의 예술가적 자질에 대한 불확신과 부모님 일을 도와야하는 문제로 음악을 계속해야할지 고민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 내용은 '배드 랩' 필름에 담겨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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