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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an 12. 2019

<프란시스 알리스: 지브롤터 항해일지> 아트선재


 아트선재에서 프란시스 알리스의 국내 첫 개인전인 <프란시스 알리스: 지브롤터 항해일지>를 관람했다. 이번 전시는 쿠바 하바나와 미국 플로리다의 키웨스트, 아프리카와 유럽 사이의 지브롤터 해협에서 진행된 두 번의 ‘다리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한 프란시스 알리스의 작업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번 전시의 키워드는 ‘경계’이다. 국가 간 충돌 혹은 이해관계에 따라 설정된 국경은 눈으로 보이는 가시적인 것은 아니지만, 일종의 상징으로서 넘을 수 없는 선을 상정한다. 교통과 인터넷의 발달로 ‘세계화’라는 단어가 전 세계에 통용되고 있지만, 국경이라는 경계는 더욱 선명해지며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난민들은 실체 없는 경계를 넘기 위해 목숨을 건다. 미국과 멕시코 사이의 국경에 장벽을 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 이후, 국경은 서구권 국가와 그 밖의 국가를 분리하는 상징을 넘어 물리적인 실체로서 기능하려는 개념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프란시스 알리스는 이러한 경계, 특히 국경이라는 경계가 세계화라는 구호와 충돌하며 일으키는 모순을 꼬집는다. 그리고 작품을 통해 경계를 넘는 상상력을 발전시킨다.



전시장 3층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에는 영상, 조형물, 페인팅,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매체가 사용되었지만, 작품 대부분에서 공통된 제스처를 읽을 수 있다. 이것은 미국-남아메리카, 유럽-아프리카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경계를 다양한 상상력을 통해 다리를 놓으려 한다는 것이다. 유럽대륙에서 뻗은 사람 다리의 그림, 지도 위에서 맞물려 다리처럼 놓인 두 개의 포크, 작은 보트들을 한 줄로 세워 쿠바 하바나와 미국 플로리다를 이으려는 시도, 한쪽에서 다른 쪽을 향해 계속해서 던지는 물수제비, 각기 다른 전망대에서 반대편을 바라보는 관광객들의 시선 등 두 공간 사이의 경계 위에 상상된 다리를 놓으려는 다양한 상상력을 시도한다. 이러한 시도들은 국경의 존재를 단순히 상상된 상징에 머무르는 것으로 격하시키며, 경계를 넘는다는 상상력을 실제 행동에 옮길 가능성을 제공한다.

2층에 있는 작품인 <지브롤터 항해일지>는 이러한 상상력을 어느 공간에서 어떻게 발휘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때문에 3층을 먼저 보고 2층으로 내려와 관람하는 것을 추천한다) 2채널 영상 설치작품인 <지브롤터 항해일지>(2008)는 각각 스페인 타리파와 모로코 탕헤르의 해변에서 신발로 만든 배를 든 아이들이 줄지어 서로를 향해 바닷속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담아낸다. 서로 반대편에 있는 해변에서 출발한 아이들은 두 개의 스크린 사이에 놓인 의자에 앉아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의 머릿속 상상된 공간에서 만난다. 3층에 전시된 영상작품인 <다리>(2006)에서 하바나와 플로리다 사이에 배로 다리를 놓으려는 시도는 결국 참가자들이 떠나가며 분해되지만, <지브롤터 항해일지> 속 아이들의 행진은 관객의 상상된 공간 안에서 만나 하나의 행렬-다리의 형상을 이룬다.

<루프>(1997)는 이번 전시에서 관람할 수 있는 작품 중 가장 오래된 작업이다. 이는 멕시코와 미국 사이의 국경을 넘지 않고 티후아나에서 샌디에이고로 넘어 가기 위해 우회적인 세계 일주를 하는 것에 대한 기록을 담은 작품이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프란시스 알리스의 작업은 우회 대신 상상을 통한 다리 놓기를 택한다. 물론 상상된 다리를 통해 실제 국경을 넘을 수는 없다. 다만 물리적인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국가주의의 상징인 국경을 넘는다는 상상력을 통해, 우리는 그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국가의 상상력을 통해 그려진 경계는, 개인 혹은 개인들의 집합을 통해서도 넘어설 수 있다. 프란시스 알리스의 작업은 이를 계속해서 실험하는 과정임을 이번 전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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