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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un 07. 2019

이미지와 시간으로 저항하기

<지워진 자들의 흔적> 갓산 할와니 2018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이후 전쟁과 학살의 역사로 가득한 중동 지역, <지워진 자들의 흔적>은 이러한 폭력의 역사 속에서 사라진 자들의 흔적을 발굴하는 영화이다. 영화는 레바논에서 벌어진 사브라-샤틸라 난민촌 학살에서 시작해 그 이후에 자행된 여러 납치사건들의 흔적을 좇는다. 다만 이 영화는 학살의 흔적을 좇지 않는다. 갓산 할와니 감독은 제목에서 밝힌 것처럼 지워진 자들, 사라진 자들의 흔적을 좇는다. 영화의 초반부 기술적으로 특정 부분이 지워진 사진이 등장한다. 사진은 굉장히 기묘하다. 무엇인가 있었던 것 같은 흔적이 남아 있다. 그것은 그림자나 발자국 같은 말로는 설명이 안 된다. 우리는 감독과 사진작가가 나누는 대화를 통해 그 사진 속 흔적들을 함께 추척해나간다. 그곳은 학살이 벌어진 장소인가, 혹은 살해된 이들의 시신이 쌓여있던 장소인가. 사진에 남아있는 모자, 벽에 쓰인 문구는 누구의 것인가. 감독과 사진작가의 대화를 통해 그곳은 납치가 벌어진 장소이며, 두 납치범의 모자와 옷의 문구, 신발 등이 사진에 흔적으로 남아있음을 알게 된다. 

 뒤이어 갓산 할와니 감독이 실종자들의 사진을 가지고 작업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는 실종된 이의 사진을 보고 그의 얼굴을 그린다. 또 다른 장면에서 그는 베이루트의 어느 벽을 긁고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여러 겹의 포스터, 찌라시, 공고문 등이 붙은 벽은 여러 겹의 종이들이 벽의 일부분이 된 것처럼 보인다. 감독은 커터칼과 핀셋, 물을 적신 붓 등으로 종이들을 살살 떼어낸다. 그러다 보니 실종자들의 사진이 담긴 포스터가 등장한다. 영화는 이렇게 수작업으로 실종자들의 얼굴 이미지들을 발굴한다. 국가폭력은 분쟁과 학살의 원인을 종교로 돌리며, 사망자와 실종자들을 순교자의 상징으로 이미지화한다. 아이콘이 된 이들은 실종자로서, 그러니까 죽지도 살지도 못한 자들로써 그 흔적만이 베이루트 곳곳에 흩어져 있다. 갓산 할와니 감독은 국가권력에 의한 매장, 순교자라는 상징으로의 이미지화 전략에 수작업을 통한 이미지 발굴을 통해 저항한다. 

영화는 지워진 자들의 ‘흔적’은 이들의 존재를 나타내는 지표로 벽에 붙은 사진 기술적으로 지워진 사진, 주민등록부 등에 남아 있으며, 이 지표들을 지우는 것은 불가능함을 역설하고, “영화에 등장하는 이들의 이름은 영화 안에서만 볼 수 있다”는 자막을 통해 영화 전체가 흔적-지표로 작용하는 탁월한 전략을 통해 저항한다. 특히 벽에 붙은 실종자들의 사진을 말 그대로 발굴해내는 장면들은 이 전략의 탁월함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오랜 시간 실종자들의 사진 위에 붙은 여러 포스터, 공고문, 찌라시들을 긁어내고 그 밑에 감춰진 있던 이들의 얼굴 이미지를 발굴한다. 그리고 그 얼굴 이미지에 손으로 그린 애니메이션으로 시간을 부여한다. 이미지는 다시 움직이고, 실종자들은 영화의 러닝타임 안에서 다시 존재한다. 그들은 영화 안에서만큼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실종자들의 가족은 사망 후에 주민등록부에서 삭제되지만, 실종자들은 ‘실종’ 상태이기 때문에 거의 영원히 서류에 존재할 것이라는 마지막의 이야기는 지울 수 없는 지표들의 시간을 보여준다. <지워진 자들의 흔적>은 이미지가 지닌 시간으로 저항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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