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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an 23. 2020

24. <쿵 퓨리>

원제: Kung Fury
감독: 데이비드 샌드버그
출연: 데이비드 샌드버그
제작연도: 2015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쿵푸 캅>이라는 제목으로 상영됐던 <쿵 퓨리>는 스웨덴의 영화감독 데이비드 샌드버그가 연출, 각본, 제작, 특수효과, 주연을 모두 도맡은 괴작이다. 2015년 3월 유튜브를 통해 공개되었고, 현재 3,400만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으며, 칸 국제영화제 감독주간을 비롯한 각종 영화제에 초청되었고, 현재 아놀드 슈워제네거와 마이클 패스벤더가 합류해 장편영화화가 진행중인 작품이다.

 러닝타임 31분의 짧은 영화인 <쿵 퓨리>는 그야말로 난장판이다. 경찰 쿵 퓨리는 악당 쿵푸 마스터를 추격하던 중 동료를 잃고 번개를 맞는다. 번개의 영향으로 쿵푸 마스터가 된 그는 악당들을 무자비하게 응징하고 다니지만, 그런 그는 경찰서의 골칫거리이다. 막무가내인 그를 제어하기 위해 상관은 트리케라캅(공룡 트리케라톱스의 외모를 하고 있다)를 파트너로 붙여주지만 쿵 퓨리는 거부한다. 두 사람이 말다툼을 벌이던 중 현대에 나타난 히틀러(!)가 수화기를 통해 상관을 총격(!)하는 일이 벌어진다. 쿵 퓨리는 상관의 복수를 하기 위해 시간마저 해킹하는(!) 해커, 북유럽 신화 속 발키리와 토르, 레이저 랩터 등과 함께 나치와 맞서 싸운다. 

 간략한 줄거리 요약마저 황당하다. 상식적인 영화라면 불가능한 스토리라인을 <쿵 퓨리>는 충실하게 구현한다. 해커는 시간을 해킹에 쿵 퓨리를 과거로 보내주고, 너무 먼 과거로 가버린 쿵 퓨리는 신화 속 인물들과 레이저 랩터를 동료로 만들고, 그러는 와중에 전화기 PPL이 등장하며, 쿵 퓨리의 쿵푸 실력에 나치 병사들의 팔다리가 마른 나뭇가지처럼 후두둑 떨어진다. 심지어 나치 병사들은 영어와 스웨덴어로 구성된 독일어를 구사한다. <터미네이터>(1984)와 <트랜스포머>(2007) 같은 영화들에 나올 법한 인간형 로봇과 변신로봇, 싸구려 SF 영화의 단골 소재인 나치 잔당, 시간여행, 어처구니 없이 과장된 해커의 능력 등은 80년대 양산된 수많은 SF 및 액션 영화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물론 그것들을 어처구니없는 수준으로 과장했지만 말이다. 장 클로드 반담의 <타임캅>(1994)처럼 경찰이 시간여행을 하기도 하고, 영화의 주제가를 부르기도 한 데이비드 핫셀호프의 드라마 <전격 Z 작전>(1982~1986)의 '작전 키트' 같은 쿵 퓨리의 자동차에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의 HAL9000과 같은 컴퓨터가 내장되어 있으며, 레이저 랩터들이 달리는 모습은 <쥬라기 공원>(1992)를 연상시킨다. 나치 잔당들의 전당대회는 그 유명한 <의지의 승리>(1935)를 우스꽝스럽게 재현하고 있고, 처음으로 CG를 도입한 영화 <트론>(1982)과 80년대 아케이드의 전자오락의 향수가 곳곳에 배여 있기도 하다. 영화의 오프닝은 드라마 <마이애미 바이스>(1984~1989)의 로고를 연상시키고, 악당 쿵푸 마스터는 일본 닌자 복장을 하고 있으며, 쿵 퓨리는 그를 일본도로 처단한다. 그런 와중에 쿵 퓨리의 복장은 <매드 맥스 2>의 맥스와 <아키라>(1988)의 카네다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패션센스를 보여준다. 

 이 영화를 도대체 뭐라고 설명해야될지 모르겠다. 80~90년대 쏟아진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의 문화적 세례를 받은 북유럽 청년의 괴팍한 취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영미권도 아닌 스웨덴 출신 감독이 이것들을 한데 뒤섞어 컬트적 인기를 끄는 작품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굉장히 흥미롭다. <쿵 퓨리>는 수많은 장르의 서브컬처가 한 작품 안에서 교차할 때 발생하는 극단적으로 혼란스러우면서도 내적으로 모든 것이 정돈된 독특한 사례이다.


*<쿵 퓨리>는 이 링크(https://www.youtube.com/watch?v=bS5P_LAqiVg)에서 볼 수 있으며, 국내 넷플릭스에서도 서비스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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