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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Feb 13. 2020

현재와 현재를 교차시키는 지금의 나

<작은 아씨들> 그레타 거윅 2019

*스포일러 포함


 배우가 되고 싶은 첫째 메그(엠마 왓슨), 작가가 되고 싶은 둘째 조(시얼샤 로넌), 음악가가 되고 싶은 셋째 베스(엘리자 스캔런), 화가가 되고 싶은 막내 에이미(플로렌스 퓨). 아버지(밥 오덴커크)는 남북전쟁에 자원해 전장으로 떠났고, 네 자매는 엄마(로라 던)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한 파티에 참석한 조는 우연히 옆집에 사는 로리(티모시 샬라메)를 알게 되고, 네 자매와 로리는 유년시절을 함께하게 된다. 각자의 꿈과 감정이 교차하는 유년시절은 각자의 자리를 찾아가는 성인기를 향해 나아가는 토대가 된다. 그레타 거윅의 두 번째 단독 연출작 <작은 아씨들>은 너무나도 유명한 루이자 메이 올컷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1917년 영국에서 처음 제작된 이래 이번이 일곱 번째 영화화이다. 

 그레타 거윅은 원작의 2부의 해당하는 성년기의 이야기와 1부에 해당하는 유년시절의 이야기를 교차하여 보여준다. 뉴욕으로 떠난 조의 시점에서 시작한 영화는 조를 비롯한 자매들이 과거를 떠올릴 수 있는 순간들을 만날 때마다 7년부터 시작되는 유년시절의 기억이 플래시백으로 등장한다. 직선적으로 흘러가는 이야기가 아니기에 네 자매(와 로리)의 유년시절이 어떻게 이들의 현재를 구성하는지 조금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원작을 읽지 않았기에 알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네 자매는 자신의 현재를 각자의 선택으로 결정한다. 그 선택의 근거가 되는 것은 각자, 그리고 함께 살아온 시간, 남북전쟁을 통과한 시대적 상황, 배우/작가/음악가/화가라는 꿈과 그것의 변화이다. 

 영화를 구성하는 두 타임라인을 잇는 것은 네 자매의 형상이다. 현재 시점에서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순간들, 그 기호들은 마치 과거의 데자뷔처럼 찾아온다. 처음 파티에서 춤을 춘 순간과 앞으로 계속 기억하게 될 누군가를 만나는 순간, 같은 해변을 다시 찾아 보내는 시간, 뉴욕으로 떠나는 기차와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집의 계단을 내려오는 순간. 그 순간들은 갑작스레 현재에 끼어들거나 대신하고, 심지어 사운드를 통해 중첩되기도 한다. 나의 것이면서 동시에 너의 것인 기억, 때문에 우리의 기억이 된 과거는 그렇게 현재를 구성한다. 이러한 구성의 백미는 조가 출판사 대표를 만나는 장면이다. 영화 초반, 조가 단편 소설을 팔기 위해 잠시 만났던 그는 여성이 주인공이라면 엔딩에서 죽거나 결혼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팔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네 자매에게 그대로 일어난다. 메그와 에이미는 결혼했고, 베스는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조는 뉴욕에서 만난 이민자 프리드리히(루이 가렐)와 애매한 관계에 놓여 있다. 자신의 고향집을 방문한 프리드리히를 붙잡기 위해 메그와 에이미, 로리의 도움을 받아 서둘러 기차역으로 떠나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격렬하게 키스를 나누는 로맨틱한 장면은 직접 쓴 ‘작은 아씨들’의 출판 계약을 위해 출판사 대표와 대화하는 조의 모습과 교차 편집된다. 조는 영화 초반부에도 언급됐던 “소설의 여성 캐릭터들은 결말에서 결혼하거나 죽어야 책이 팔린다”라는 대표의 말을 수용한다. 현재와 조금 더 현재 시점인 장면이 교차되는 이 장면은 19세기 말에 출간된 작품을 페미니즘적으로 재해석하는 연출임과 동시에, 영화의 앞선 장면들 모두가 교차하는 현재들이었음을 넌지시 암시한다. 

 조가 쓴 소설은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이며, 네 자매가 공유하는 기억이다. 그가 소설을 쓰는 현재는 과거를 기록함과 동시에 그것을 현재화한다. 영화의 오프닝 타이틀을 대신하는 ‘작은 아씨들’의 표지와 책이 제본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조의 표정이 담긴 마지막 장면은 7년의 시간을 포괄하는 영화 전체가 언제나 현재였음을 확신하게 한다. 과거의 기억을 상기하는 행위, 특히 그것이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기호들과 연관되었을 때의 상기는 과거에서 떠오른 기억을 현재에 전면화한다. 때문에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수없이 오감에도 산만하거나 늘어지지 않는다. 전작 <레이디버드>에서 9.11 테러와 뉴욕에서의 동양인 소년을 끌어오며 미국에 거주하는 백인의 안전한 성장 서사라는 맹점이 <작은 아씨들>의 시대적 배경을 통해 소거되었기에 더욱 안정적으로 이들의 교차되는 현재를 그려냈다고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작은 아씨들>이 현재를 교차시키는 방식, 과거들을 현재로 만들어 그것이 지금의 자신임을 명명하는 조의 모습이 내게 더욱 흥미롭고 필요한 부분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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