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걸작 <체리 향기>
미쟝센이 단출하다. 누런 먼지만이 가득한 이란의 사막과, 대부분이 자동차 안에서 벌어지는 대화장면들이 95분 러닝타임의 대부분이다. 반면 다루는 이야기는 죽음이다.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남자의 이야기가 영화의 내용이다. <체리향기>는 단출한 형식으로 묵직한 이야기를 담아낸다. 이는 무거운 고민으로 가득 찬 남자가 가장 사소하고 단순한 것에서 부터 의지를 찾는다는 영화의 이야기와도 일맥상통한다.
남자는 수면제를 먹고 자살할 자신을 대신 묻어줄 사람을 찾는다. 차를 타고 다니면서 첢은 군인, 신학생, 노인에게 이를 부탁한다. 각자의 상황과 윤리관을 이유로 부탁을 거절한 군인과 신학생. 남자는 자신보다 어린 이들의 이야기를 듣기보다 질문을 한다. 반면 노인은 그에게 작지만 기쁨으로 가득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노인이 아내에게 체리를 가져다 준 이야기들 들으며, 남자는 차를 세우고 공원으로 가 석양을 바라본다. 단출한 형식, 어려운 말로 화두를 던지지 않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각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남자의 고민을 움직인다.
영화의 마지막, 남자는 구덩이 속으로 들어간다. 과연 그는 그 곳에서 죽었을까? 암전된 화면에서 번개가 칠 때 마다 보이는 그의 얼굴은 무표정 같기도, 미묘하게 미소 같아 보이기도 한다. 그의 생각은 어떻게 바뀌어가고 있는 것일까? 영화를 보는 관객의 머릿속은?
군인과 신학자를 차에서 내려주고 다시 출발하는 남자를 그린 장면이 인상적이다. 모래언덕에 난 길에 세워둔 차를 출발시키는 장면인데, 언덕의 단면도 속에서 차가 지나가는 것 같은 이미지가 그려진다. 무거운 지층 속에서 힘겹게 출발하는 모습 같기도, 가느다란 길을 뚫고 나가는 사람의 모습 같기도 하다.
사실 평론가들에게 '시네 아티스트'라고 불리는 감독들의 영화를 즐겨보지 않는다. 작가주의적인 영화들은 지루하다는 편견 때문일까.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체리향기>는 의외로 지루한 부분이 없었다. 차 안에서 이어지는 인물들의 대화 속에 빼곡한 교훈들이 생각을 어지럽게 만든다.
R.I.P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그의 영화를 이제야 처음 봤다는 것이 아쉽고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