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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Feb 25. 2020

64. <오늘밤 사자는 잠든다>

원제: ライオンは今夜死ぬ
감독: 스와 노부히로
출연: 장 피에르 레오
제작연도: 2017

 나에게 <오늘밤 사자는 잠든다>는 스와 노부히로의 영화라기 보단, 장 피에르 레오의 영화로 느껴진다. 심지어 정성일은 '2017 사사로운 리스트' 글에서 이 영화를 꼽으며,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내한한 장 피에르 레오에 대한 이야기로 글 전체를 채우기도 했다. (물론 그가 장 피에르 레오가 참여한 GV에 모더레이터로 참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배우를 볼 때마다 나는 한 연기자의 경력을 본다기보다는 영화에 관한 어떤 연대기를 보는 느낌을 받곤 한다"는 정성일의 말대로, 장 피에르 레오의 필모그래피는 여느 배우들과는 다른 아우라를 지닌다. 그는 '2016년 사사로운 리스트' 글에서 알베르 세라의 <루이 14세의 죽음>(2016)을 꼽으며 이 말을 썼는데, 그 다음 해 <오늘밤 사자는 잠든다>를 꼽으며 장 피에르 레오에 대한 존경과 찬사로 글 전체를 채운 것이 흥미롭다.

 이 흥미로움은 단순히 배우와의 만남이라는 정성일의 개인적인 사건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프랑수와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1959)로 시작된 장 피에르 레오의 필모그래피는 장 뤽 고다르, 자크 리베트,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장 외스타슈, 올리비에 아사야스, 차이밍량, 아키 카우리스마키 등의 감독을 경유한다. 그가 주연으로 참여한 (현재까지의) 마지막 두 작품인 <루이 14세의 죽음>과 <오늘밤 사자는 잠든다>는 공교롭게도 그의 죽음을 다룬다. 전자는 영화가 시작되자 마자 다양한 질병에 시달리며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장 피에르 레오가 보이며, 후자는 과거에 사로잡혀 사는 노년의 배우가 우연히 만난 아이들의 영화 촬영을 돕고 서서히 죽음을 맞이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전자가 죽어가는 육체 자체를 담는데 전념한다면, 후자의 장 피에르 레오는 이미 유령이다. 영화 속 영화 촬영지 인근의 어느 집에 들른 장 피에르 레오는 아이들에 의해 유령으로 오인받는다. 과거라는 망령에 사로잡혀 사는 노배우는 자신의 눈 앞에 나타는 앙투완 드와넬(들)로부터 유령으로 취급된다. 그 지점에서 두 영화가 다루는 장 피에르 레오의 죽음은 유사하고 다르다. 

 <오늘밤 사자는 잠든다>의 유령 장 피에르 레오는 아이들을 만남으로써 자신의 과거와 마주한다. 그는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들에게서 14살의 나이에 덜컥 프랑스 누벨바그의 상징이 된 자신의 과거를 보는 듯하다. 그는 아이들이 영화를 촬영하는 것을 돕는다. 그것은 어떤 면에서 놀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누벨바그의 감독이 되기도 하고, 다시금 앙투완 드와넬로 돌아가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소년성을 회복하는 노배우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는 영화의 마지막 즈음에서 죽은 것처럼 눈을 감는다. 이는 자신의 과거에 사로잡힌 배우가 과거를 청산하는, 혹은 복기하는 과정인가? 스와 노부히로는 딱히 답을 내리진 않는다. 어쩌면 이 영화는 장 피에르 레오의 필모그래피를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그와 관객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정성일이 말한대로 장 피에르 레오의 필모그래피를 보는 것은 한 배우를 다루는 것보단 영화사를 도짚어보는 것에 가깝다. <오늘밤 사자는 잠든다>는 기꺼이 그 기회를 받아들일 사람들을 위해 역사를 체화한 한 노배우의 이곳 저곳을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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