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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Feb 25. 2020

63. <더 포스트>

원제: The Post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출연: 메릴 스트립, 톰 행크스
제작연도: 2017

 스티븐 스필버그의 필모그래피를 거칠게 구분하자면 블록버스터 계열의 영화(<죠스>(1973)부터 <레디 플레이어 원>(2018)까지)와 작가주의 계열의 영화(<컬러 퍼플>(1985)부터 <더 포스트>까지)로 나눌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이런 식으로 스필버그의 '흥행용' 영화와 '아카데미용' 영화를 나누곤 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은 스필버그가 <레디 플레이어 원>의 후반작업과 <더 포스트>의 기획~개봉까지의 과정을 거의 동시에 수행했다는 점이다. 스필버그가 흥행 감독과 작가 감독이라는 분열된 두 자아를 지닌 감독이기에 가능했던 일인가? 이런 식의 의문을 품을 수도 있겠으나, 단순히 이야기하면 두 계열의 영화를 연출함에 있어서 스필버그는 언제나 동일한(유사한) 방법론을 사용하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스필버그의 2010년대 영화 중 전자(<틴틴: 유니콘 호의 비밀>(2011), <마이 리틀 자이언트>(2016), <레디 플레이어 원>)와 후자(<워 호스>(2011), <링컨>(2012), <스파이 브릿지>(2016), <더 포스트>)는 사뭇 서로 다른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엮어 놓은 것처럼 느껴진다. 애니메이션, 전쟁, SF, 동화, 에스피오나치, 언론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각 영화의 성격은 이러한 느낌에 강조점을 찍는다. 하지만 각 영화들의 기저에 놓인 주제, 가령 믿음, 귀환, 현실과 가상, 그리고 영화를 생각해보면 그의 필모그래피는 일관성을 지니게 된다. 전자의 영화들이 기술적 성취와 함께 영화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주제로 삼는다면, 후자의 영화들은 그것에 걸쳐 있으면서도 각각의 소주제들을 더욱 짙게 드러낸다는 차이가 있다. 

 <더 포스트>는 1971년 워싱턴 포스트의 '펜타곤 페이터' 기사가 발행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다룬다. 톰 행크스가 연기하는 워싱턴 포스트의 편집국장 벤은 이를 발행해야 한다 주장하고, 메릴 스트립이 연기하는 워싱턴 포스트의 회장이자 발행인 캐서린은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망 속에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할지 고민한다. 모두가 이미 알다시피 캐서린은 기사 발행을 결심하고, 워싱턴 포스트를 선두로 뉴욕 타임즈 등의 전국지와 각종 지역 신문이 관련 기사를 연이어 발행하며 베트남 전쟁과 닉슨 정권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 결말이다. 스필버그는 남성들의 영역으로 표현되는 이사회 만찬이나 편집 회의실에 캐서린이 들어가는 장면, 그리고 그가 내린 결단과 대법원 판결을 듣고 다양한 모습의 여성들 사이로 나오는 캐서린의 모습을 통해 페미니즘적 임파워링을 담는다. 동시에 믿음과 책임감 아래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기자들과 법적 문제가 있는지 검토하는 변호사들의 모습, 그리고 워싱턴 포스트에 이어 관련 기사를 발행하는 다양한 신문들의 모습을 통해 연대를 이야기한다. 

 캐서린과 벤, 또는 캐서린과 전 국방장관인 맥나미라 사이의 대화장면은 이들이 어떤 관계를 지녀왔으며, 그것이 어떻게 변화되는지를 보여준다. 두 사람의 대화장면을 촬영할 때 적용되는 180도 규칙은 이 두 대화장면에서 위배되고, 카메라가 가상선 너머로 움직이며 캐서린은 자신의 대화상대보다 우위를 차지하게 된다. 이것은 전자의 경우엔 연대라는 주제와, 후자의 경우엔 권력과 역사라는 주제와 연결된다. <더 포스트>의 이러한 제스처 중에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캐서린의 안경이다. 캐서린은 워싱턴 포스트를 포함한 신문이나 회사와 연관된 자료를 볼 때는 안경을 쓰고 있다. 눈 자체나 다름없는 캐서린의 안경은 그것을 씀으로써 진리를 보는 도구가 된다. 안경이라는 소재는 <마이 리틀 자이언트>에서도 유사하게 사용되었다. BFG와 함께 모험하는 소피의 안경은 자신이 보고 있는 비현실적 광경을, 그 영화적 풍경을 보게 해주는 장치였다. 이와 유사하게 캐서린의 안경은 역사적 진실을, 더 나아가 영화적 진리를 보게 한다. <레디 플레이어 원>의 VR고글 또한 '오아시스'라는 영화적 가상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라는 점에서 두 영화의 안경과 유사하다. 

 스필버그는 이러한 방식으로 영화 자체를 탐구한다. <더 포스트>는 트럼프 미국이라는 동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지금 필요한 영화의 작동방식을 보여준다. 이것은 물론 작가주의적이며 고전적이라는, 어떤 의도를 품은 것이라는 의심을 동반하지만, 스필버그의 영화가 지닌 성취는 매번 그것을 압도한다. 물론 <뮌헨>(2006)이나 <링컨>처럼 대단하진 못한 작품들도 있으나, <A.I.>(2001)부터 이어지는 그의 21세기 작품들은 일관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더 포스트>는 그 성과를 살펴보는데 주요한 좌표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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