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리 주연의 단편영화 <문영>
김태리 주연의 단편영화 <문영>을 상상마당에서 만나고 왔다. 사실 단편영화라기에 애매한 64분의 러닝타임이지만, 오늘 상영된 감독판 이전 버전은 40분의 단편영화였다. ‘2015년 서울독립영화제’ 단편섹션에서 처음 상영됐고, 올해 <아가씨>로 김태리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상상마당 단편상상극장’, ‘2016 서울 프라이드 영화제’, 오오극장 등에서 상영됐었다. 매 상영때마다 엄청난 속도로 매진을 기록하며 김태리의 인기를 실감하게 만들었다. ‘상상마당 2016 씨네 아이콘 기획전’에서 특별상영된 감독판 버전의 <문영> 역시 빠르게 매진을 기록했다. 다행이 티켓팅에 성공해 ‘상상마당 단편상상극장’ 이후 두 번째로 <문영>을만날 수 있었다. 참고로 관객들의 성원에 힘입어 상상마당 배급으로 1월극장 개봉과 개봉 이후 VOD출시가 예정되어 있다.
영화는문영(김태리)가 캠코더를 들고 다니며 노량진 역에서 촬영한 푸티지로 시작한다. 벙어리인 문영은 집을 떠난 엄마가 캠코더에 찍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매일같이 캠코더를 들고 다닌다. 그러던 어느 날, 문영의 집 근처에서 전 남자친구와 다투고 있던 희수(정현)의 모습을 캠코더에 담게 된다. 몰래 숨어서 촬영하고 있던 것을 희수에게 들킨 문영은 도망치다가 결국 붙잡히고, 이를 계기로 문영과 희수는 묘한 친밀감을 쌓아간다.
문영과 희수 두 여성이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끼며 연대한다는 내용은 한국 독립영화 버전의 <델마와 루이스>처럼 보인다. 문영과 희수는 각각 술에 빠져 살고 딸에게 욕설을 퍼붓는 아버지와, 역시나 욕설을 서슴지 않는 전 남자친구로부터 벗어나려 한다. 특히 집에서도 방문에 자물쇠를 걸어 잠그고 지내는 문영에게 희수는 도피처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자신의 생활에 보호막을 치고 그 안에숨어서 캠코더로 세상을 바라보던 문영은 희수를 만난 이후 보호막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캠코더를 통해서만 보던 체육시간에 참여하기도 하고, 희수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기도 하며, 희수의 대사대로 사회적 편견을 깨며 맥주 한 캔을 들이키기도 한다. 두사람은 이렇게 서로에 대한 동질감을 바탕으로 연대한다.
김태리의 섬세하면서도 선 굵은 연기는 문영이라는 캐릭터를 스크린에서 제대로 살려낸다. 유독 달리는 장면을 핸드헬드로촬영한 장면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김태리의 진한 표정은 그대로 전달된다. 때문에 단단한 강화유리 같지만 실은 살얼음판 같이 불안한 문영의 심리가 대사 없이도 확실히 전달된다. 희수를 연기한 정현의 능청스러운 연기는 64분이라는 러닝타임을 이끌어가는동력이 된다. 끊임없이 극에 활기를 불어넣으며 분위기를 조율해준다. 꽤많은 분량이 등장하는 문영의 캠코더 푸티지와 거친 촬영을 정현의 연기가 완화시켜준다.
아쉬운 점은 짧게 등장한 퀴어 코드이다. 기존의 40분 버전에선없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64분의 감독판에서는 명백히 퀴어 코드가 드러난다. 하지만 단지 등장하기만 했을 뿐, 영화 안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한다거나맥락을 형성하진 못한다. 한 시간이 살짝 넘는 러닝타임 속에 많은 이야기를 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24분이 추가된 감독판이기에 등장한 장면이지만, 기존 40분 버전이 좀 더 깔끔하게 느껴졌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야기를풀어낼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굳이 등장하지 않았어도 될 장면으로 생각된다.
<문영>은 김태리라는 배우가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신인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작품이다. 동시에 한국 단편 독립영화를 통해 주목할만한 배우와 감독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비록 <문영>이오랫동안 회자될 매력을 지닌 작품은 아닐지라도, 2016년 최고의 신인 배우의 시작을 만날 수 있다는것만으로 극장을 찾을 이유는 충분하다. 김태리 팬덤의 힘으로, 관객들의 힘으로 극장과 VOD 배급을 이루어낸 <문영>이 개봉 후 어떤 반응을 불러올지 기대된다. 또한 <문영>의 배급을 시작으로,어느 정도 팬덤을 형성한 배우들의 작은 영화들이 더욱 많이 배급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