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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Feb 26. 2020

뜻밖의 코미디

<네 멋대로 해라: 장 뤽 고다르> 미셸 하자나비시우스 2017

 <아티스트>를 통해 오스카 작품상을 수상했던 미셸 하자나비시우스의 신작(이라기엔 2017년작이 국내에 이제야 개봉하는 것이지만) <네 멋대로 해라: 장 뤽 고다르>는 영화의 역사에서 가장 논쟁적이며 혁명적인 인물인 장 뤽 고다르(루이 가렐)가 1967년 영화 <중국 여인>의 주연을 맡았던 안 비아젬스키(스테이시 마틴)와 결혼하고, 장 피에르 고랭과 결성한 지가 베르토프 그룹의 초기 프로젝트인 <동풍>을 촬영하며 이혼하기까지의 시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는 앤 비아젬스키의 자서전 『1년 후』에 기반하고 있다. 이 시기 고다르는 68 혁명을 목격하고 그것에 참여하며 기념비적인 <네 멋대로 해라>부터 <중국 여인>까지 이어지는 자신의 이전 영화들과는 다른 혁명 자체인 영화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안은 고다르와 <주말> 등의 영화를 촬영하고, 이탈리아 감독의 연락을 받고 로마에서 새로운 영화를 촬영하기도 한다. 고다르가 혁명과 영화에 대한 고민을 하는 동안, 안은 영화에 대한 회의감과 더불어 고다르에 대한 사랑에 대해서도 회의하게 된다.

 <네 멋대로 해라: 장 뤽 고다르>는 여러 면에서 <아티스트>와 유사하다. 무성영화의 시대가 끝나갈 무렵의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한 <아티스트>는 당시 영화의 형식을 재현한다. 영화의 마지막 한 장면을 제외하면 사람이 내는 소리는 나오지 않고, 음악만이 흘러나오는 무성영화. 이번 영화도 크게 다르지 않다. 8개의 챕터와 에필로그로 구성된 이 영화는 각 챕터의 제목을 통해 고다르를 비롯한 당시 프랑스 영화 제목이나 68 혁명과 연관된 명사들을 패러디한다. <영화사(들)>과 같은 작품에서 고다르가 사용한 자막과 유사한 폰트와 색의 자막을 등장시키기도 하고, 극 중에서 고다르가 자신의 전작들과 동시대 영화에 대해 불평과 경멸을 말할 때 그가 말하는 요소들을 고스란히 영화에 끼워 넣기도 한다. 가령, 혁명이 한창인데 트래킹 숏에 대한 이야기만 나눈다며 칸 국제영화제를 비판하는 고다르의 말이 라디오를 통해 나올 때, 카메라는 트래킹 숏으로 선탠을 즐기는 안의 모습을 보여주는 식이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나 미셸 쿠르노 등 당시 활동하던 (물론 배우가 연기한) 감독들의 등장도 흥미로우며,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의 <잔 다르크의 수난>을 고다르와 안이 보는 장면이라던가, 짧게 등장하는 스파게티 웨스턴 포스터 등 당시 유럽 영화계를 슬쩍 엿보는 것만 같은 장면들도 영화팬들에게 재미를 준다.

 다만 흥미로운 것들은 이런 피상적인 지점들뿐이다. 68 혁명 당시의 고다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차라리 지가 베르토프 그룹이 제작한 영화를 묶은 블루레이 박스셋을 구입해 관람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혹은 비아젬스키의 자서전을 직접 구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아티스트>도 그랬지만, <네 멋대로 해라: 장 뤽 고다르>는 갖가지 도구를 동원해 영화가 대상으로 삼은 고다르의 스타일과 당시 유럽 영화들의 요소들을 가져와 그 당시를 재현하는 것에 천착한다. 고다르와 안의 시점으로 양분된 영화는 혁명과 영화에 대한 고다르의 고민과 영화와 사랑에 대한 안의 고민 둘 모두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 영화를 보고 남는 것은 재수 없는 고다르와 그런 그를 상대하는 안뿐이다. 때문에 이 영화는 전기영화라는 바탕을 지닌 코미디로 보는 것이 더욱 즐거운 감상일지도 모른다. 고다르, 프렌치 누벨바그, 안 비아젬스키, 68 혁명 등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이들을 위한 코미디. 여담이지만, 미셸 하자나비시우스는 고다르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것 같다. 영화에서 고다르를 연기한 루이 가렐의 아버지 필립 가렐의 <비밀의 아이>에 안 비아젬스키가 출연했었다는 트리비아도 쓸데없이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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