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의 탈출로 이어지는 충돌
엄지원 X 공효진의 스릴러 <미씽: 사라진 여자>
*스포일러 주의
남편과 이혼소송 중인 지선(엄지원)은 중국인 보모 한매(공효진)에게 아이를 맡기고 숨가쁜 워킹맘의 삶을 살고 있다. 이혼소송이 원하는대로 진행되지 못해 남편에게 아이의 양육권에 넘어갈 위기에 처한 와중에 한매가 아이를 데리고 사라진다. 경찰과남편은 지선이 아이를 빼앗기기 싫어 보모와 아이를 숨겼다고 생각하고, 지선은 홀로 아이를 찾기 위해고군분투 한다. 지선이 아이를 찾는 과정에서 한매가 살아온 삶이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끝을 향해 달려간다.
엄지원의캐릭터는, 모성애에 방점을 찍기보단 모성애라는 이름 밑에서 '엄마는이래야된다'는 압박과 유리천장을 동시에 보여주며 자신의 자리를 잃은 모습을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 아이가 아파 병원에 가는 상황에서도 그의 직장 상사는 ‘이래서애엄마는 안돼’라는 말을 쏟아낸다. 퇴근이 불규칙한 근무상황과동시에 지선이 여성이기에 더욱 압박 받는 상황을 꽤나 집요하게 담아낸다. 사운드 믹싱이 굉장히 잘된영화인데, 덕분에 인물들의 대사 하나하나, 심지어 통화 속대사들까지 관객의 귀에 정확히 전달된다. 덕분에 지선이 받는 심리적 압박의 요인이 확실히 제시된다.
공효진의캐릭터는 남아선호사상이 짙은 가부장적 공간에서 여성은 그저 도구화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충청남도의 농촌으로거래되다시피 시집오게 된 한매는 남편의 성적, 물리적 폭행과 그녀를 아들 낳는 기계로 밖에 보지 않는시어머니 사이에 놓인다. 딸을 낳게 된 한매는, 선천적인병으로 고통 받는 아직 아기인 손녀에게 ‘어차피 딸이지 않나. 애는또 낳으면 된다’라고 말하는 시어머니의 말을 듣고 도망을 택한다. 남성중심의 체계에서 한매의 선택지는 탈주뿐이다.
그래서지선과 한매의 충돌은 가부장적 체계 속에서 곪은 사람들이 체계에서 탈출하는 모습으로 변한다. 가부장적사회가 만들어 놓은 '슈퍼워먼'의 틀에 갖히게 된 사람이마찬가지로 남아선호사상 가득한 공간의 여성과 충돌하면서 서로의 상황에 자연스럽게 이입하게 된다. 영화후반부의 묘한 연민은 여기서 기인한다. 서로가 원수의 관계로 충돌하게 되는 스릴러의 외피를 가지고 있지만, 충돌의 과정에서 그들 각자가 현재의 위치로 몰리게 된 이유를 알게 된다. 여성이사회의 마이너리티로 몰리게 되는 시스템 속에서 자신을 잃고 내몰리게 된 둘은, 이경미 감독의 <비밀은 없다>에서 연홍이 그랬듯 충돌을 통해 시스템에서탈출한다.
다만그들이 맞게 되는 엔딩에 대해선 아쉬움이 남는다. 그들의 눈물은 충돌 속에서 찾은 서로 그리고 자신에대한 연민에서 비롯된다. 그러니까 <미씽: 사라진 여자>는 초인적인 모성애가 강요되는 사회 속에서 마이너리티로받아들여지는 여성 둘의 감정이 터지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문제점은 그 마무리의 연출방식이다. 관객들이 흔히 말하는 신파적 연출이 영화의 마지막에서 이어진다. 바다에빠진 두 사람과 아이의 이름을 수놓은 식탁보가 가라앉는 장면은, 신파라고 불리는 장면들에서 너무나도많이 봐오던 연출이다. 휴머니즘을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사용하며 영화를 마무리지어 버리는 억지 신파적인이야기는 아니지만, 한국상업영화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던 연출 방식이 끝내 아쉽다. 또한 영화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지선의 모습은 영화 내내 쌓아온 지선의 캐릭터와 살짝 어긋나는 느낌이다.
또하나 약간의 아쉬움은 한매 캐릭터에 굳이 한국인인 공효진을 캐스팅할 필요가 있었냐는 것이다. 공효진의연기가 아쉽고 어색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어눌한 한국말과 유창한 중국어를 넘나드는 연기와, 등장할 때마다 관객을 집중시키는 장악력은 역시나 대단했다. 그러나얼마 전까지 유창하게 한국어를 구사하던 [질투의 화신] 속공효진이 떠올라서 일까, 묘한 어색함이 남았다. 중국인으로설정된 캐릭터이기에 중국인을 캐스팅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몇가지 아쉬운 점이 있고, 촘촘하게 이야기들이 설계된 스릴러는 아니다.하지만 날카롭고 명료한 사운드는 다소 흩어지는 순간에도 관객들을 집중시키고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영화가끝난 후 떠오르는 구멍들이 있지만, 영화를 보는 순간만큼은 온전히 몰입하며 보게 된다. 100분의 러닝타임이 숨가쁘게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상업영화로써 성공이다. 엔딩의아쉬움이 무시하기 힘든 단점이지만, 후반부까지 달려온 영화의 에너지가 인상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