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래스> M. 나이트 샤말란 2018
*스포일러 포함
19년 만에 <언브레이커블>의 속편이 제작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게다가 <스플릿>(국내 개봉명 <23 아이덴티티>)와 공동 속편이라는 점에서, <언브레이커블>과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팬들은 더욱 놀랐을 것이다 <언브레이커블>이 코믹스의 클리셰를 가지고 장난친 일종의 메타-픽션이었다면, <스플릿>은 히치콕의 <싸이코>부터 데이빗 핀처의 <파이트 클럽>이나 김지운의 <장화, 홍련>처럼 다중인격을 다룬 스릴러 영화 정도로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때문에 두 영화의 공동 속편인 <글래스>를 보기 전까진 <스플릿>의 쿠키영상에 등장한 데이빗 던(브루스 윌리스)의 모습에 의구심이 먼저 들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영화를 하나의 속편으로 연결하는 것이 조금은 생뚱맞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글래스>는 <언브레이커블>로부터 19년 뒤, <스플릿>으로부터 3년이 지난 시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데이빗은 성인이 된 아들 조셉(스펜서 트리트 클락)과 보안용품 상점을 운영하며 자신의 초능력을 통해 도시의 자경단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23개의 다중인격을 지닌 케빈(제임스 맥어보이)은 3년 전에 깨어난 ‘비스트’를 다시 깨우기 위한 제물을 찾아 도시의 사람들을 납치한다. 데이빗은 케빈을 찾기 위해 도시를 순찰한다. 케빈을 찾은 데이빗은 납치된 사람들을 구하고 그와 결투를 벌이지만, 데이빗과 케빈은 갑자기 경찰을 대동하고 나타난 엘리 스테이플(사라 폴슨) 박사에게 붙잡혀가고 만다. 어느 정신병원에 수감된 둘, 그 병원에는 19년 전의 기차 사고를 비롯한 여러 테러를 일으킨 엘리야(사무엘 L. 잭슨) 또한 수감되어 있다. 엘리는 데이빗, 케빈, 엘리야 세 인물이 자신이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망상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조셉, 케이시(안야 테일러 조이), 프라이스 부인(샬레인 우다드)을 불러 모아 이들의 망상을 없애려 한다. 한편, 엘리야는 세 명의 능력이 망상이 아닌 실제 가능한 것이라 생각하고, 자신만의 계획을 진행시킨다.
<글래스>는 예상보다 매끈하게 앞선 두 영화를 결합시킨다. <언브레이커블>의 코믹스 메타-픽션 요소를 끌어와 <스플릿>의 ‘비스트’를 이야기 안으로 흥미롭게 봉합한다. MCU나 DCFU의 화려한 기술이나 신적인 초능력은 없지만, <글래스>는 스스로 코믹스 혹은 코믹스 기반의 영화가 가진 클리셰를 엘리야의 계획 안에 집어넣는다. <언브레이커블>의 이야기가 “빌런이 존재하면 그의 대립항인 히어로도 존재한다”는 것이 기존 코믹스의 클리셰를 뒤집은 것이었다면, <글래스>는 “초능력자가 공적인 영역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대결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다”는 내러티브를 엘리야의 계획으로써 활용한다. 스파이더맨과 그린 고블린이 퍼레이드 한가운데서 처음 격돌하는 <스파이더맨>, 엑스맨들이 자유의 여신상에서 브라더후드와 격돌하는 <엑스맨>, 뉴욕 한복판을 쑥대밭으로 만든 어벤저스와 치타우리 종족의 전투 등을 떠올려보면 엘리야가 세운 계획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다만 <글래스>는 이러한 클리셰를 우회하여 보여준다. 러닝타임 내내 등장하는 오사카 타워에는 데이빗도, 케빈도, 엘리야도 도달하지 못하며, 이들이 격돌하는 공간은 그들이 수감됐던 정신병원 앞의 정원으로 한정된다. 또한 히어로 데이빗, 빌런 글래스와 비스트의 이분법적 구도는 엘리가 속한 ‘초능력자들을 제거하여 세상의 균형을 유지하는 비밀조직’이라는 반전에 의해 무너진다. 때문에 데이빗과 비스트가 격돌하는 와중에 코믹스 클리셰들을 읊는 엘리야의 대사들은 언뜻 코믹스가 오랜 세월 이어온 이야기의 틀을 놀리는 것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영화의 엔딩에서는 엘리야의 진짜 계획이 드러난다. 엘리가 정신병원에 설치한 수많은 CCTV에 찍힌 데이빗과 비스트의 싸움이 인터넷이라는 공적공간에 생중계되고, 조셉, 케이시, 프라이스 부인에 의하여 다시 한번 퍼지게 된다. 결과적으로 엘리야가 신봉하던 코믹스의 내러티브는 코믹스 캐릭터들(데이빗, 비스트, 글래스)의 사이드킥/파트너이자 코믹스의 독자(조셉, 케이시, 프라이스 부인)에 의해 완성된다. 인터넷 커뮤니티나 유튜브, 트위터 등의 SNS를 통해 전개되는 2차 창작이 코믹스의 캐논으로 인정받거나 혹은 평행우주 개념을 통해 한 세계관 안으로 진입하게 되는 사례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엔딩이다.
영화가 두 편의 전작, 세 명의 캐릭터를 하나의 영화 안에 봉합시키는 방식도 독특하다. 대표적으로 데이빗과 케빈이 정신병원에 붙잡혀와 수감되는 장면을 꼽을 수 있다. 각각 능력을 제한당하는 방에 수감된 데이빗과 케빈은 엘리와 대화를 나눈다. 이 장면은 통상적인 대화 장면, 그러니까 데이빗과 엘리, 케빈과 엘리와 같은 두 명의 인물이 주고받는 숏-리버스 숏 구도를 벗어난 편집으로 그려진다. 대화 장면의 상상선에 맞춰 캐릭터의 얼굴을 정면에서 촬영한 숏들은 어느 순간 답변하는 대상을 뒤바꿔버린다. 가령 데이빗-엘리-케빈-엘리의 순서대로 숏이 등장할 때, 데이빗과 엘리의 대화가 케빈과 엘리의 대화와 명확히 구분되는 대신, 엘리가 말을 건네는 대상이 데이빗인지 케빈인지 모호하게 리버스 숏의 순서를 뒤섞어버린다. 많은 경우에 이러한 편집은 명백한 오류겠지만, <글래스>에서 이러한 편집은 계속하여 히어로와 빌런의 이분법적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엘리(와 그가 속한 비밀조직)가 숨겨진 빌런임을 보여주는 복선으로 기능한다. 엘리가 데이빗, 케빈, 엘리야를 한 자리에 모아 심문하는 장면에서 세 캐릭터와 엘리가 주고받는 숏-리버스 숏의 구도 또한 세 캐릭터 대 엘리라는 구도를 만들어낸다. <언브레이커블>의 (필름으로 촬영된) B컷 혹은 삭제 장면들이 종종 등장하는 것도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심지어 필름으로 촬영된 <언브레이커블>의 오프닝과 디지털로 촬영된 장면이 (아마도 CG를 통해) 한 숏으로 이어지는 장면의 기묘함은 샤말란의 야심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렇다고 <글래스>가 샤말란의 최고작이라고 하긴 어려울 것이다. 샤말란의 가장 야심 찬 영화이긴 하지만, <언브레이커블>보다 깔끔하지 못하고, <식스센스>처럼 놀랍지도 못하다. 제임스 맥어보이의 연기는 (조금은 자연스러워졌지만) 여전히 연기 차력쇼를 하는 것 같고, 케이시 캐릭터의 활용은 <스플릿>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여성혐오적인 측면이 있으면서, 동시에 그와 케빈의 관계는 납득하기가 쉽지 않다. 언뜻 고대신을 모시는 <케빈 인 더 우즈>의 비밀조직을 연상시키는 엘리와 그의 배후는 조금 당황스럽고 거칠게 등장한다. <언브레이커블>에서 사용되지 못한 장면들의 등장은 반가우면서도 이야기를 조금 늘어지게 만든다. <글래스>가 예상보다 즐겁게 관람할 수 있는 영화인 것은 맞다. 세 캐릭터가 한 영화 안에서 봉합되는 방식, 사이드킥 캐릭터들의 활용, 온라인으로 옮겨간 초능력자들의 격돌 장소 등은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들을 제공한다. 특히 기존 히어로 영화나 코믹스들이 정체를 감춰야 하는 처지, ‘초능력자’라는 상황이 만들어내는 소수자성 등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과는 다르게, ‘초능력자가 존재한다고 믿는 것’을 영화의 테마로 삼았다는 점이 <글래스>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다. 이는 “<글래스>는 샤말란이 코믹스 팬보이들을 놀리려고 만든 영화이지 않을까?”라는 몇몇 평자의 말과는 다르게, 샤말란이 코믹스에 지닌 애정과 집착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샤말란 같은 사람이 아니면 또 누가 코믹스 클리셰를 줄줄이 대사로 읊으며 이를 가지고 노는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