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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an 09. 2020

생과 죽음, 절망과 희망, 그 간극을 견디려는 편지

<사마에게> 와드 알-카팁, 에드워즈 와츠 2019

 시리아의 독재자 바사르 알아사드 정부는 2011년 ‘아랍의 봄’ 시기 내내 이어지던 평화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한다. 그로부터 시작된 시리아 내전은 한 차례 휴전을 거쳐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시리아 뿐 아니라 주변 중동 국가들은 물론, 러시아, 중국, 미국 등의 강대국이 각자의 이익에 따라 관여하고 있는 이 전쟁의 최대 격전지는 시리아 북쪽의 도시 알레포이다. <라스트 맨 인 알레포>, <알레포 함락>, <화이트 헬멧: 시리아 민방위대>처럼 내전을 직접적으로 다룬 다큐멘터리 작품뿐 아니라 <시멘트의 맛>처럼 알레포를 떠나 레바논 등 주변 국가로 향할 수밖에 없던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꾸준히 알레포와 시리아 내전의 상황이 논픽션 영화로 제작되었다. <사마에게>는 그 연장선상에 놓인 작품이다. 영화의 주인공이자 감독인 와드 알-카팁은 알레포 시민이자, 정부군과 러시아군의 공습에도 알레포에 남아 있길 선택한 사람이다. 그는 알레포의 상활을 카메라로 촬영해 온라인에 업로드한다. 그의 남편 함자 알-카팁은 알레포에 남은 몇 안 되는 의사이다. 그는 공습에 부상당한 시민들을 치료하기 위해 동료, 그리고 시민들과 협력한다. 병원이 아닌 공간을 병원으로 개조하여 사용하는 열악한 상황은 시간이 지날수록 악화된다. 그리고 두 사람의 딸 사마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전쟁에 포위된다. 공습이 이어지고 사방에 피가 흥건하며 매일 같이 시체가 된 이웃들을 마주하는 포위당한 알레포에서 사마는 어느새 폭탄이 터지는 소리에도 울지 않는다.

 와드와 함자는 아랍의 봄 당시 알레포 대학에서 평회 시위를 하며 만나게 된 사이이다. 운동권 커플인 이들은 내전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거의 모든 것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목격했다. <사마에게>는 그 당시부터 꾸준히 카메라에 시리아의 상황을 담아온 와드의 영상들로 구성된다. 영화의 첫 장면은 2016년 알레포 포위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병원에 마련된 방에서 사마를 촬영하던 와드는 공습이 시작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마와 함께 지하로 피신하려 한다. 그가 사마를 함자에게 맡긴 채 카메라를 들고 복도로 나서는 순간 복도 저 멀리의 창문으로 폭발의 영향이 빌려온다. 어느새 먼지와 파편들이 건물 내부를 뒤덮고, 전기마저 불안정하다. 병원의 사람들과 지하로 대피하면서 와드는 계속 사마를 찾는다. 마침내 와드가 사마를 찾게 된다. 영화는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 다시 말해 알레포가 포위당하는 2016년 초가을부터, 휴전협정을 통해 알레포의 반군과 시민들이 알레포 밖 반군 지역으로 이동하는 12월까지의 시간대를 담는다. 동시에 2012년 3월 알레포 대학의 평화시위부터 사마의 출생까지의 기록이 플래시백처럼 제시된다. 이러한 구성의 <사마에게>는 시리아 내전과 알레포 공습의 참혹함을 기록하고 전파하는 기록영화이자, 와드, 함자, 사마 세 사람의 가족 홈비디오이며, 제목처럼 와드가 사마에게 보내는 영상편지이자, 희망에 대한 에세이 영화이다.

 와드 알-카팁은 영화를 통해 무언가를 감추려 하지 않는다. 그가 카메라에 담은 것들은 너무나도 생생하여 눈꺼풀을 닫고 싶게 만드는 폭력들이다. 공습으로 인해 신체가 훼손된 부상자와 사망자들, 그리고 사상자 중 많은 수를 차지하는 어린아이들, 병원의 바닥과 벽을 흥건히 물들인 피, 먼지와 파편이 가득한 길거리와 무너져가는 도심의 건물들, 동료와 이웃들의 죽음, 심지어 병원에 놓인 어린이의 시체 옆에 앉아 있는 사마의 모습까지 카메라에 담긴다. 와드와 그의 카메라, 그리고 사마가 목격하는 것은 폭력 그 자체이다. 공습과 함께 찾아오는 절규, 그리고 공포스러운 적막이 흘러가고 나면 생존자들은 짧은 행복과 웃음을 즐긴다. 이들은 알레포에 남아있는 것 자체가 정부군과 독재자에 대한 저항이라 생각하고 그것을 온몸으로 실천한다. 극한의 절망 속에서도 이들은 웃는다. 공습으로 불타버린 버스에 페인트를 칠하며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공습을 동화로 만들어 아이들에게 전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폭격기가 다가오는 소리와 함께 행복은 다시금 잠복해버린다. 

 <사마에게>가 공습, 폭력, 죽음(특히 어린아이의 죽음), 공포, 절규, 적막, 절망과 행복, 웃음, 기쁨, 생동감, 기적을 뒤섞어 보여주는 이유는 그것이 모두 알레포에 남은 이들이 4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겪어온 감정들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지닌 모든 감정과 이미지의 생생함은 알레포의 상황을 해외에 전파하기 위한 것이 첫 목적이나, <사마에게>는 전달 대상을 와드의 딸 사마로 한정 짓는다. 알레포가 포위당한 상황에서 생의 첫 1년을 보낸 사마에게 알레포는 어떤 공간일까? 기억하지도 못하는 죽음의 위기들을 수차례 넘긴 공간일까? 폐허가 되어버린 기억 밖의 고향일까? 태어날 곳에 대한 선택권도 없이 자신을 낳은 부모를 원망하게 될 공간일까? <사마에게>는 와드가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해 사과를 전하고, 또 이해를 구하는 편지다. 이 영화를 어린 시절이 담긴 홈비디오처럼 돌려볼 자신의 딸에게 그는 최선을 다해 이해를 구한다. 내전 중인 알레포에서 태어난 사마는 단순히 희망과 순수의 상징이 아니다. 그 또한 내전을 겪고 있는, 알레포에서의 삶을 이어감으로써 저항하고 있는 시민이다. 부모로서의 애정과 동지로써의 애정이 사마에게 보내는 내레이션 곳곳에 담겨 있다. 

 영화는 공습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알레포 시민들을 밝게 비춰주는 순간들을 포착한다. 학교가 없어지자 아이들을 위한 시민 차원의 학교를 열고, 이웃의 아이들과 함께 버스에 페인트칠을 하는 등 회색빛의 도시가 된 알레포에 색을 더한다. 그런 희망의 순간들 중 가장 놀라운 것은 공습으로 인한 파편에 부상당한 임산부가 병원으로 실려와 긴급 제왕절개를 하게 되는 장면이다. 산모 밖으로 꺼내는 아이는 숨을 쉬지 못한다. 함자를 비롯한 의사와 간호사들이 응급처치를 해보지만 아이는 도통 눈을 뜨지 못한다. 그러던 중 아이가 눈을 뜨는 순간이 카메라에 잡히고, 울음소리와 함께 맥박이 뛰지 않던 아이는 소생한다. 산모의 상태 또한 안정을 찾는다. 와드와 사마가 목격한 것은 절망만이 아니다. 물론 이들에게 절망의 원인을 포착하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시점이나 능력은 주어지지 않는다. 와드가 포착한 것은 끔찍한 폭력 속에서도 저항하고 만연한 죽음 속에서도 생존하는 사람들의 존재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카메라를 손에 든 채 사마를 안고 파괴된 도시를 걸어가는 와드의 뒷모습은 그 결연한 존재의 형상이자, 동시에 사마에게 태어나게 한 것을 사과하고 이해를 요구하는 것을 넘어 사마를 위해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희망과 의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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