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타: 배틀엔젤> 로버트 로드리게즈 2019
기시로 유키토의 만화 [총몽]이 드디어 실사화 되었다. 제임스 카메론이 오랜 시간 연출하기 위해 매달렸지만, 결국 그가 제작하고 <데스페라도스>, <스파이 키드>, <마셰티>의 로버트 로드리게즈가 연출을 맡게 되었다. <알리타: 배틀엔젤>은 로드리게즈의 첫 블록버스터 작품으로, 그의 영화적 취향을 대형 자본 속에서도 맞춰줄 수 있는 제작자는 아마 카메론이 유일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알리타: 배틀엔젤>의 연출자로 로드리게즈가 발탁된 것은 은근히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소식이었다. 영화는 이도 박사(크리스토프 발츠)가 고철도시의 폐기장에서 뇌가 살아있는 망가진 사이보그를 줍게 되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딸을 위해 만든 몸체에 주워 온 뇌를 이식하고, 그에게 알리타(로사 살라자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전쟁으로 ‘자렘’을 제외한 공중도시가 모두 파괴되는 대추락이 일어나고, 대추락 이전에 만들어졌던 알리타는 휴고(키언 존슨)의 도움을 받아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으려 한다. 한편, 고철도시의 인기 스포츠인 모터볼을 주관하는 벡터(마허샬라 알리)와 시렌(제니퍼 코넬리)은 알리타에 얽힌 비밀이 드러나는 것을 저지하려 한다.
<타이타닉>과 <아바타>의 제임스 카메론이 제작에 참여한 만큼 거대한 스케일과 비주얼을 자랑하는 작품이다. 웨타 디지털의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고철도시와 공중도시의 비주얼은 유사한 세계관의 다른 작품들보다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퍼포먼스 캡처로 만들어진 알리타를 비롯한 사이보그들의 비주얼은 예고편을 보고 걱정했던 것에 비해 자연스럽다. <데스페라도스>나 <엘 마리아치> 등과 <플래닛 테러>를 당연하게 떠올릴 수밖에 없는 알리타의 캐릭터는 로드리게즈가 그간 만들어온 액션 시퀀스들을 자연스럽게 연상시킨다.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겠지만, 사이보그들의 기계 부위가 뎅강뎅강 잘려 나가는 액션이 주는 쾌감은 확실하게 존재한다. 특히 영화 중반부 등장하는 모터볼 장면의 (비록 생각보다 짧았지만) 속도감과 박진감은 대단했다.
다만 이야기적인 측면에서 아쉬움만 남는다. <알리타: 배틀엔젤>은 일본만화 원작의 할리우드 실사영화들이 겪는 (특히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과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주인공의 이야기를 마치 <트와일라잇>이나 <헝거 게임>과 같은 영어덜트 영화처럼 그려낸다는 점이다. 인물들의 청춘 로맨스는 지겹기만 하고, 속편을 예고한답시고 영화 한 편의 이야기를 제대로 마무리 짓지 않는 것도 피곤함을 유발한다. 베일에 싸인 더 큰 악당을 조금씩 보여주느라 메인 악당 캐릭터의 존재감은 반감되고, 배후에 있는 진짜 계획은 제대로 소개되지도 못한다. 알리타가 기억을 잃어버렸지만 몸이 무엇인가를 기억하고 행동한다는 설정은, 너무나도 손쉽게 이야기를 전개함과 동시에 이야기의 파편만 뿌리고 제대로 엮어내지 못한다. 관객은 결국 악당과 영웅, 두 축의 이야기 모두를 온전히 알지 못하고 여러 추측만을 남기며 영화가 마무리된다.
알리타의 캐릭터 묘사도 아쉽기만 하다. ‘섹시 여전사’ 컨셉을 내세운 여러 영화들보단 괜찮은 캐릭터이지만, <플래닛 테러>의 체리(로즈 맥고완)나 <마셰티>의 루즈(미셸 로드리게즈)와 같은, 그간 로버트 로드리게즈가 만들어온 여성 전사 캐릭터들과 크게 차이를 보여주지 못한다. 원작을 영어덜트 영화처럼 각색한 것의 문제인지, 로버트 로드리게즈가 지닌 취향의 한계인지는 불분명 하지만, 로맨스를 통해 동기를 부여받고 전형적인 ‘소녀’ 캐릭터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아쉽기만 하다. 게다가 갑작스레 모성으로 회귀해버리는 시렌의 모습은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또한 알리타가 새로운 바디를 얻고, 바디를 자신의 코어에 맞게 모핑하는 장면은 변명의 여지없이 알리타의 몸을 대상화하고 있다.
이런저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알리타: 배틀엔젤>은 속편을 기대하게 하는 영화이다. 더 많은 모터볼 경기와 더욱 큰 스케일의 액션이 펼쳐질 것임을 예고하는 엔딩은 기대감을 품게 한다. 캐릭터 묘사에 있어서 아쉬움이 남지만, 전사 캐릭터로써의 알리타는 개선의 가능성을 품고 있기에 속편이 기대되는 부분도 있다. 2억 달러 예산의 블록버스터에서 이 정도로 취향을 밀어붙일 수 있다는 점 또한 속편을 기대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로버트 로드리게즈가 아닌 다른 감독이 연출하게 된다면 액션 장면에서의 쾌감이 다소 떨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알리타: 배틀엔젤>의 액션에는 로드리게즈의 인장이 확실하게 담겨있기 때문이다. 일단 흥행이 잘 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지만, 부디 무사히 속편이 제작될 수 있기를 바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