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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y 23. 2019

디즈니의 적당한 업데이트

<알라딘> 가이 리치 2019

 디즈니의 90년대 황금기를 장식한 작품 중 하나인 1993년작 <알라딘>이 ‘디즈니 라이브 액션 필름’ 프로젝트에 의해 실사영화로 재탄생했다. <덤보>에 이은 2019년 두 번째 영화이기도 하다. <알라딘>에 대한 정보가 하나둘씩 공개되면서 팬들은 조금씩 걱정하기 시작했다. 우선 최근 <킹 아서: 제왕의 검>을 보기 좋게 말아먹은 가이 리치가 연출자로 결정되었으며, 로빈 윌리암스에 이어 윌 스미스가 맡게 된 지니의 비주얼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덤보>, <호두까기 인형과 4개의 왕국> 등이 저조한 흥행을 기록하며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또한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원작을 그대로 복사+붙여 넣기 했다는 비판을 피해 가지 못했다. 다행히 공개된 <알라딘>은 기대보다 즐거운 작품이었다. <말레피센트>처럼 완전히 이야기를 비튼 것은 아니지만, 2019년에 알맞은 업데이트가 들어갔다. 아그라바 시장바닥의 좀도둑 알라딘(메나 마수드)이 자파(마르완 켄자리)의 의뢰를 받아 우연히 램프를 손에 넣게 되고, 궁을 잠시 벗어난 공주 자스민(나오미 스콧)과의 만남을 이어 가기 위해 지니에게 소원을 빌어 왕자가 되려 한다는 이야기 자체는 원작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세부적인 디테일이 변화했다.

 이러한 변화는 지니와 자스민 캐릭터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우선 지니 이야기를 하자면, 로빈 윌리암스의 익살스러움과는 다른 방향의 지니가 윌 스미스를 통해 탄생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2019년의 지니는 힙합 뮤지션으로 데뷔해 영화배우를 거쳐, 최근에는 유튜브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는 엔터테이너로서의 윌 스미스가 녹아들어 있다. 1993년 영화에도 참여했던 음악감독 알란 렌켐이 새로 편곡한 ‘Friend Like Me’는 윌 스미스의 다양한 퍼포먼스를 통해 새로운 음악으로 변모하는데, 잠깐의 랩과 비트박스가 들어가며 신선함을 더한다. 뮤지컬 시퀀스 자체로도 90년대 디즈니 스타일에서 벗어난, 힙합이 결합된 춤을 선보이기도 한다. 이는 영화 전체로 확장되는데, 아그라바 궁전 파티 장면에서 지니가 알라딘을 조종해 팝핀과 브레이크 댄스를 추게 한다든가, 흑인 배우 주연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추임새와 대사들을 지니가 쏟아내는 등의 방식으로 표현된다. 포스터와 예고편을 공개된 시퍼런 윌 스미스의 충격적인 비주얼에 비해, 영화 안에 등장하는 지니의 캐릭터는 친근감이 느껴진다. 오랜 세월 엔터테이너로서 커리어를 이어 온 윌 스미스이기에 가능해진 변화가 아닐까 싶다. 

 가장 큰 변화는 자스민의 캐릭터이다. 1993년 자스민이 같은 시대의 다른 디즈니 작품들에 비해 주체적인 캐릭터이긴 했지만 여전히 시대의 한계가 느껴졌다면, 2019년의 자스민은 영화를 주도하는 여성 캐릭터들이 늘어가고 있는 현재가 반영되어 있다. 자스민은 보호를 명목으로 궁 안에 갇혀 있다. 동시에 자유분방한 성격과, 아그라바 백성들의 삶을 걱정하는 군주의 면모도 갖춘 인물이다. 1993년의 자스민이 궁 밖으로 나간 이유가 반항심이었다면, 2019년의 자스민은 백성들의 삶을 직접 보고자 하는 동기가 추가되었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여성은 술탄(왕)이 될 수 없다는 법 때문에 그 자리에 오르지 못하지만, 끊임없이 자신이 술탄이 되고자 하는 야망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러한 자스민의 상황이 응축되어 터져 나오는 장면이 1993년작에는 없었던 노래 ‘Speechlees’를 부르는 뮤지컬 시퀀스이다. 이 노래는 그동안 자스민을 궁 안에만 묶어두었던 술탄을 비롯한 궁의 사람들, 다른 공주나 여왕들처럼 “온순한 화초처럼 편하게 지내라”는 자파의 말에 대한 답답함과 분노를 표출해낸다. 자스민의 캐릭터 변화는 <알라딘>을 대표하는 곡 ‘A Whole New World’의 맥락까지 미묘하게 바꿔버린다. 알라딘이 마법의 양탄자를 통해 궁 밖의 세상을 보여주는 상황은 동일하지만, 자스민이 자유를 만끽함과 동시에 아그라바의 백성들을 관찰하고 술탄이 되고 싶다는 야망을 더욱 굳건히 한다는 맥락이 추가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스민의 서사는 엔딩에 이르러서 가장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1993년작과 가장 큰 차이점이 바로 이 지점일 텐데, 극장에서 직접 확인하길 바란다. 또한 이번 영화에 새롭게 추가된 캐릭터인 자스민의 시녀 달리아(나심 페드라드) 또한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인물로 그려지는데, 이 또한 신선한 변화였다.

 <알라딘>이 흥미로운 지점은 이러한 자스민 캐릭터의 변화가 1993년의 서사구조를 거의 그대로 따라가는 알라딘과 자파의 서사와 계속해서 충돌한다는 것이다. 사실 2019년의 <알라딘>은 이미 관객들이 이야기를 다 알고 있다는 전제 하에 영화를 전개한다는 인상이 강하다. 주요 뮤지컬 시퀀스의 등장이 서사에 선행하고, 알라딘과 자파 캐릭터가 지닌 서사의 변곡점이 되는 부분들은 조금 얼렁뚱땅 지나가기도 한다. 무엇보다 1993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캐릭터성을 보여주는 알라딘과 자파가 자스민의 캐릭터와 충돌하면서 벌어지는 긴장들이 존재한다. 영화는 결국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이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어요”라는 결말을 향하기에, 서사의 큰 틀을 바꾸지 않고 하나의 캐릭터만 변화시키는 것이 이러한 충돌을 낳는다. 그런데 이러한 충돌의 양상이 그간 디즈니가 제작 및 배급한 작품들이 겪어온 것들과 유사하다. 가령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캡틴 마블> 등 여성 캐릭터가 중심이 된 영화들이 개봉했을 때, 원작과 전작들을 중시하는 팬보이들이 일으킨 논란 아닌 논란이 <알라딘>이라는 영화 속 서사의 충돌로 그려지는 것만 같다. 이는 영화 전체의 서사를 조금 덜컹거리게 만들지만, 동시에 흥미로운 긴장감을 만들어내며 영화를 더욱 즐겁게 만들어주고 있기도 하다.

 결국 <알라딘>은 실패에 가까웠던 최근의 ‘디즈니 라이브 액션 필름’의 영화들이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지 제시하는 작품과도 같다. 원작을 그대로 따라가기만 해서 지루해진 경우(<미녀와 야수>)와 변화를 택했지만 이도 저도 아니게 된 경우(<덤보>) 모두를 피해 가는, 여러모로 디즈니스러운 ‘안전빵’의 작품이랄까? 물론 <말레피센트>처럼 아예 원작을 갈아엎으면서도 성공적인 시도들이 있긴 하지만, 개봉 예정인 많은 영화들이 이와 같은 시도를 하긴 어려울 것이다. 때문에 <알라딘>은 어떤 적정선을 제시하는 위치에 서 있다. 원작을 옮겨오면서도 적당한 변화를 꾀하고, 그 변화가 새로운 즐거움이 되는 것. 7월 개봉할 <라이온 킹>이 어떤 영화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알라딘> 정도만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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