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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Aug 25. 2018

영화를 멈출 수 없는 이유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우에다 신이치로 2017

*스포일러 포함


 솔직히 초반부를 보고선 놀랐다. 약 37분간 이어지는 파운드 푸티지 형식의 원테이크의 퀄리티가 너무나도 처참했기 때문이다. 좀비 영화 촬영 현장에 좀비가 등장한다는 참신한 설정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흥미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앞의 37분은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의 나머지 한 시간 가량을 위한 준비일 뿐이다. 37분의 짧은 영화가 지나가면 <One Cut of the Dead>라는 제목과 함께 엔드크레딧이 올라가고,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의 진짜 오프닝 크레딧이 올라간다. 극 중 시간은 한 달 전으로 되돌아가고, <One Cut of the Dead>라는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영화의 나머지를 채운다. 고만고만한 퀄리티의 예능 프로그램 재연영상을 연출하던 타카유키(하마츠 타카유키)는 모두가 거절하던 생중계 원테이크 좀비 영화의 연출을 얼떨결에 맡게 되고, 아이카(아키야마 유즈키), 카미야(나가야 카즈아키) 등의 배우들과 마오(마오), 하루미(슈하마 하루미) 등 타카유키의 가족들이 영화에 참여하게 된 이야기가 등장한다.

 한 시간 가량의 <One Cut of the Dead> 제작기는 촬영을 준비하는 30분 정도의 분량과 실제 촬영이 진행되는 모습을 담은 30분가량으로 나뉜다. 결국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는 <One Cut of the Dead>의 본편이 등장하는 1부, 본편의 기획이 드러나고 타카유키를 비롯한 참여진들의 캐릭터가 그려지는 2부, 본편을 촬영하는 모습을 담아낸 3부로 구성된 작품이다. 물론 영화 안에서 구성을 나누고 있지는 않지만, 영화를 관람하면서 충분히 구분 지을 수 있다. 전체 95분의 짧은 러닝타임을 빈틈없이 꽉 채우고 있는 구성은 1부에 등장하는 허술함과는 정반대에 위치해 있다. 이러한 구성은 <One Cut of the Dead>의 촬영 현장을 담은 3부의 코미디를 강력하게 만들어준다. <One Cut of the Dead>가 허술했던 이유, 영화의 허술함을 채우고 있던 뜬금없는 개성 등이 등장한 이유가 밝혀지면서 관객들을 폭소할 수밖에 없다. 1부와 2부를 지켜본 관객은 이미 영화를 제작하고 있는 캐릭터들의 사정을 훤히 꿰고 있을 수밖에 없고, 여기서 만들어지는 페이소스가 3부의 강력한 웃음을 만들어낸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라는 제목처럼 고집 있는 태도와 번뜩이는 아이디어, 철저하게 구성된 각본이 이 영화를 가능케 한다. 아마도 올해 최고의 코미디 영화를 꼽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꼽지 않을까?

 사람들에게 피터 잭슨의 <고무인간의 최후>나 루치오 풀치의 <비욘드> 같은 괴상한 영화들을 보여준다고 생각해보자. 많은 사람들은 이런 괴상망측한 영화를 만드는 인간이 대체 누구냐고 반문해올 것이다. 그러나 이런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영화의 결과물이 어떻든 그 영화 한 편을 만들기 위해 달려온 사람들이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노력이 있기 때문에 모든 영화를 옹호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의 핵심도 거기에 있지 않다. 이 영화의 핵심은 온갖 어려움을 뚫고 마침내 한 편의 영화를 만들어냈을 때의 희열과 쾌감이다. 대담한 형식의 코미디로 관객들을 폭소케 하다가, <One Cut of the Dead>의 생중계를 끝내고 희열로 가득한 배우와 스태프들의 얼굴을 담아내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주는 감동은 이 영화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부분이기에 더욱 놀랍기만 하다. 영화의 (정말 마지막) 엔드크레딧은 <One Cut of the Dead>를 찍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의 실제 제작진의 모습과 함께 등장한다. 어찌 보면 액자 속의 액자라는 독특한 구성이기도 하다. 정신없는 초반부의 원테이크부터 후반부의 폭소와 엔딩의 감동이 지나간 자리에 실제 스태프들이 등장하는 엔드크레딧이라는 구성은 진한 여운을 남긴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가 어떤 걸작의 위치를 차지할 영화는 아니겠지만, 이 영화가 주는 즐거움의 위치는 그 어느 걸작들과 비교해봐도 크게 뒤지지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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