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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an 10. 2019

산만하게 낭만화된 시대

<레토>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2018

 고려인 출신의 러시아 뮤지션 빅토르 최를 다룬 영화가 제작되었다. 국내엔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소개된 <스튜던트>를 통해 이름을 알린 키릴 세레브렌니코프가 연출하고, 한국인 배우 유태오가 빅토르 최를 연기한 <레토>가 그 작품이다. 2018년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영화는 빅토르 최가 밴드 키노를 결성하기 이전, 멘토이자 동료인 마이크(로만 발릭)를 만나게 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리고 있다. 많은 관객들이 알고 있는 밴드 키노의 전성기 시절은 영화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데이빗 보위, 이기 팝, 루 리드, 토킹헤즈 등 당시 소련에서 금지된 서구권 음악들의 등장을 통해 빅토르 최와 키노의 음악세계를 엿볼 수 있다.

 영화는 빅토르 최의 삶을 고스란히 따라가지는 않는다. 빅토르 최와 마이크가 유사한 비중으로 그려지며, 이를 통해 로큰롤 공연장에서도 좌석에 앉아서 관람해야 했던 당시 소련의 강압적인 문화정책을 직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영화 속 인물들이 보위나 벨벳 골드마인 등 서구권 로큰롤 뮤지션들의 음악을 해적판으로 구하고, 직접 가사를 번역하며 연구하는 모습이 이러한 상황을 반영한다. 때문에 토킹헤즈의 ‘Psycho Killer’, 루 리드의 ‘Perfect Day’, 이기 팝의 ‘Passenger’ 등이 흘러나오는 장면에서 2.76:1 화면비 밖의 레터박스(때문에 영화는 2.39:1 화면비로 상영된다) 밖으로 튀어나오는 애니메이션과 함께 등장하는 뮤지컬 시퀀스는 서구권 음악을 경유하여 자유를 이야기하는 장면이 된다. 빅토르 최나 나타샤(이리나 스타르셴바움) 등 주요 등장인물 외의 행인들까지 뮤지컬 시퀀스 안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이 장면들은 문화적 탄압 상태에 있는 소련의 당시 상황 속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레토>의 주제는 ‘자유’라기 보단 ‘낭만’에 가깝다. 종종 등장하는 1:1 화면비의 컬러 영상 등은 당시의 레닌그라드 인디 로큰롤 씬을 적극적으로 낭만화한다. 때문에 <레토>는 빅토르 최나 마이크의 삶을 따라가는 전기영화라기 보단, 이들을 전면에 내세운 시대극으로 읽힌다. 카메라는 빅토르 최, 마이크, 나타샤 세 인물을 분주하게 오가며 영화 속 시간을 어떤 기억으로 만들어내려 한다. 종종 등장하는 뮤지컬 시퀀스마저 이러한 낭만화에 가담한다. 또한 제4의 벽을 깨며 “이것은 실제 일어난 일이 아님”을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어떤 인물은 과도한 산만함만을 더할 뿐이다. <레토>가 긴 호흡의 TV 드라마였다면 각 인물들에 충분히 집중하며 지금과 같은 연출법으로 성과를 낼 수 있었겠지만, 2시간이 조금 넘는 러닝타임 안에서 이들 모두를 시도하는 것은 산만한 기교에 불과하다. 영화를 보고 기억에 남는 것이 빅토르 최나 마이크 등의 레닌그라드 뮤지션들의 음악이 아닌, 토킹헤즈, 이기 팝, 루 리드 등의 음악이라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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