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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Feb 21. 2020

58. <벗어날 수 없는>

원제: Endless
감독: 저스틴 벤슨, 아론 무어헤드
출연: 저스틴 벤슨, 아론 무어헤드
제작연도: 2017

 타임루프. 특정한 시간대가 반복되는 것을 말하는 SF용어이다. 빌 머레이가 주연을 맡은 <사랑의 블랙홀>(1993)부터 던컨 존스의 <소스코드>(2011)나 더그 라이먼의 <엣지 오브 투모로우>(2014), 최근엔 블룸하우스의 호러 <해피 데스데이>(2017)과 같은 영화들이 타임루프를 소재로 삼고 있다. 저스틴 벤슨과 아론 무어헤드 콤비가 연출과 주연을 겸한 <벗어날 수 없는>도 타임루프를 소재로 삼고 있다. 사실 영화의 예고편이나 시놉시스에서는 이 설정이 드러나지 않는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통해 국내에 처음 소개될 땐 <벗어날 수 없는>이라는 제목으로 상영되었으나, 이후 IPTV를 통해 공개되며 국내 정식 제목이 <타임루프: 벗어날 수 없는>으로 변경되어 영화를 영화제보다 늦게 접한 이들에게 타임루프 장르라는 것을 더욱 명확하게 인식하게 해주었다.

 사실 이 영화는 타임루프보단 컬트 집단이 등장하는 장르로 구분하는게 더욱 옳다. 두 감독의 전작인 <레졸루션>(2012)와 느슨한 연결고리를 지닌 이 영화는 컬트 집단에서 탈출한 두 형제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게 되고, 그곳의 사람들이 숨기고 있는 비밀을 알게 되며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타임루프는 그 비밀을 가시화하는 소재이다. 컬트 집단의 사람들은 각기 다른 '타임 버블'에 갇혀 있다. 각각의 타임 버블은 서로 다른 시간대를 루핑한다. 가령 낡은 천막에 있는 사람에겐 5초 가량이 계속 반복되고, 어느 별장에 있는 두 사람에겐 일주일 가량의 시간이 반복된다. 하지만 이들이 각기 다른 시간에 갇혀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은 동일하다. 

 컬트 집단의 사람들을 다시 마주하는 두 형제는 문자 그대로 버블의 형상으로 사람들을 가두는 타임버블을 목격한다. 미국의 남부를 배경으로 삼는 이 영화는 공교롭게도 남부에서 도통 벗어나지 못하는 미국인들의 삶을 반영한다. 데이빗 맥켄지의 <로스트 인 더스트>(2016)는 남부를 벗어나기 위해 은행을 털지만 결국 벗어나지 못하는 형제의 이야기를 다룬다. <로스트 인 더스트>의 각본가 테일러 쉐리던이 연출한 <윈드리버>(2017)은 미국 북부 와이오밍의 인디언 보호구역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영화이며, 샤프디 형제의 <굿타임>(2017)은 뉴욕의 빈민가를 벗어나지 못하는 형제들의 이야기이다. 어느 장소를 벗어나지 못하는 형제의 이야기는 2010년대 미국영화에서 여러 차례 반복된 테마이다. <벗어날 수 없는>은 컬트와 타임루프를 빌려 '벗어날 수 없는' 공간 자체를 가시적 형상으로 보여준다. 일종의 컬트로 다뤄지고 여겨지는 그 공간을 벗어나지 못하는 미국인들. <벗어날 수 없는>은 장르의 틀을 빌려 이들을 조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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