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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an 22. 2019

인터랙티브 안에서 고립된 관객

<블랙미러: 밴더스내치> 데이비드 슬레이트 2018

 영국의 케이블 방송국 채널4의 히트작 중 하나인 <블랙미러>는 2016년 10월 공개와 함께 넷플릭스 오리지널 컨텐츠가 되었다. 현재 4개의 시즌, 총 19편의 에피소드가 공개되어 있고, 올해 하반기 시즌5 공개가 예정되어 있다. 영국의 코미디언인 찰리 브루커가 제작, 기획, 각본을 맡고, 에피소드 별로 다른 감독들이 연출하는 옴니버스 형식의 <블랙미러>는 (첫 에피소드인 <공주와 돼지>는 달랐지만) 근미래를 배경으로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선보이는데 주력하고 있다. 가령, 모두가 실시간으로 상대방을 평가하는 SNS를 통해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는 사회, 눈으로 보는 모든 것이 기록되고 재생 가능하며 심지어 상대방을 블러 처리할 수 있는 기술, 의식을 작은 칩에 옮겨 가상세계 안에서 영생할 수 있는 기술 등이 <블랙 미러>에 소개되었다. <블랙미러>가 넷플릭스 오리지널이 된 이후 어떤 변화가 있을지 궁금했다. 채널4를 통해 방영되던 시절보다는 쇼의 수위나 충격의 정도가 약해졌다는 평가도 많았다. 그럼에도 <샌 주니페로>처럼 다른 에피소드와는 차별화되는 독특하면서도 소중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도, <USS 칼리스터>나 <블랙 뮤지엄>처럼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조금 더 깊은) 고민을 보여주기도 하는 등 새로운 길을 모색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다만 이는 내용적인 변화이지, <블랙미러>가 기존에 가졌던 형식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2018년 말에 공개된 <밴더스내치>는 조금 달랐다. 인터랙티브 필름을 표방한 <밴더스내치>는 영화 속의 여러 순간들을 관객이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작품이다. 가령 아침에 먹을 시리얼의 종류나 버스에서 들을 음악과 같은 사소한 것부터, 동업 제안이나 죽은 어머니에 대한 상담을 이어 나갈 것인지 등 중요한 순간의 결정까지 다양한 순간들이 관객의 선택지에 놓이게 된다. 영화의 내용은 단순하다. 죽은 어머니가 남긴, 이야기 속 주인공의 행동을 독자가 결정할 수 있는 책인 ‘밴더스내치’를 원작으로 한 동명의 게임을 만드는 스테판(핀 화이트헤드)은 게임 회사의 제안을 받고, 프로그래머인 콜린(윌 폴터)의 도움을 받아 게임을 완성하려 한다. 굉장히 직선적인 이야기이지만, 넷플릭스는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라는 플랫폼의 가능성을 활용하여 이를 인터랙티브 필름으로 제작했다. 관객은 스테판의 행동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게 되고, 그에 따라 10개가 넘는 다양한 결말을 맞이할 수 있다. 넷플릭스는 <밴더스내치>의 러닝타임을 90분으로 표기하고 있지만, 어떤 선택지를 고르냐에 따라서 러닝타임은 40분에서 두 시간 이상까지 다양한 길이로 존재하게 된다. <밴더스내치> 한 편을 위해 300분 분량의 영상이 사용되었다고 하니, 러닝타임과 엔딩의 다양성은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사실 인터랙티브 필름이 <밴더스내치>만의 혁신적인 성과는 아니다. 최초의 인터랙티브 필름은 1953년 CBS의 어린이 프로그램인 <윙키 딩크 엔드 유>였고, 1962년 체코의 영화감독 라두스 킨세라가 만든 <Kinoautomat>가 첫 인터랙티브 영화였다. 1993년에는 좌석에 달린 조이스틱을 통해 상영관 안 관객들의 다수결 투표로 진행되는 극장용 인터랙티브 필름 <아임 유어 맨>이 개봉했다. 국내에선 조영호 감독이 1999년에 연출하고 인터넷으로 공개된 <영호프의 하루>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처음 인터랙티브 필름을 접한 것은 놀이공원에서였다. 초등학생 때 (아마도 롯데월드로 추정되는) 한 놀이공원에서, 4D 효과와 함께 좌석에 달린 버튼으로 투표를 진행하여 선택지를 다수결로 고르게 하는 어트렉션을 탔던 기억이 있다. <아쿠아맨>처럼 바닷속 세계를 탐험하는 내용의 어트랙션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편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한 인터랙티브 필름인 <스티븐 스필버그 디렉터스 체어>는 일종의 게임으로 받아들여졌다. Interactive Cinema Group의 작업들 중 하나인 <NEW ORLEANS IN TRANSITION : 1983-1986>은 네티즌들이 영화의 시퀀스들을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하고 인터랙티브 툴을 통해 도시의 변화 과정을 감상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넷플릭스는 <밴더스내치> 이전에 <마인크래프트: 스토리 모드> 등 아동용 컨텐츠를 통해 플랫폼에 인터랙티브 필름 형식을 시험해왔다. 인터랙티브 필름은 짧지 않은 역사 속에서 아동용 컨텐츠, 인터넷 드라마, 극장용 영화, 실험영화, 다큐멘터리, 게임 등 다양한 형식으로 관객들에게 받아들여졌다. 넓은 의미에서, 영화적 내러티브와 카메라 구도 등을 채택하는 <레드 데드 리뎀션>이나 <마블 스파이더맨> 등의 콘솔 게임들도 일종의 인터랙티브 필름의 범주 안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인터랙티브 필름들은 언뜻 보기에 관객(혹은 플레이어)에게 서사에 대한 자유도를 제공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인터랙티브 필름의 첫 사례인 <윙키 딩크 앤드 유>(이 작품은 TV화면에 플라스틱 판을 대고, 캐릭터가 이야기를 진행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예를 들어 길을 그려준다던가 하는 방식이었다)가 알려주듯, 관객의 역할은 극 중 인물이 정해진 서사를 쫓아가는 것을 보조하는 것에 그친다. <밴더스내치>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내러티브와 형식 양측에서 관객은 스테판을 조종하는 의문의 손길로 존재하지만, 여러 차례의 선택지 이후에 도달하는 엔딩들에서 관객이 맞이하는 것은 ‘되돌아가기’ 혹은 다시 등장하는 갈림길 직전의 선택지이다. 결국 관객은 (뒤로 가기나 엔드크레딧 보기 버튼을 누르지 않는 이상) 영화가 제시하는 여러 엔딩들을 향해 계속해서 관람(혹은 플레이)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과정 끝에 도달하는 엔딩들과 이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결국 열린 결말 대신 닫힌(정해진) 결말로 치닫는다. ‘어느 타이밍이 선택지가 등장할 것인가’라는 포인트를 통해 만들어진 서스펜스는 관객에게 선택과 서사 구성에 대한 자유로운 선택권이 있다는 착각을 심어준다. 그러나 관객이 도달하는 지점은 인터랙티브적 구조를 취한 극영화들, 가령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이나 <메멘토> 또는 더그 라이만의 <엣지 오브 투모로우>를 위시한 타임루프 영화들의 닫힌 결말과 유사하다. <밴더스내치>가 공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영화 속 선택지와 엔딩을 표로 만든 것이 SNS에 돌아다니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레드 데드 리뎀션>이나 <GTA>와 같은 오픈 월드 게임에서도 몇 가지 정해진 엔딩으로 향할 수밖에 없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밴더스내치>의 엔딩 중 ‘소위 넷플릭스 엔딩’으로 불리는 엔딩이 있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의지(관객의 선택지)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스테판은 ‘자신을 조종하는 것이 누구냐’며 소리치는 장면 이후 ‘넷플릭스’와 8비트 게임 아이콘 같은 선택지가 등장한다. ‘넷플릭스’를 선택하면 스테판이 보고 있는 컴퓨터 화면에 넷플릭스에 대한 설명이 등장한다. 이후 스테판은 상담사와 결투한 뒤 아버지에게 끌려가거나, 상담받던 장소가 넷플릭스 영화의 촬영 장소였다는 것이 드러나며 끝난다. 이러한 엔딩은 관객의 능동적인 선택으로 인해 어떤 결말에 도달한다기 보단, 이미 넷플릭스가 만들어 놓은 어떤 미로 안에 관객들이 위치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영화 안에서 스테판이 만든 게임은 경로가 막힐 때마다 게임 자체가 멈춰버리지만, <밴더스내치>는 앞의 내용들을 요약해주는 짤막한 몽타주 플래시백을 통해 이야기를 앞으로 되돌려버린다. 결국 영화 안에서 관객은 넷플릭스로 지정된다. 자유로운 관객의 능동성과 열린 결말의 가능성을 홍보도구로 삼은, 인터랙티브 필름을 표방한 <밴더스내치>는 형식에서나 내용에서나 관객을 고립시키고야 말게 된다. 

 결국 <밴더스내치>는 (상업적/내러티브적 측면에서) 인터랙티브 필름의 한계를 드러내는데 그친다. 이것이 넷플릭스의 플랫폼과 <블랙미러>의 브랜드를 통해 탈-역사적으로 넷플릭스의 구독자 앞에 등장했을 뿐이다. 이 영화에 새로울 것은 없다. 단지 넷플릭스가 <블랙미러>라는 컨텐츠를 통해 이를 시도했다는 점이 <밴더스내치>를 새로워 보이게 만드는 지점이다. 영화 내내 반복되는 “모든 것은 정해져 있다”는 말이나 기술과 형식을 가지고 노는 <블랙미러> 시리즈의 특성이 반영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밴더스내치>는 게임이 아니라 영화”라는 찰리 브루커의 말 또한 <블랙미러>가 그간 이어온 방향성과 함께 <밴더스내치>가 ‘결국 닫힌 결말로 향하는’ 작품이라는 지점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밴더스내치>는 내러티브를 활용하는 인터랙티브 필름이 부딪힐 수밖에 없는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다. 언뜻 그 한계를 인지하며 가지고 놀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스스로를 과시하며 관객을 동참시키기보단 고립시키는 한계. 생각해보면 <블랙미러>에서 가장 인터랙티브한 작품은 <샌 주니페로>였다. 80년대, 90년대, 2000년대를 넘나들며 두 주인공의 로맨스에 관객을 적극적으로 동참시키고, <블랙미러>의 에피소드 중 유일하게 엔딩 이후를 적극적으로 상상하게 하는 작품. <밴더스내치>는 이러한 상상력으로부터 관객-플레이어를 고립시키고 선택지로 구성된 미로 속만을 빙빙 돌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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