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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Nov 04. 2018

익숙하기만 한 모험

<벽 속에 숨은 마법시계> 일라이 로스 2018

 <호스텔>로 연출 데뷔하여 <케빈 피버>, <그린 인페르노>, <노크 노크> 등 호러 및 스릴러 장르를 연출해온 일라이 로스가 이번엔 전체관람가 판타지 호러 영화를 연출했다. 그의 전작 모두가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이며, 고어한 장면들로 가득한 영화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이러한 그의 선택은 의아하기만 하다. 배우이자 감독인 일라이 로스의 필모그래피를 어느 정도 챙겨본 입장에서도 <벽 속에 숨은 마법시계>는 어떤 작품일지 예측할 수 없었다. 게다가 잭 블랙, 케이트 블란쳇, 카일 맥라클란이라는 배우들의 조합 또한 일라이 로스의 선택만큼이나 독특하다. 심지어 영화의 제작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엠블린 엔터테인먼트가 맡았다. 이쯤 되니 이 영화가 어떻게 기획되었고 일라이 로스는 어디서부터 참여한 것인지 궁금해지기까지 한다. 존 벨리어스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는 사고로 부모님을 잃은 루이스(오웬 바카로)가 삼촌 조나단(잭 블랙)과 그의 친구인 플로렌스(케이트 블란쳇)가 사는 집을 찾게 되고, 우연히 악의 길로 빠진 마법사 아이작(카일 맥라클란)이 집 안에 숨긴 마법시계를 통해 세계를 멸망시키려는 계획을 막게 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익숙한 아동용 판타지 영화의 클리셰를 <벽 속에 숨은 마법시계> 또한 착실하게 따라간다. 가족을 잃은 10대, 살면서 본 적도 없는 친척의 존재, 그 친척이 숨기고 있는 비현실적인 사건과 세계 등은 <나니아 연대기>부터 시작된 익숙한 이야기이다. 일라이 로스는 이러한 익숙한 틀을 깨고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 싶다거나 하는 등의 의욕은 없었던 것 같다. 대신 클리셰를 충실히 쫓아가며 전체관람가라는 제한 안에서 자신의 색을 조금씩 보여주려 한다. 고어 장면들을 대체하려는 듯이 살아 움직이는 집과 정원의 물건들이 박살 나고, 전체관람가 치고는 상당히 징그러운 장면들 또한 등장한다. 이러한 장면들 대다수가 일라이 로스만의 색이라기 보단, 잭 블랙의 다른 작품인 <구스범스> 같은 영화들, 또는 <그렘린> 같은 작품에서 이미 봐온 것이라고 느껴지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게다가 아이작을 둘러싼 이야기는 데이빗 린치의 <트윈픽스: 더 리턴>에서 카일 맥라클란이 연기했던 데일 쿠퍼 캐릭터의 이야기를 전체관람가 판타지 호러에 맞춰 차용한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물론 이러한 설정은 아동용 판타지 영화의 클리셰에 상쇄되면서 유치해지고, 이 과정에서 영화는 힘을 잃고 만다. 사실 일라이 로스의 영화들은 초기작을 제외하면 대부분 영화가 내세우는 설정을 끝까지 밀고 가지 못한 채 갈피를 못 잡고 엔딩을 맞이하는 작품들이었다.

 <벽 속에 숨은 마법시계>를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일등공신은 역시 잭 블랙과 케이트 블란쳇이다. 둘의 필모그래피를 비교해보면 함께 영화에 출연하는 것이 이보다 어울리지 않는 조합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둘의 캐스팅은 놀랍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둘의 합은 의외로 만족스러웠다. 언제나 즐거운 코미디를 선보이는 잭 블랙과 그에 맞춰 자신의 연기를 변화시키는 케이트 블란쳇의 조합은 145분의 러닝타임을 적어도 지루하지 않게 끌고 나간다. 둘이 각각 맡은 조나단과 플로렌스라는 캐릭터는 역시 익숙한 클리셰로 가득한 인물들이지만, 두 배우의 색이 더해져 심심하지 않은 캐릭터로 영화 속에 존재한다. 결국 <벽 속에 숨은 마법시계>를 지탱하는 것은 배우들의 힘뿐이었다. 일라이 로스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진 지는 오래되었지만, 그래도 배우들 덕에 지루하지만은 않은 관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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