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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Dec 13. 2016

3. 대여점의 추억

 쿠엔틴 타란티노는 비디오 대여점의 직원이었다. 전문적인 영화교육기관을 다니지 않은 그에게 영화학교는 비디오 대여점이었다. 그곳에서 수 백, 수 천 편의 영화를 보며 쌓인 경험치가 타란티노의 영화를 만들었다. 비디오 대여점은 집에 비디오 데크 하나만 있으면 누구나 (타란티노가되진 못해도) 시네필로 만들어주는 공간이었다. <캣츠앤 독스>나 <스튜어트 리틀> 같은 아동용 영화에서부터 화끈한 블록버스터들과 섬뜩한 호러영화, 야사시한빨간 비디오들까지 메이저와 마이너를 가리지 않는 대여점의 컬렉션은 일종의 보물창고다. 비디오에서 DVD로 매체가 넘어오면서 조금 더 고화질에 부가영상까지 추가된 컬렉션까지 만날 수 있었다. 미셸 공드리가 <비카인드 리와인드>를 통해 비디오 대여점 시절을 추억했듯이 나도 그 때를 생각해봤다.

사진만큼 크진 않았지만 비슷하게 생긴 대여점이 있었다

 지금은없어진 지 오래됐지만, 우리 집 근처에도 비디오/DVD 대여점이있었다. 만화책 대여점을 겸하던 우리 집의 거실만한 대여점에서 수 백 편의 비디오와 DVD를 빌려 봤었다. 뭐가 무슨 영화인지 알지도 못했던 어린 시절을지나, 초등학교 2, 3학년 즈음부터 어떤 영화를 볼지 선택권이생겼던 것 같다. 이제 막 주5일제가 도입되던 시절, 금요일 밤에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내기에 가장 좋은 일은 영화였다. 주말마다대여점을 찾아 영화를 빌려다 봤다.


 처음엔아버지가 좋아하는 <취권> 등 성룡영화들과 어머니가빌려오는 <모노노케 히메>나 <천공의 성 라퓨타> 등의 지브리 영화나 <토이 스토리>, <벅스 라이프> 등 픽사 애니메이션들을 잔뜩 봤다. 내게 선택권이 어느 정도생긴 이후에는 판타지나 SF영화들을 보기 시작했다. 극장에이어 집에서도 <해리포터>시리즈를 봤고, 날 잡고 <반지의 제왕>트릴로지를몰아보기도 했다. <에라곤>같은 소위 ‘망작’들도 여럿 만났다. <스파이더맨>, <엑스맨> 등의 슈퍼히어로 영화도 접하기 시작했다. <투모로우>같은 재난 영화들도 여러 차례 돌려봤다. <세계 침몰> 등의 싸구려 영화들까지 제목과 표지를 보고빌려봤다. 교회를 다녔던 탓에, <이집트 왕자>처럼 성경에 관련된 영화들도 보게 되었다. 

 대여점에서단순히 영화를 많이 빌려다 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어려서 볼 수 없었던 15세, 18세 관람가의 액션영화와 호러영화들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대여점에 붙어있던 포스터들 덕분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한창 대여점을찾던 시절에 <쏘우>시리즈가 흥행하고 있었고, <씬 시티>, <300>이 국내에서 의외의흥행을 기록했었다. <28주 후>, <새벽의저주>를 통해 좀비영화들도 쏟아지고 있었다. <주온>의 귀신을 보고 벌벌 떨고, <괴물>에서 괴물이 토해내는 해골들을 제대로 눈 뜨고 보지 못했던 어린 시절이지만, 그럴수록 호러영화들의 포스터에 눈길이 갔다. 뽑힌 이빨 세 개가 매달려 있는 <쏘우3>의 포스터는 아직도 기억에남는다. 중학생 때 <호스텔>을 본 이후로 잔인한 장면에 내성이 생긴 것은 대여점에서 만난 잔인한 포스터와 표지들에 이미 익숙해져 있어서가아닐까? 당시에 그 영화들을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그영화들을 보고 싶어하는 욕구를 가졌을 때부터 지금의 취향이 만들어진 것 같다.

만화방도 함께하던 동네 비디오 대여점

 집근처의 대여점이 좋았던 이유 중 한 가지는 만화책 대여점도 함께한다는 점이었다. 영화를 보다 보면 이따금씩만화 원작인 경우들이 있었다. <데스노트>나 <20세기 소년> 등의 일본 만화들은 원작 만화책보다 영화를먼저 접했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자연스럽게 원작 만화도 대여해 보면서 취향의 범위를 넓힐 수 있었다. <데스노트>나<20세기 소년>은 굉장한 메이저 작품이었지만,함께 꽂혀있던 만화들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장르와 분량, 소재에 대한 거부감을 조금씩 지워낼 수 있게 도와주었다. 투니버스같은 케이블 채널에서 틀어주던 애니메이션들의 원작들도 잔뜩 읽었었다. 

비디오 대여점이 배경인 미셸 공드리의 <비카인드 리와인드>

 되돌아보면대여점은 학원이자 놀이터 같은 곳이었다. 뭔가를 직접적으로 가르쳐주는 곳은 아니지만, 영화를 끊임없이 접하고 그것을 통해 데이터를 쌓을 수 있었다. 그곳에서 접한 모든 영화를 본 것은 아니지만, 세상에 이런 영화도 있고 저런 영화도 있다는 것을 알게해준 곳이랄까? 물론 대여점에 제3세계 영화들처럼 엄청나게마이너한 영화들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흔히 매이저라고 부르는 영화에 속하지 않는 영화들도 자연스럽게접할 수 있었다. 매주 놀러 가듯이 대여점을 찾았고, 볼영화가 넘쳐난다는 사실을 배웠다. 지금은 왓챠플레이와 넷플릭스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지만, 자동차 모양의 테이프 리와인더 소리는 계속 기억에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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