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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r 01. 2020

베베 꼬인 큐피드의 화살을 쫓아가기

<엠마> 어텀 드 와일드 2020

 엠마 우드하우스(안야 테일러 조이)는 영국의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상류층 사람이다. 아버지(빌 나이)와 단 둘이 살고 있는 엠마는 작은 마을의 비좁은 사교계에서 여러 사람들을 중매해주는 것을 삶의 낙으로 삼고 있다. 21년을 살면서 크게 화가 나거나 괴로운 일이 없던 엠마 앞에 고아 소녀 해리엇(미아 고스)이 나타난다. 엠마는 해리엇을 마을의 목사 엘튼(조쉬 오코너)과 이어주려 하지만 쉽게 되지 않는다. 그 사이 미스 베이츠(미란다 하트)와 그의 조카 제인 페어팩스(앰버 앤더슨), 프랭크 처칠(칼럼 터너), 조지 나이틀리(자니 플린) 등의 마을 사람과 그들의 친인척들이 나타나고, 엠마의 중매는 점점 미궁으로 빠진다. 제인 오스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으며, 1997년 기네스 펠트로 주연으로 한 차례 영화화된 바 있으며, 1995년작 <클루리스>는 같은 원작을 미국의 고등학교로 장소를 옮긴 각색물이었다. 

 엠마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다. 그의 유일한 욕망은 큐피드처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것이다. 그 자신은 사랑의 화살이 그리는 궤적에서 벗어난 채, 그것을 지켜보는 것을 유희로 삼는다. 때문에 이 영화의 궤적은 어지럽다. 엠마와 해리엇을 필두로 엘튼, 프랭크, 나이틀리, 제인, 마틴(코너 스윈델스) 등이 제각기 엮이고 흩어진다. 엠마가 쏜 큐피드의 화살은 직선이나 포물선을 그리는 대신 주머니 속에서 꼬인 이어폰 마냥 뒤죽박죽이고, 심지어 어떤 화살은 보이지 않는다. 영화는 그 화살들 앞에서 자신의 중매가 더 이상 유희뿐이 아니게 된 엠마의 변화를 담아낸다. 엠마는 그 과정을 거치며 자신의 욕망을 더욱 뚜렷하게 인지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겨간다. 

 <엠마>를 짧게 요약하자면 어디선가 많이 본 영국 배우들이 우르르 등장해 짜증 나지만 귀여운 인물들이 복작거리며 각자의 짝을 찾아간다는 이야기이다. 카메라는 능숙하게 인물과 인물을 연결하고, 19세기 유럽의 풍경은 다소 단조로운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게 해 준다. 벡(Beck)이나 플로렌스+머신 등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해왔던 어텀 드 와일드의 경력은 서로가 원하는 바를 정확히 말하기보단 이런저런 방식으로 우회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최적화되어 있다. 그의 첫 장편영화임에도, <엠마>는 준수한 완성도를 보여준다. <더 위치>, <모건>, <23 아이덴티티> 등 주로 장르영화에 얼굴을 비춰온 안야 테일러 조이는 이러한 코스튬 드라마 또한 훌륭하게 소화해냄을 증명했고, 많은 이들이 이름은 잘 몰라도 다양한 영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봐왔을 많은 조연들 또한 자신의 몫을 준수하게 소화한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 중 뛰어난 편에 속한다 할 수는 없지만, <엠마>는 충분히 즐거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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