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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Feb 08. 2020

공사(公私)를 매개하는 투쟁

<깃발, 창공, 파티> 장윤미 2019

 장윤미의 두 번째 장편 <깃발, 창공, 파티>는 구미공단에 위치한 KEC의 임담협(임금 단체협약) 과정을 KEC지회의 시점에서 담아낸다. KEC에는 모두 세 개의 노조가 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에 속한 KEC지회는 2018년 단독으로 단체교섭을 해온 어용노조 KEC노동조합과 단체교섭 창구 단일화를 놓고 협상을 준비한다. <어머니가방에들어가신다>부터 <늙은 연꽃>, <콘크리트의 불안>으로 이어지는 단편과 첫 장편인 <공사의 희로애락>까지 소위 ‘사적 다큐멘터리’의 흐름에 동참해온 장윤미가 사적 영역에서 벗어난 대상을 주인공으로 삼은 첫 작품이기도 하다.

 여기서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구분은 중요하다. <깃발, 창공, 파티>는 KEC지회 인물들의 1년 동안을 담고, 이들의 희로애락, 그중에서도 특히 ‘희’를 담아낸다. 영화 후반부 “웃는 일도 별로 없었는데”라며 지난 1년을 회고하는 한 간부의 말은 영화에 빼곡히 담긴 웃음의 순간들로 반박되며, 종종 그 웃음은 객석으로 전염되기도 한다. 그 웃음이 점유하는 공간은 노조원들의 집이나 개인 자동차 같은 사적 영역이 아니다. 이들의 사적 영역은 영화 전체에 걸쳐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전작 <공사의 희로애락>이 아버지의 노동현장을 담으며 노동현장을 사적 영역으로 끌어들였다면, <깃발, 창공 파티>는 공적 영역인 공장 내 KEC지회 사무실, 투쟁 현장, 심지어 지회 소유의 자동차 등을 담아낸다. 회사는 노동자들이 노동하는 공적 영역이자, 이들의 생활공간이기도 하다. 그 공간 내에 속한 지회 사무실 등의 공간은 공적 영역이자 사(社)적 영역이며, 사(私)적 영역이다. 

 단순히 공적 영역인 회사가 사적 영역으로 변모한다는 것을 영화가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KEC지회의 지난한 투쟁 과정 속에서 이들이 모임을 갖는 사무실을 비롯한 공간들은 이들이 먹고 자고 씻고 노는 공간이 된다. 영화의 제목이 등장하기 전까지 이어지는 지회 모임 장면은 즐거움으로 가득하다. 모두가 웃고, 맛있는 음식을 즐기고, 지회의 첫 여성 지회장이 된 이의 생일을 축하한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로 가득한 공간이 대가족의 모임처럼 느껴지는 순간 노조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투쟁가가 들려오고 이들은 투쟁을 진행 중인, 혹은 언제라도 투쟁할 준비가 되어 있는 이들로 정체화된다. 이들과 이들의 웃음이 점유한 공간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사이에 걸쳐 있다. 그곳은 생활공간임과 동시에 노동 공간이고, 그 사이를 매개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노동계약이나 임금이 아닌 투쟁이다. 본래 두 공간을 이어줬어야 할 매개체를 되찾기 위한 투쟁은 10여 년의 시간 동안 이어져 그 자체가 매개체가 되었다.

 <깃발, 창공, 파티>는 투쟁이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매개하게 된 시간의 이야기이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노조를 낙관적으로 그리며 이상화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영화는 민주노총 소속 노조로써 KEC지회가 임단협 외의 투쟁에 함께하는 모습을 담아낸다. 이들은 서울 국회 앞에서 벌어지는 최저임금법 개악 저지를 위한 총파업, 전주 택시 노동자 투쟁과 김재주의 고공농성장, 한국전력의 무리한 노동 요구 끝에 사망한 고 김용균을 추모하는 집회 등에서 연대한다. 장윤미는 그 순간의 낙차를 영화에 담아낸다. 1년간의 임대협 과정을 담아낸 168분의 영화 중간중간 끼어드는 연대의 순간은 아름다운 연대의 순간보단 낙관적으로 그려지던 KEC지회의 모습과 처절한 연대의 순간 사이의 낙차를 만들어낸다. 이들은 그 낙차를 견디는 사람들이다. 사적 영역에서 공적 영역으로 카메라를 돌렸다고 해서 사람을 담는 장윤미의 시선이 변화하진 않는다. 그의 카메라에는 언제나 무언가를 매개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담기고, 영화는 어떤 것이 이들의 삶을 추동하는지 밝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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