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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Sep 01. 2018

데스크탑 필름의 가능성과 한계

<서치> 아니쉬 차간티 2017

 산 호세에 사는 데이빗 킴(존 조)의 딸 마고(미셸 라)가 실종된다. 데이빗은 로즈메리 빅 형사(데브라 메싱), 동생 피터(조셉 리) 등과 함께 마고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이 과정에서 마고의 노트북을 살펴보다 자신이 몰랐던 딸의 모습을 알게 된다. 단순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서치>는 독특한 형식을 통해 진부함을 넘어서려 한다. 영화는 이미 <언프렌디드: 친구 삭제> 등의 영화들이 선보인 바 있는 데스크탑 필름(컴퓨터 화면만으로 화면을 이끌어가는 형식의 영화) 장르를 끌어온다. 특히 픽사의 <업>을 연상시키는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는 <서치>가 지닌 형식적 강점과 가능성을 동시에 선보인다. 윈도우XP의 바탕화면이 등장하고, 데이빗과 팸(사라 손)의 계정이 등장하고, 뒤이어 마고의 계정이 생성된다. 윈도우의 캘린더는 학교에 입학한 마고가 한 학년 한 학년 올라가는 것을 보여주고, 컴퓨터에 저장된 사진들은 그들의 일상을 보여주며, 유투브(심지어 초기 유투브의 UI를 재현해뒀다)의 영상을 통해 팸이 암에 걸려 죽게 된다는 사실을 관객에게 알려준다. 한 가족이 만들어지는 것에서부터 팸의 죽음까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서치> 제작진들의 말처럼 “<업>의 오프닝 시퀀스를 구글 광고로 만든 것”처럼 느껴진다. 컴퓨터와 함께 자란 세대라면 이 장면의 디테일함에 감탄하고, 동시에 <업>을 볼 때보다 더욱 감정적으로 몰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프닝 시퀀스가 지나간 후 영화에는 맥북과 아이폰 등 iOS의 화면만이 등장한다. 아마도 상대방이 메시지를 작성하고 있을 때 등장하는 말줄임표 말풍선과, 페이스타임을 끊어도 자신을 비추는 화면은 바로 끊기지 않는 기능 등을 동원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실제로 이 두 기능은 <서치>에서 상당한 서스펜스 혹은 유머를 만들어낸다. 통화를 마치고 화면에 덩그러니 남은 데이빗의 황당한 표정이라던가, 상대방이 입력 중이라는 의미의 말풍선을 보며 초조해지는 모습 등은 효과적으로 관객을 몰입하게 만든다. 스크린 속 수많은 문자와 이미지 속에서 영화 전개에 필요한 정보들로 관객들의 눈을 안내하는 마우스 커서 또한 아주 단순한 방법으로 효과를 내고 있다. 기존의 데스크탑 필름, 가령 <언프렌디드: 친구 삭제>와 같은 작품이 사람이 등장하는 영상을 등장시키기 위해 극 중 상황을 망가트렸다면, <서치>는 그러한 우를 범하는 대신 SNS나 구글링을 통해 등장하는 문자의 어떤 부분에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켜야 지루하지 않은 지를 이해하고 선보인다. SNS나 저장된 개인방송, 뉴스, 페이스타임 등의 영상을 적절히 삽입하며 영화의 전개를 돕는 방식도 훌륭하다. <서치>는 104분의 짧지 않은 러닝타임을 노트북과 아이패드 화면만으로 풀어가지만 단 한순간도 지루하지 않다. 아니쉬 차간티 감독은 대중이 SNS, 구글, 유투브, 영상통화, 개인방송 등을 어떤 패턴과 리듬으로 소비하는지 이해하고 있고 그것을 영화적 리듬 안에 이식하는 데 성공한다. 후반부에서 주로 사용되는 뉴스 화면은 조금 과하긴 하지만, 영화 전체의 틀을 깨지 않는 선에서 활용된다. 조쉬 트랭크의 파운드 푸티지 영화 <크로니클>에서 인물의 염력을 통해 장르의 한계를 넘어선 자유로운 카메라 무빙을 선보였던 것과 유사한 사례로 생각된다.

 다만 <서치>가 선보인 데스크탑 필름의 강점과 함께 단점도 두드러지게 보인다.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디지털 범죄를 연상시킨다는 점이 그것이다. <서치>는 철저하게 데이빗의 관점으로 데이빗이 마고의 사생활 영역을 침범하여 딸을 찾아낸다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관객은 데이빗의 시점으로 움직이는 노트북의 마우스 커서를 쫓아 이야기를 따라간다. 마우스 커서가 향하는 곳은 대부분 마고의 SNS다. 때문에 관객은 데이빗이 마고의 SNS 계정 비밀번호를 능숙하게 알아내는 모습부터, 그녀가 남긴 개인방송 영상들과 은행 계좌 등을 추적하는 과정에 동참하게 된다. 실종된 딸을 찾는 아버지라는 설정이 일종의 면죄부를 주는 것도 같지만, 그가 마고의 SNS와 노트북 속 기록을 파헤치며 보여주는 폭력성은 딸의 사생활에 침투하는 아버지의 크리피함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게다가 몰래카메라를 동원하거나 SNS에 등록된 불특정 다수에게 페이스타임을 거는 방식은 데이빗을 상대하게 되는 타인들에게 가해지는 일종의 폭력이다. <서치>와 유사한 이야기를 지닌 <테이큰>을 생각해보자. <테이큰> 또한 아버지가 실종된 딸을 찾는 이야기고, 전직 특수요원인 아버지는 이 과정에서 무수한 폭력을 행동에 옮긴다. 다만 여기선 그 폭력이 딸을 납치한 악인들을 향하고 있다. 하지만 <서치> 속 데이빗이 보여주는 폭력성은 마고의 SNS와 연결된 불특정 다수를 향하고 있고, 이는 궁극적으로 마고를 향한다. 영화는 전형적인 ‘냉장고 속의 여자’ 클리셰와 아버지라는 위치 등을 도구 삼아 영화의 방식이 지닌 폭력성을 무마하려 하지만, 그럼에도 불편함이 남는다.

 <서치>는 모두가 SNS를 가지고 있고, 몇 번의 검색을 통해 상대방에 대한 상당한 정보를 알아낼 수 있는 시대이기에 가능한 이야기임과 동시에, 이 같은 상황이 초래하는 폭력성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장단이 뚜렷한 작품이다. 데스크탑 필름이 장르영화 공식을 어떻게 소화해낼 수 있는지, 더 나아가 드라마적 연출의 가능성을 보여준 오프닝 시퀀스 등의 장점은 젊은 감독이 이끌어낸 뚜렷한 성취이다. 더불어 어느 인종이 맡아도 성립하는 이야기에서 굳이 아시아계 미국인 배우들을 대거 캐스팅했다는 점에서 돋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데스크탑 필름이 쉽게 간과해버릴 수 있는 지점들을 고스란히 남겨뒀다는 점에서 그 한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언프렌디드: 친구 삭제>가 새로운 영화적 형식이 존재함을 (상업영화계에) 보여주었고, <서치>는 이 형식이 성공적으로 장르영화에 이식될 수 있으며 어느 정도 상업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음을 증명하고, 다른 장르에서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더 많은 데스크탑 필름이 상업영화의 경계 안에서 등장해야 알 수 있겠지만, <서치>가 끝내 허물지 못한 한계 또한 넘을 수 있는 작품이 등장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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