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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은 마이클 무어처럼

복지제도에 대한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다음 침공은 어디?>

by 영화평론가 박동수

마이클 무어가 이탈리아, 핀란드, 노르웨이, 프랑스, 포르투갈, 슬로베니아, 독일, 튀니지, 아이슬란드를 침공한다. 성조기를 들고 다니며 미국엔 없는 아이디어들을 훔치는 것이 이 다큐멘터리의 이야기다. 그가 훔친 아이디어는 연 8주간의 유급휴가, 급식도 여가시간도 교육이라는 생각, 실용적 성교육, 무상 대학교육, 인간적 범죄 징벌, 실질적 성평등 등이다. 무어는 계속 미국의 상황과 비교하며 말하지만, 우리나라에 대입해도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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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교육․의료․징벌․노동․노조․시위․마약․성교육 등 모든 아이디어들이 신기했다. 그 중 생각나는 부분은 프랑스의 교육이다. 그들은 4코스의 요리가 점심 메뉴로 나오며, 지방자치단체에서 이것이 잘 이루어지도록 관리한다. 프랑스의 아이들은 가리비가 들어간 에피타이저부터 양고기 메인디쉬를 거쳐 치즈와 푸딩을 디저트로 식사를 마무리한다. 가장 놀라운 것은 단순히 양질의 급식을 제공하는 것이 아닌, 양질의 급식이 건강하게 먹는 식습관, 예절, 좋은 음식을 보는 법 등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배고파서 맛과 상관없이 먹게되는 우리나라의 급식과는 기저에 깔린 생각부터 달랐다. 숙제를 내주는 대신 집 앞의 나무를 올라타는 것마저 교육이라 생각하는 핀란드의 생각도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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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으로 유학 갔을 때 객관식 문제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핀란드 학생의 이야기가 재밌다. "그럼 어떻게 답을 찍냐"는 무어의 질문에 "알아야 답을 쓰죠."라고 답한다. 대학교에 와서도 사지선다 시험지를 받아보는 우리나라와 참 비교된다. 답을 찍기 위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알기 위해 배우는 것이 맞는 것인데, 정 반대의 상황인 우리나라의 모습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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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이야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튀니지의 여성인권이었다. 이슬람국가인 튀니지에 무료여성보건소가 운영되고, 70년대 후반부터 낙태가 합법이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보수 이슬람정당이 성평등 조항이 포함된 헌법을 통과시키고, 이슬람국가의 의회 절반이 여성이란 점이 충격적이다. 1975년 여성파업 이후 아이슬란드의 변화된 모습을 보는 것도 많은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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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다른 침공은 어디?>는 마이클 무어의 다른 영화들보다 날카롭지 못하고, 여러 다큐멘터리와 영화들에서 수십 번도 넘게 다뤄진 유럽의 복지 시스템을 줄줄이 나열하기만 한다. 다시 말해서 겉보기엔 새로운 시각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무어는 튀니지와 아이슬란드의 사례를 영화의 후반부에 배치하며, 여성주의와 더불어 제도적으로 정립된 실질적 성평등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앞서 침공했던 나라들의 푸티지를 삽입하면서 “성평등 수준이 높은 국가는 남녀 모두 행복해보였다.”는 무어의 나레이션은 지금의 한국의 모습과 극명히 대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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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어는 베를리 장벽에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냉전시대에 나고 자란 무어는 이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고 불가능은 없음을 본 뒤 낙천주의자가 됐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침공해 훔쳐온 아이디어들은 원래 미국의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들이 해야할 것은 다른 나라의 것을 훔쳐오는 게 아니라 자신들 속에서 잃어버린 것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말하며 영화를 끝낸다. 우리나라엔 잃어버릴 아이디어는 있었나. '월급은 전부 생활비로 쓰기 때문에 휴가 갈 돈을 더 받아야한다.'란 발상이 나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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