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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Aug 28. 2018

박탈당한 '마녀'의 삶을 복원하기

<델마> 요아킴 트리에 2017

 영화는 어린 델마(에일리 하보)가 아버지 트론드(헨릭 라파엘센)와 함께 얼어붙은 호수 위를 함께 걷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사냥을 나선 둘 앞에 사슴이 나타나고, 트론드는 사슴을 겨누는 듯 하지만 이내 델마의 뒤통수를 겨눈다. 결국 총을 쏘지 못하는 트론드, 영화는 여기서 바로 현재 시점으로 이동한다. 대학생이 된 델마는 가족과 떨어져 도시에 머물고 있다. 그녀는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던 중, 우연히 아냐(카야 윌킨스)와 마주친 뒤 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진다. 발작 이후 델마는 자신에게 기묘한 능력이 있음을 깨닫게 되고, 동시에 아냐와 우연히 다시 만나 묘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라우더 댄 밤즈>를 통해 국내에 소개된 요아킴 트리에의 신작 <델마>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스티븐 킹의 <캐리>를 통해 시작된 ‘마녀’ 영화의 계보를 잇는다. 이 계보의 가장 가까운 작품으로는 로버트 에거스의 <더 위치>가 있을 것이다. <델마>는 집안에서 억압당하던 여성 주인공이 ‘마녀’로 각성한다는 플롯에서 <캐리>가, 주인공의 능력이 유사하다는 점에서 <더 위치>를 연상된다.

 하지만 <델마>의 지향점은 <캐리>나 <더 위치>와는 다르다. <캐리>는 마녀로 몰린 소녀가 결국 마녀로 각성해 복수한 뒤 자멸하는 이야기였고, <더 위치>는 소녀가 결국 진짜로 마녀가 돼버린다는 이야기였다. 반면 <델마>는 소녀가 마녀로 각성하지만, 자멸하거나 마녀로 머무는 엔딩을 맞지 않는다. 이 영화의 엔딩은 해피엔딩에 가깝다. 물론 델마의 입장에서는 말이다. 때문에 <델마>는 ‘마녀’라는 능력을 빌어 마녀사냥의 희생자로 몰려 사라진 여성들이 바라던 삶을 되찾아 주는 이야기에 가깝다. 델마는 초능력을 사용할 때 발작을 일으키지만, 능력을 사용하는 도중에 그녀가 느끼는 감각은 쾌감 혹은 행복감에 가깝다. 델마의 환상으로 표현되는 이러한 감각은 마녀사냥에 의해 박탈된 마녀들의 삶을 복귀시키려는 이미지들로 보인다. 특히 델마가 아냐와 사랑에 빠지면서 퀴어 정체성을 가지게 된다는 점은 박탈당한 ‘마녀’들의 삶을 21세기에 복원시키려는 시도 안에서 중요한 포인트로 느껴진다.

 <델마>는 <캐리>부터 <더 위치> 등의 작품까지 이어지는 ‘마녀’라는 여성 괴물의 계보에 충분히 자리 잡을 수 있는 수작이다. 그리고 <델마>는 자신의 지향점에 다가가기 위해 해야 할 일을 하나하나씩 해나가는 영화다. 저주에 가까운 집안의 압박을 받는 주인공을 보여주고, 그녀의 능력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동기를 얻고, 복수를 하고, 엔딩을 맞는다. 요아킴 트리에는 전작 <라우더 댄 밤즈> 보다 직선적인 방식으로 <델마>를 이끌어간다. 플롯을 뒤트는 전작보다 이미지로 승부하는 이번 영화는 확실히 요아킴 트리에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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