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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y 12. 2019

무난한 공익영화

<배심원들> 홍승완 2018

 2008년, 국내 최초의 국민참여재판이 열린다. 8명의 국민 배심원이 참석한 채, 김준겸 재판장(문소리)에 의해 진행되는 재판이 다루는 사건은 피고인(서현우)의 친족살해 사건이다. 이미 피고인이 자백을 했기 때문에, 배심원들은 형량에 대한 의견만을 평결하면 되는 사건, 하지만 피고인이 갑자기 사건 당일의 뇌진탕으로 인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혐의를 부인한다. 결국 재판은 유무죄를 가리는 재판이 되었고, 권남우(박형식)를 비롯한 8명의 배심원들은 피고인의 유무죄를 가리기 위한 토론을 시작한다.

 홍승완 감독의 장편 데뷔작 <배심원들>은 한국에서 많이 제작되지 않은 법정영화이다. 특히 배심원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시드니 루멧이 <12명의 성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하지만 시대와 지역 배경이 다르기에, 두 영화는 다른 길을 걸어간다. 헨리 폰다가 연기한 <12명의 성난 사람들>의 8번 배심원은 피고의 ‘무죄’를 주장하고, 다른 배심원들을 설득했다. 반면 <배심원들>의 8번 배심원 권남우는 피고인의 유무죄 여부에 대해 확신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는 딱히 정의로운 인물도 아니다. 대신 그는 끊임없이 의심한다. 그는 피고인이 유죄라고 생각하는지, 무죄라고 생각하는지 묻는 다른 배심원들의 질문에 “대답하기 싫어요”, “모르겠어요”라고 대답한다. 그가 지닌 불확실인 태도는 다른 배심원들과 김준겸 재판장까지 뒤흔든다. 그의 태도는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의 이익을 생각하라”는 형사재판의 대원리를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법은 사람들을 처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처벌하지 않기 위해 기준을 세우는 것”이라는 김준겸 재판장의 초반부 대사는 권남우의 불확실한 태도를 통해 실현된다.

 <배심원들>의 완성도는 약간 아쉬운 수준이다. 신파를 위해 등장하는 사건 당시의 플래시백은 조금 과한 면이 있다.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권남우가 배심원단에 참가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초반부는 조금 늘어진다. 본격적으로 8명의 배심원들이 회의를 시작하면서부터 영화에 가속도가 붙지만, 그 중간에 권남우가 미로 같은 법원의 복도에서 청소노동자(김선영)를 만나는 장면은 ‘굳이?’ 싶은 장치이다. 이런 장면들에서 영화가 종종 늘어지긴 하지만, <배심원들>은 매끈하게 만들어진 ‘공익영화’이다. 국민참여재판을 홍보하고, 그 성과를 알리는 데 최적화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배심원들>이 국민참여재판이 지닌 한계, 비판점 등은 언급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아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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