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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an 29. 2020

정직하고 안전하기만 한 코미디

<조조 래빗> 타이카 와이티티 2019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독일의 한 마을에는 조조(로만 그리핀 데이비스)가 살고 있다. 아빠는 먼 전장으로 떠나고, 엄마 로지(스칼렛 요한슨)와 단둘이 살고 있는 그는 나치 소년단에 입단하지만 내성적인 성격으로 인해 겁쟁이 토끼 ‘조조 래빗’이라는 별명만 얻게 된다. 상심한 그를 위로해주는 것은 상상의 친구 아돌프 히틀러(타이카 와이티티)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조조는 자신의 집 벽 속에 몰래 숨어 살던 엘사(토마신 맥킨지)를 발견한다. 완벽한 나치가 되길 꿈꾸던 조조는 엘사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이런저런 갈등을 겪기 시작한다. <뱀파이어에 관한 아주 특별한 다큐멘터리>와 <토르: 라그나로크>를 통해 국내에서도 인지도를 쌓은 타이카 와이티티의 신작 <조조 래빗>은 독특한 전쟁영화이다.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하고 오스카 6개 부문 후보에 오르는 등 작년과 올해에 걸쳐 많은 호평을 받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영화의 예고편을 봤을 땐 <토르: 라그나로크>보단 그 이전의 영화들이 떠올랐다. 히틀러가 상상의 친구인, 인정받지 못하는 2차 대전 당시의 독일인 소년이 주인공인 영화인 데다가, 대부분의 전작에서 직접 연기를 선보였던 타이카 와이티티가 직접 히틀러를 연기한다는 점이 그의 팬들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영화의 초반부는 그런 기대를 가득 채워준다. 예고편을 통해 엿볼 수 있었던 나치 소년단 캠프에서의 좌충우돌, 조조와 상상의 히틀러가 대화를 나누는 어처구니없는 상황, 언제나 아이러니를 품은 전쟁이라는 상황까지 많은 것이 흥미롭게 보인다. 게다가 상이군인인 클렌젠도프(샘 록웰)가 이끄는 나치 소년단은 스카우트 캠프를 소재로 삼은 웨스 앤더슨의 <문라이즈 킹덤>을 연상시킨다. 그 영화에서 끌어온 것 같은 숏의 구도들은 ‘나치 문라이즈 킹덤’이라는 독특하고 이질적인 만남을 기대하게 한다. 

 하지만 영화가 흥미로웠던 것은 거기까지다. 엘사가 등장한 이후 영화의 많은 부분이 예측대로 흘러간다. 상상의 친구 히틀러의 비중은 점점 적어지며 딜레마의 기능을 상실하고, 코미디도 활력을 잃어간다. 물론 유대인인 엘사가 등장한 이후 코미디가 제대로 극 초반과 같은 코미디를 이어 가긴 어려웠을 것이다. 사뭇 진지하고 의외로 멜랑콜리하게 진행되는 중후반부는 좀처럼 탄력을 받지 못한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너무나도 익숙하고, 초반부만큼 흥미롭지 못한 코미디는 도리어 극의 활력을 끊는다. “빨갱이들은 뿔이 달렸다고 들었는데 알고 보니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생겼다”는 내용의 반-반공영화를 보는 기분이다. 정답이 확실한 조조의 윤리적 고민은 그 정답을 향해 정직하게 다가서고, 타이카 와이키키의 재기 발랄함은 그 과정에 제대로 녹아들지 못하며, 최근에도 벌어지는 유사한 문제(난민과 이민자)에 대한 은유로 바라보기엔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 일차원적이다. <조조 래빗>은 관객들이 타이카 와이티티의 영화에서 바라지 않던 안전한 길을 정직하게 따라가기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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