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캅스> 정다원 2018
여성 형사 버디무비인 <걸캅스>의 개봉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이 영화는 망할 것”이라고 단정했다.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기록적인 흥행을 기록한 <자전차왕 엄복동>을 빗대 <걸캅스>를 ‘걸복동’이라 부르면서 비하하기도 했다. “여자 경찰이 어떻게 범죄자를 잡느냐”와 같은 비아냥이 아직 개봉도 하지 않은 영화에 쏟아졌다. 이 상황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위와 같은 말을 인터넷에 공유하는 이들 대부분이 <베테랑>, <범죄도시>, <청년경찰>, <극한직업>과 같은 남성 경찰을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들은 큰 불만 없이 받아들이거나, 심지어 그해 가장 재밌게 본 영화로 손꼽는다는 점이다. 욕설과 폭력이 빈번히 등장하고, 경찰과 범죄자의 대결을 다루고, 결국 조금은 상스럽지만 정의로운 경찰이 승리한다는 공통적인 서사를 지닌 작품임에도, <걸캅스>는 여성 경찰이 주인공이라는 이유만으로 폄하된다.
솔직히 <걸캅스>가 잘 만든 영화는 아니다. 동시에 <범죄도시>나 <청년경찰>과 같은 영화들 또한 잘 만든 영화는 아니다. 전자와 후자의 영화들을 비교했을 때, 어느 쪽 하나가 연출, 연기, 기술적인 부분 등에서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걸캅스>는 그저 극장에 앉아 있으면 두 시간이 그럭저럭 잘 흘러가는 한국 상업영화일 뿐이다. 대신 후자의 남성 경찰 중심적 영화들과는 달리, 여성 경찰을 내세웠고, 경력단절과 디지털 성범죄를 주요 소재로 내세웠을 뿐이다. 소재와 서사를 연결시키는 지점은 <걸캅스> 쪽이 차라리 매끄럽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미영(라미란)이 가진 능력을 보여주지만, 그는 결혼과 육아를 거친 그는 결국 강력계에서 민원실로 좌천된다. 지혜(이성경)가 남성으로 가득한 강력계에서 경력단절의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은 미영이 겪은 것의 반복이다. 여성이기에 겪은 차별을 기억하는 이들이 여성이기에 당한 디지털 성범죄에 분노하고, 아무도 (이들은 대부분 남성 경찰이다) 도움을 주지 않기에 결국 비공식 수사를 시작한다는 것만큼 당위성이 착착 맞아떨어지는 이야기가 있을까?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걸캅스>는 잘 만든 영화가 아니다. 정다원 감독은 소재들을 어떻게 이어 붙여야 하는지는 잘 파악하고 있지만, 이를 한 편의 영화로 매끄럽게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걸캅스>는 앞서 언급한 다른 한국 상업영화들의 단점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현실의 어느 부분에서 가져온 범죄와 캐릭터들이 이끄는 코미디 사이의 톤은 계속 오락가락하고, 종종 튀는 편집들이 등장하고, 괜스레 애니메이션과 CG를 동원해 요상한 감각의 코미디를 시도하며, 비백인 이민자들은 여전히 범죄자로만 묘사된다. 영화의 많은 부분을 배우들에게 맡긴 채 게으른 연출을 하기도 한다. <걸캅스>를 비롯해 <청년경찰>, <범죄도시>, <극한직업> 등이 공유하고 있는 ‘한국 상업영화’의 한계는 여전하다.
그럼에도 <걸캅스>는 각본이 의도한 주제를 전달하는 데 성공한다. 거대한 악을 상대하는 척하며 적당히 거시적인 일장연설만 늘어놓고 젠체하는 영화들에 비하면, <걸캅스>는 (영화적 완성도는 아쉽더라도) 자신이 다루는 소재에 대해 할 말은 다 하고 마무리된다. 더군다나 영화 속 악역이 ‘가오’ 잡는 장면들을 힘주어 찍으며 이들의 ‘가오’를 더더욱 세워주는 여러 영화들과는 달리, <걸캅스>는 자아도취에 빠진 악당을 그냥 자아도취에 빠진 이상한 개새끼로만 묘사한다.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된 뉴스 화면이 종종 등장하지만 남성 경찰들은 이를 신경 쓰지도 않는 것이나, 여성 경찰의 역사를 요약하는 타이틀 시퀀스의 분할 편집 등은 영화의 주제를 계속해서 상기시킨다. 그밖에도 액션, 특히 타투샵에서 호러적인 연출을 가미한 액션 시퀀스는 꽤나 즐겁게 관람했다.
결론적으로, <걸캅스>는 좋은 영화, 잘 만든 영화는 아니다. 그렇다고 <자전차왕 엄복동>처럼 민족주의에 찌든 중년 남성들이 150억이라는 돈을 갖다 버린 영화적 참사와 비교할 영화는 아니다. 반복해서 적은 것처럼, <걸캅스>는 흥행에 성공한, 본전은 친, 실패한 여러 한국 상업영화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때문에 <걸캅스>는 흥행에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편견으로 가득한 비난이 실패의 원인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걸캅스>의 두 주인공이 남성 범죄자들을 검거하는 것이 ‘비현실적’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베테랑>이나 <극한직업> 속 소수의 여성 경찰들이 남성 악당을 때려눕힐 때는 왜 그러한 비판을 꺼내지 않았는가? <청년경찰>은 재밌게 봤지만 <걸캅스>는 취향에 맞지 않는다고? 그건 취향이 아니라 당신의 편견과 의식의 문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