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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an 10. 2020

무국적의 국뽕 영화

<미드웨이> 롤랜드 에머리히 2019

 <미드웨이>는 그 태생부터 괴상한 영화다. 독일인 영화감독이 중국 자본의 투자를 받아 미군이 일본군을 상대로 승리한 태평양 전투의 실화를 할리우드에서 영화화했다. 어처구니없는 방식으로 다국적이 참여한 이 영화는 소위 ‘국뽕’ 영화라 불릴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음에도 어딘가 덜컹거린다. 물론 인간과 인간이 대립하는 영화보단 자연재해나 외계인 같은 인간 외 존재들이 인간을 박살 내는 영화를 주로 만들어온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역량 부족이 하나의 원인이다. 하지만 국뽕 영화를 표방한 <미드웨이>의 무국적성에 가까운 다국적성이 이 영화를 더욱 이상한 방향으로 이끌어나간다.

 영화는 1941년 일본제국의 진주만 공습 이후 벌어진 태평양전쟁 초반의 가장 큰 전투였던 미드웨이 해전을 다루고 있다. 영화에도 잠시 등장하듯, 존 포드가 직접 그 현장을 촬영해 영화로 제작하기도 했었다. <미드웨이>가 시작하면 영화가 1942년 6월 5일 태평양의 전략 요충지인 미드웨이 섬 인근에서 단 하루 동안 벌어진 해전을 다루고 있다는 자막이 등장한다. 하지만 자막이 지나가고 등장하는 것은 1937년이라는 자막이다. 1937년의 일본 도쿄, 아직 미국과 일본이 적대적이지 않은 시점에서 영화가 시작한다. 이후 차근차근 시간이 흘러 1941년 진주만 공습을 거쳐 1942년의 미드웨이 해전으로 영화가 막을 내린다. 시작부터 거하게 뻥을 치고 시작한 이 영화는 단 한 명의 중심인물을 내세우지 않는다. 물론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파일럿 딕 베스트(에드 스크레인)가 존재하지만, 정보장교 레이튼(패트릭 윌슨), 해군 제독 니미츠(우디 해럴슨), 딕의 상관인 맥클러스키(루크 에반스), 딕이 탑승한 USS 엔터프라이즈호의 선장 할시(데니스 퀘이드), 심지어 잠시 등장하는 둘리틀 중령(아론 에크하트)과 야마모토 제독(토요카와 에츠시)나 야마구치(아사노 타다노부), 나구모(쿠니무라 준) 같은 일본군 캐릭터에게까지 적지 않은 분량이 할당되어 있다. 덕분이 이야기는 산만하고, 미드웨이 해전만을 다룬다기보단 태평양전쟁의 초반 전체를 다루는 것으로 확장되며 불필요한 장면들이 대거 투입된다. 가령 진주만 공습 이후 등장하는 장교 클럽 시퀀스는 딕의 아내 앤(맨디 무어)의 성격과 레이튼과 딕의 친분을 알려주기 위해 꽤 많은 러닝타임을 허비하고 만다.

 가장 이상한 지점은 마지막이다. 롤랜드 에머리히의 장기인 ‘때려 부수는’ 미드웨이 해전 시퀀스가 기어이 일본 제국 항공모함에 그려진 일장기의 붉은 원에 폭탄을 때려 박는 딕의 비행으로 마무리되자 영화는 영화 속 주요 실제 인물들의 미드웨이 해전 그 이후를 알려주는 자막을 등장시키기 시작한다. 마치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의 한 대목인 양 각 인물들의 얼굴이 낡은 사진 같은 색으로 변하며 등장하는 자막들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뻔뻔한 방식으로 이들의 영화 이후를 묘사한다. 여기서 주목할 이상한 지점은 둘리틀 중령과 그의 특공대가 등장하는 장면이다. 극 중 둘리틀은 도쿄를 공습하고 중국으로 향하는 작전을 수행했으며, 일본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는 중국인들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다. 그리고 일본군 전투기가 그들을 돋는 중국 민간인들을 공격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영화 마지막의 자막에선 둘리틀 특공대를 돕다 목숨을 잃은 중국 민간인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둘리틀 특공대의 공습으로 목숨을 잃은 도쿄의 민간인이나 진주만 공습으로 피해를 입은 민간인, 더 나아가 진주만 공습에서 미드웨이 해전에 이르는 태평양 전쟁 동안의 미군 사상자마저 등장하지 않는다. 미국과 일본 사이의 전쟁에 투입된 중국 자본은 이러한 방식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태평양 전쟁에 반대했으나 결국 벌어진 전쟁에선 선봉에 나선 야마모토 제독의 이야기를 꽤나 길게 보여주는 것 또한 서사의 중심이 되는 ‘국뽕’에서 이탈한다. 더군다나 에드 스크레인을 필두로 전투에 나서는 인물을 연기하는 여러 배우들의 국적이 미국이 아닌 영국이라는 사실 또한 영화의 국적을 흐린다. 결국 <미드웨이>는 갖가지 국가들의 자본과 배우와 인력이 만나 갈 길을 잃는, 사실상 무국적의 국뽕 영화가 되어버린 괴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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