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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an 10. 2019

'태어남'이라는 디스토피아

<가버나움> 나단 라바키 2018

 베이루트에 사는 자인(자인 알 라피아)이라는 소년이 부모를 고소한다. 출생신고도 하지 못하여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사람인 자인이 부모를 고소한 이유는 “이 세상에 태어나게 했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 검사로도 출연하는 나단 라바키 감독은 자인의 행적을 쫓으며 난민인 라힐(요르다노스 시프로우)과 요나스(보루와티프 트레저 반콜) 모자의 이야기까지 영화 안으로 끌어들인다. <가버나움>은 살아있는 인간이지만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처지의 빈민 아동청소년과 난민의 삶을 통해 현실에 존재하는 디스토피아를 그려낸다. 

 영화에 출연하는 주요 배역들은 영화 속의 삶과 실제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다. 자인을 연기한 자인 알 라피아는 베이루트의 시장에서 배달 일을 했었고, 라힐을 연기한 요르다노스 시프로우는 실제 난민 여성이며, 한 살 배기 아기인 보루와티프 트레저 반콜은 난민 가족의 아이이다. <가버나움> 속 이야기가 실화는 아니지만, 배우들의 실제 삶이 이야기와 연기 속에 녹아들어있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일 것이다. 때문에 종종 영화 속 인물의 삶과 배우가 겪었을 삶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장면이 등장한다. 영화는 자인과 라힐을 비롯한 영화 속 인물들을 매개로 ‘태어났기 때문에 존재하지도 않는 삶을 이어가야 하는’ 상황을 전달한다. ‘부모님을 고소한 소년’이라는 설정만 제외하면 현실과 다를 바 없는 <가버나움>의 이야기는 픽션임과 동시에 현실에 발을 딛고 있다.

 때문에 영화 속 상황은 단순한 불행 포르노로 인물들을 착취하지 않는다. 나단 라바키 감독은 영화 속에서 검사로 출연하여 자신의 스탠스를 확실히 한다. 그가 <가버나움>을 통해 하고 싶었던 것은, 법적으로는 존재하지도 않던 이들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되찾아주는 것이다. 그것이 ‘부모를 고소한다’는 극단적 방법으로 발화되었지만, 거기에 도달하는 과정 속에서 이러한 설정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다. <가버나움>은 2018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지만, 자인을 비롯한 배우들은 영화제 일주일 전까지 법적으로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단 라바키 감독을 비롯한 <가버나움>의 제작진은 출연진의 삶을 지원하기 위해 ‘가버나움 재단’을 설립했다고 한다. 영화의 성공으로 가능할, 일종의 ‘픽션으로 현실을 구제하기’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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