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맨: 다크 피닉스> 2019 사이먼 킨버그
브라이언 싱어가 2000년 시작한 <엑스맨>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신작 <엑스맨: 다크 피닉스>가 개봉했다. 20세기 폭스가 디즈니에 합병되면서 사실상 지금 ‘엑스맨 유니버스’의 마지막 작품이 되어버렸다. (물론 <뉴 뮤턴트>가 남아있지만 제대로 개봉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며, 찰스와 에릭을 중심으로 하는 이야기도 아니다) 그동안 나온 <엑스맨> 영화는 오리지널 트릴로지, 프리퀄 트릴로지, 그리고 울버린 트릴로지까지 총 10 작품이며, 여기에 <데드풀> 시리즈를 더하면 12편으로 늘어난다. <다크 피닉스>는 20여 년간 이어진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는 작품이 되었다. 영화는 어린 진 그레이(소피 터너)가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찰스(제임스 맥어보이)가 운영하는 자비에 영제 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이후 <엑스맨: 아포칼립스>의 사건을 거쳐 진은 싸이클롭스(타이 쉐리던), 스톰(알렉산드라 쉽), 나이트크롤러(코디 스밋-맥피), 퀵실버(에반 피터스) 등과 함께 엑스맨으로 성장하고, 미스틱(제니퍼 로렌스), 행크(니콜라스 홀트)와 함께 엑스맨 활동을 이어간다. 그러던 중 NASA의 우주선이 보낸 구조신호에 출동한 진은 우주에서 미지의 에너지 폭풍을 맞게 된다. 이후 진의 몸속에 내재된 ‘다크 피닉스’의 힘이 각성하고, 이 힘을 쫓아온 외계인(제시카 차스테인)이 진이 흡수한 에너지를 노리고 접근한다. 한편 행크는 에릭(마이클 패스벤더)을 찾아가 함께 진을 저지하려 한다.
사실 ‘다크 피닉스’의 이야기는 <엑스맨: 최후의 전쟁>에서도 다뤄진 적이 있다. 다만 오리지널 트릴로지 중 가장 혹평받았을 뿐이다. <다크 피닉스>의 연출자인 사이먼 킨버그는 <엑스맨 2>부터 시리즈에 각본가로 참여했으니, 당연히 <최후의 전쟁>의 각본도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다시 말해, <다크 피닉스>는 사이먼 킨버그의 두 번째 ‘다크 피닉스’ 영화이다. 문제는 더 나아지기는커녕, 총체적 난국에 가까운 완성도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사이먼 킨버그가 장편영화를 연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환상특급> 리부트 시리즈의 한 에피소드를 연출한 적이 있다), 불필요한 장면들을 힘주어 길게 보여주는 반면, 힘이 들어가야 할 장면들은 대사로 상황을 설명해버리고 지나가버린다. 때문에 인물들의 갈등은 급작스럽게 벌어졌다가 대사 한 마디로 봉합되어버린다. 액션 시퀀스들은 좋게 말하면 발리우드 블록버스터들 같고, 나쁘게 말하면 콘솔 게임의 시네마틱 트레일러 같다. 소위 ‘영화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 법한 카메라 구도는 거의 등장하지 않고, 몇몇 장면에서는 어처구니없는 방식으로 뮤턴트들의 초능력이 구현되기도 한다. 게다가 제임스 맥어보이는 여전히 <글래스>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만 같은 연기를 하고, 마이클 패스벤더의 연기는 전작들보다 떨어지며, 다른 여러 캐릭터들은 그저 영화 속에 존재하기만 할 뿐 캐릭터성이라는 것을 전혀 지니지 못한다. 더욱이 제시카 차스테인이 연기한 외계인 캐릭터 활용은 기계적인 악역에 그치고 만다. 3월 개봉한 <캡틴 마블> 속 스크럴족의 역할을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포지션이지만, <다크 피닉스>의 외계인들은 무엇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한 캐릭터로 남았다.
<다크 피닉스>의 유일한 장점은 진 그레이를 연기한 소피 터너이다. 진 그레이는 <다크 피닉스>를 통해 <왕좌의 게임> 속 산사 스타크와 함께 소피 터너의 대표 캐릭터로 자리매김할 만한 캐릭터로 자리 잡는다. 물론 영화가 좋았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그렇지 못해 아쉽다. <다크 피닉스> 속 진 그레이의 서사는 전체적으로 <캡틴 마블>을 연상시키는데, 영화의 완성도가 따라주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소피 터너는 갑작스레 강력한 힘을 얻어 혼란스러워하는 진 그레이부터 그 힘을 통제하는 법을 터득하여 자유롭게 활용하는 진 그레이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지닌 캐릭터를 무난하게 연기해낸다. MCU에서 스칼렛 위치의 단독 영화를 내놓는다면 <다크 피닉스>의 진 그레이 캐릭터를 참고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다만 진 그레이와 이를 연기한 소피 터너만이 참고할만한 지점이라는 게 아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