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접격투액션의 극한을 보여준 영화 <레이드: 첫번째 습격>
<매트릭스>, <이퀄리브리엄> 등 CG를 활용한 액션 영화들과 <반지의 제왕> 등의 판타지 블록버스터가 흥행하며 시작한 2000년대는 아날로그 액션에서 CG를 활용한 액션으로 넘어가는 시기였다. 2002년 등장한 <본 아이덴티티>로 근접격투를 기반으로 한 아날로그 액션이 부활하는 듯싶었지만, 아류작들의 셰이키 캠 남용으로 피로감만 쌓여갔다. 시간이 흘러 2012년, CG 액션에 대한 피로감을 날려줄 아날로그 액션영화가 등장했다. 웨일즈 출신 영화감독 가렛 에반스가 인도네시아 배우들과 만든 작품 <레이드: 첫번째 습격>이 바로 그 영화이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전통 무술 실랏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총기 액션에서 맨몸 액션으로 이어지는 80년대 홍콩영화의 스타일을 가져온다. 20여명의 특수부대원이 한 건물을 장악하고 있는 타마(레이 사헤타피)의 조직과 생사를 건 혈투를 벌인다는 설정은 폐쇄공포증을 유발시키며 관객들의 숨을 조여온다. 동시에 좁은 복도와 계단 등을 활용한 액션들은 넋을 놓고 보게 만든다. 저예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촬영과 편집의 아이디어들은 영화의 박력을 더해준다. 종종 등장하는 롱테이크의 촬영과 언뜻 보면 셰이키 캠처럼 보이지만 배우의 주먹과 발을 따라가는 카메라 워킹은 기예에 가까운 배우들의 액션 퍼포먼스를 깔끔하게 담아낸다.
영화에 서사가 부족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레이드: 첫번째 습격>의 서사는 단순하다. 하지만 빈약하지는 않다. 오프닝에서 주인공 라마(이코 우웨이스)의 캐릭터를 간단하게 설명하고 바로 건물로 향하는 경찰 트럭을 비추는 영화의 오프닝은, 영화가 드라마와 액션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집중했는지를 보여준다. 후반부 라마와 안디(도니 알람시아)의 관계가 드러나고, 액션을 통해 관계와 감정을 드러내는 부분은 가렛 에반스 감독이 드라마를 포기하지 않았고, 단지 액션에 좀 더 집중했다는 증거다. 그 드라마의 플롯이 단순하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라면,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단순한 플롯이 영화의 완성도에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는 점을 상기해봐야 한다. 혹은 <무간도>의 플롯을 빌려와 좀 더 복잡하게 구성해낸 속편 <레이드2>의 스토리텔링이 실패에 가까웠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레이드: 첫번째 습격>의 선택은 탁월했다.
할리우드에 판권이 팔려 리메이크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예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아이디어들에서 탄생한 장면들을 할리우드의 자본이 제대로 재현할 수 있을까? 스파이크 리 감독이 연출한 <올드보이> 리메이크에서, 원작의 장도리 액션 장면이 단지 기교로만 가득한 장면으로 변질되었음을 생각해보면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코 우웨이스와 야얀 루이한을 비롯한 배우들과 스턴트 팀이 만들어낸 극상의 퍼포먼스를 할리우드에서 제대로 재현할 수 있을까?
CG가 아날로그를 뛰어넘은 지금 시점에도, 블록버스터 영화 속 액션들을 아날로그 방식으로 찍으려는 시도들은 계속되고 있다.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를 필두로 근접격투 액션의 분량을 늘려가는 마블의 영화들, 아날로그 액션을 통화 영화 속 물질들의 운동과 충돌을 담아낸 걸작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CG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듯 하지만 실제 액션과 폭발을 사용하는 <스타워즈>시리즈, <분노의 질주>시리즈 등 액션에서 CG의 사용을 최소화하는 영화들이 계속 등장하고 있다. 디지털의 아날로그의 질감은 따라잡았지만, 사람과 사람, 물질과 물질이 격돌하는 아날로그의 중량감은 담아내지 못한다. 새로운 영화를 준비중인 가렛 에반스 감독과 할리우드로의 진출을 앞두고 있는 이코 우에이스와 야얀 루이한 두 배우의 미래가 기대되는 이유이다. 관객들의 아드레날린을 끌어낼 수 있는 최상의 작품을 만들어내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