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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ul 27. 2018

만화원작 일본 실사영화의 한계를 고스란히 따라간다

<인랑> 김지운 2018

 김지운 감독의 신작 <인랑>이 개봉했다. 오시이 마모루가 각본을 쓰고, 오키우라 히로유키가 연출한 동명의 일본 애니메이션을 실사화한 작품이다. 원작의 명성과 화려한 캐스팅에 힘입어 개봉 전부터 많은 화제가 됐었다. 재작년 개봉한 <밀정>으로 본인의 최고 관객수 동원 기록을 경신한 김지운 본인에게도 <인랑>은 꽤나 중요한 프로젝트였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인랑>은 김지운 필모그래피 최악의 작품으로 남게 될 것 같다. 심지어 <인랑>은 그가 아놀드 슈워제네거를 기용해 만들었던 변칙 서부극인 <라스트 스탠드> 보다도 처참한 결과물이다. 2029년 통일 직전이라는 상황이나, 특기대가 착용하는 슈트의 모습, 기대보다 아쉬운 액션의 퀄리티, 제대로 다루어지지도 못한 러브라인 등 안타까운 요소들만 가득하다. 

 가장 아쉬운 부분은 지금보다 10년 정도 뒤를 묘사한 영화 속 한국의 모습이다. 이것은 단순히 탄핵정국부터 최근의 정상회담과 기무사 문건까지 이어지는 현실의 상황이 영화를 뛰어넘는 상상력을 보여주기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현실의 상황이 놀라운 것은 사실이지만, <인랑>이 묘사하는 근미래 한국이라는 세계관은 빈약하기 짝이 없다.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들은 인터뷰에서 제작비 문제를 이야기하지만 비슷한 예산으로 한국의 근현대사를 묘사했던 최근의 작품들, 가령 <택시운전사>나 <1987> 같은 영화를 생각했을 때 <인랑>의 미래는 조악하기만 하다. 초반부 등장하는 광화문에서의 시위 장면, 붉은 계열의 빛을 통해 사이버펑크적인 분위기만 적당히 가져오고 만 수많은 길거리 장면, 미래의 무기라고 하기엔 어딘가 조악해 보이는 특기대의 슈트 등 비주얼적으로도 어딘가 아쉽기만 하다. 게다가 영화 초반부 장진태(정우성)의 내레이션과 함께 세계관을 설명하는 애니메이션 속 한국의 묘사는 정우성의 전작인 <강철비>를 생각해봐도 디테일적인 부분에서 미달 수준이다. 공안과 특기대가 갈등을 빚는 부분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단순한 권력다툼으로 그려지기에는 이러한 갈등에서 소거하고 있는 맥락이 너무나도 많다. 통일한국을 둘러싸고 주변 강국들이 압박하고 있다는 상황을 초반부에 제시해두고, 갈등을 그려내기 위해 이를 극에서 배제해버리는 각본은 쉽사리 다가오지 않는다. 

 초반부에 묘사되는 ‘피의 금요일’이라는 사건의 묘사도 문제적이다. 특기대 대원인 임중경(강동원)과 한상우(김무열)가 잘못된 정보로 여학생 15명을 몰살하는 사건이라 설명되는데, 이것이 플래시백처럼 제시되는 장면은 과도하게 포르노적이다. 김지운 감독이라는 사람이 <악마를 보았다>를 연출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장면이었다고 해야 할까? 더욱이 특기대 멤버인 김진철(최민호)이 고문당하는 장면 같은 경우 폭력을 전시하기 위한 폭력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윤희(한효주) 캐릭터의 묘사 또한 불편하다. 애초에 캐릭터가 제대로 설명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기도 하고(그런데 러닝타임은 138분이나 된다), 캐릭터를 묘사할 사건 자체가 각본 속에 구성되어 있지도 않다. 엔딩을 제외한 원작의 플롯 구성을 그대로 구현하는 것에 중점을 두다가 캐릭터 구성에 실패한, 전형적인 일본의 만화원작 실사영화를 보는 기분이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인랑>은 최근 쏟아지고 있는 일본의 만화원작 실사영화 수준이다. 원작 존중이라는 미명 하에 영화라기 보단 코스프레쇼에 가까워진, 그런 영화로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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