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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an 12. 2019

<윤형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윤형근은 김환기를 스승으로 둔 홍익대학교 서양화과 출신의 작가이다. 그는 70년대 한국의 단색화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작가 사후 11주기를 맞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진행된 이번 <윤형근>전은 단색화뿐만 아니라 김환기의 제자로서 스승에게 받은 영향과 앵포르멜 미술, 단색화 등 한국 현대미술의 시대별 흐름의 영향이 동시에 나타나는 작가인 윤형근의 세계를 총체적으로 담아낸다. 동시에 아카이빙 형식의 전시를 통해 윤형근이 한국 밖의 미술계 흐름과 어떻게 연관 지어 해석할 수 있는지 또한 엿볼 수 있다.

<윤형근>전은 4부로 나뉘어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1928년 윤형근의 출생부터 2007년 사망하기까지의 생애를 담은 연표, 그의 생애와 관련된 기사나 사진, 그리고 몇몇 드로잉과 회화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그의 초기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이 공간에서 윤형근이 스승인 김환기의 영향과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을 따라 변화하는 사조들에서 영향받았음을 알 수 있다. 가령 1부에 전시된 1966년 <제목 미상> 작품은 김환기의 1965년 작품 <아침의 메아리> 등과 유사한 조형을 보여준다. 점처럼 보이는 요소들을 활용한 조형, 푸른색을 활용한 색감 등은 윤형근이 김환기로부터 받았을 영향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동시에 두터운 마티에르가 주는 물질감, 형상이 드러나지 않는 조형 등에서 60년대 중반까지 한국 미술계를 강타했던 앵포르멜 미술의 경향이 드러나기도 한다. 이는 프랑스에서 앵포르멜 경향을 습득한 김환기의 영향과 당시 한국 미술계 작가 대부분이 지녔던 경향이 동시에 드러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그의 작업들은 1973년 반공법 위반으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초를 겪은 이후 변화하게 한다. 이 때문에 1부 끝자락에 전시된 그의 1972년 작품 <청색>은 1973년 이후 등장할, ‘천지문’으로 표현되는 <청다색> 연작이 등장하게 될 것이라는 예고처럼 느껴진다. 수직으로 그려진 청색의 선들로 이루어진 <청색>은 유채임에도 수채화처럼 얇고 묽게 물감을 사용하고, 물감을 캔버스 위에 여러 차례 덧칠한 흔적이 드러난다. 마치 쇠창살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이 작품의 조형은 단색화의 기법을 윤형근이 받아들이기 시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부와 3부는 ‘숙명여고 사건’ 이후 변화한 그의 화풍이 드러나는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윤형근의 <청다색> 연작, 작가 스스로 ‘천지문’이라 부르는 일련의 작품들이 그것이다. 이는 하늘에 가까운 블루와 땅의 색인 엄버(Umber)를 섞어 탄생하는 검정에 가까운 색을 사용한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을 실제로 관람하면 같은 위치에 여러 차례 붓질을 반복해 작업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물감이 흘러내린 자국이 보일 정도로 유채를 수채화의 방식으로 사용하고, 단색화하면 떠오르는 반복적인 덧칠을 통한 탈표현적, 탈주체적 방식으로 작업했다. 단색화를 이야기할 때 70년대 초반 박정희 정권의 탄압이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 모든 단색화 작가에게 해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반공법 위반 이후 이러한 작업을 이어가는 윤형근에게는 정치적 해석이 설득력이 있다. 형식도 형태도 단순하고 반복적인 그의 작업들은 도리어 그가 지녔을 극도의 분노와 울분을 담아낸다. 계속해서 청다색을 덧칠하지만 동시에 자신을 지워내는 그의 작업들은 두 개의 수직 기둥 사이에 공간을 남겨둔다. 이는 작가의 표현대로 문처럼, 또는 거대한 두 절벽 사이에 놓인 길처럼 보이기도 한다. 당시 작가들이 기존의 서구중심 추상에 매몰되어 있던 것을 반성하며 한국적인 것 혹은 동양적인 것으로 여겼던 자연에 관한 탐구가 윤형근의 작품에서도 미세하게나마 풍겨온다. 1980년 광주민주항쟁을 목격하고 그린 <다색> 작품에서는 수직의 기둥들이 왼쪽으로 쓰러지고 있는 형상을 보여준다. 기둥이 쓰러지니, 반복적으로 덧칠하는 작업에서 흘러내리는 물감의 흔적은 더욱 많은 자국을 남기게 된다. 마치 군인들에 의해 희생된 광주 시민들의 피를 담아내려는 것만 같은 작품이다. 이 작품으로 마무리되는 2부의 구성은 그의 무심함과 슬픔을 동시에 경험하게 하며, 70년대 등장한 단색화가 윤형근의 이러한 면모를 드러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도구가 되었다는 점을 통해 그의 작품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해석의 틀을 제공한다.

3부의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작품들에서도 70년대 그의 작품들처럼 여전히 청다색을 활용한 작품들이 이어지는데, 대신 문의 형상은 사라지고 거대한 직사각형이 그림 대부분을 차지한다. 도리어 청다색에서 청색을 줄여가며 순수한 검정의 세계에 가까워지고 있기도 하다. 열린 문 혹은 틈을 지녔던 70년대의 <청다색> 연작과는 달리, 80년대 후반 이후의 작업들은 관람객이 닫힌 색의 심연만을 보게 된다. 마크 로스코의 작품들을 연상시키기도 하는 이 작업들에서 윤형근이라는 작가는 더욱 지워지고, 작품과 그것을 바라보는 관람객이라는 두 존재의 관계만이 남게 된다. 3부의 디스플레이는 아예 마크 로스코의 로스코 채플을 연상시키는 방식으로 되어있는 구간마저 있는데, 이는 윤형근의 후기 작품들이 보여주는 심연의 세계를 더욱 체험적으로 경험할 기회를 제공한다. 윤형근의 후기작이 보여주는 닫힌 색의 세계는 한국 현대미술계의 영향과 70년대부터 80년대 초중반에 이르는 정치적 상황이 만들어내는 압력과 분노를 거쳐 윤형근이 도달한 결론이 아닐까 싶다. 어느 정도 열린 세계를 보여주었던 윤형근의 회화는 80년대 후반에 들어 닫힌 색의 세계, 색의 심연으로만 열려 있는 세계로 접어든다.

4부는 윤형근이 1983년부터 2007년 작고할 때까지 거주했던 서교동의 스스로 설계한 집의 작업실과 생활공간을 전시장에 옮겨왔다. 윤형근이 생전에 남긴 인터뷰와 일기, 사진, 노트 등의 작품들이 아카이빙 형식으로 남아있다. 이렇게 정리된 공간을 통해 윤형근의 후기 작품들을 비롯해 그가 지닌 예술관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또한, 이 전시장에는 그의 스승인 김환기의 초기 점화 한 편과 도널드 저드의 작품이 놓여있었다. 도널드 저드는 60년대 미국 미니멀리즘 아트의 대표 작가 중 하나로, 윤형근이 그의 작품을 구매하고 저드 또한 윤형근의 작품을 구매했었다고 알려졌다. 미니멀리즘 아트의 반복적인 나열과 윤형근의 단색화가 추구하는 반복을 통한 탈표현적 회화는 유사한 지점이 있다. 두 작가 모두 반복을 통해 오브제나 회화 재료의 물성을 강조하고, 작품에서 작가의 영향을 덜어내며 관객과 작품 간의 관계성을 중시한다. 미국과 한국이라는 물리적 거리를 둔 두 작가가 교류했던 이유는 서로의 작품에서 유사점을 발견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전시장 벽에 쓰여 있던 “예술은 이론을 가지고 되는 문제가 아니다. 천진무구한 인품에서만이 영원불변한 향기로운 예술을 생성할 것임을 절감한다.”라는 윤형근의 일기 속 문장은, 후기로 갈수록 작가 자신을 지워내고 작품과 관객이라는 존재들의 관계, 작품 속 닫힌 색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에 집중한 그의 예술관의 핵심을 이야기해준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윤형근>전은 윤형근의 여러 작품뿐만 아니라 드로잉, 일기 등의 자료를 통해 그의 예술세계를 총체적으로 재구성하는 전시이다. 단색화의 범주에 머물러 있는 작가로 알려졌지만, 단순히 단색화의 특징이나 경향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윤형근의 작품들을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전시였다. 60년대부터 80년대 후반에 이르는 그의 작품들은 한국미술의 경향성을 따라가지만, 그 경향 안에 매몰된다거나 경향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세계관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윤형근>전은 오롯이 그의 세계를 사유할 수 있는, 단색화를 통해서만 그의 작품을 해석하는 납작한 탐구방식으로는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그의 세계관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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