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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Feb 28. 2020

'다크 유니버스'를 위한 초석

<인비저블맨> 리 워넬 2020

 세실리아(엘리자베스 모스)는 광학 분야의 세계적인 개발자 에이드리안(올리버 잭슨 코헨)과의 결혼생활에서 탈출하려 한다. 에이드리안이 세실리아의 모든 것을 자신의 통제 아래 두려 하고, 이것을 위해 폭력까지 휘두르기 때문이다. 언니 에밀리(해리엇 다이어)의 도움으로 탈출한 세실리아는 경찰인 친구 제임스(알디스 호지)의 집에서 잠시 머무른다. 얼마 뒤, 에이드리안이 자살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세실리아는 그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세실리아는 에이드리안이 자신의 주변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직감한다. <쏘우> 시리즈부터 <인시디어스> 시리즈까지 제임스 완의 호러 프랜차이즈의 각본과 제작을 맡고, <쏘우> 1편을 비롯한 몇몇 영화에서 주연을 맡기도 했던 리 워넬의 신작 <인비저블맨>은 <드라큘라: 전설의 시작>과 <미이라>의 실패 이후 유니버셜의 ‘다크 유니버스’가 다시 출범함을 알리는 작품이다. 블록버스터의 성격을 띤 앞선 실패작들과는 다르게, <인비저블맨>은 블룸하우스와의 협업으로 제작비 700만 달러 가량의 저예산 호러영화로 제작되었다.

 소재가 ‘투명인간’인 만큼, 영화는 <미이라> 같은 작품처럼 화려한 스펙터클을 보여줄 필요도, 괴수나 다른 초능력자가 나오는 호러영화처럼 특수효과에 많은 돈을 들일 필요도 없다. 대신 영화는 주연을 맡은 엘리자베스 모스의 얼굴이 영화의 스펙터클을 담당한다.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에이드리언을 느끼는 세실리아의 얼굴과 제스처는 그 자체로 공포와 긴장감을 전달한다. 특히 그의 연기는 데이트/가정폭력과 스토킹 범죄의 피해자인 세실리아의 상황을 전달하며, 투명인간이라는 소재는 이를 강화한다. 에이드리안의 집에서 탈출한 후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세실리아의 상황은 잠시 집 밖으로 나갔을 때 그의 뒤로 지나치는 조깅하는 사람의 발소리가 강조된다던가,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움직이는 세실리아의 행동과 같은 방식으로 표현된다. 세실리아를 비추던 카메라가 패닝해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공간을 보여주는 것 또한 세실리아의 상황을 요약한다. 그의 공포는 보이지는 않지만 느껴지는 과거, 실재, 경험 등이 뒤따라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비저블맨>은 그러한 공포를 투명인간이라는 오래된 장르 법칙을 재해석한다. 

 영화는 중반 이후 다소 장르를 변화시킨다. 전통적인 호러-스릴러 문법을 따라가던 영화는 투명인간이라는 전통적인 SF 호러 소재를 기존과는 조금 다른 방식(광학 슈트)으로 변형시키고, 이를 활용한 액션 시퀀스를 몇 차례 선보인다. 리 워넬의 전작 <업그레이드>에서 선보인 것과 유사한 카메라 워크를 사용하는데, 투명인간이라는 소재 때문인지 전작보다 영화에 잘 붙는다. ‘다크 유니버스’의 초석을 다지기 위한 후반부의 플롯 트위스트는 영화를 깔끔하게 끝내진 못해도, 세실리아의 이야기를 따라온 관객들에게 적지 않은 쾌감을 제공한다. 아쉬운 지점이 없지 않으나, 엘리자베스 모스의 놀라운 원맨쇼와 투명인간이라는 소재를 흥미롭게 재해석한 이야기가 <인비저블맨>을 이끌어간다. 앞으로 제작될 다크 유니버스 영화(폴 페이그의 <어둠의 군단>, 엘리자베스 뱅크스의 <인비저블우먼> 등)가 어떤 영화가 될진 알 수 없으나, <인비저블맨>은 괜찮은 출발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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