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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r 01. 2020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빈폴> 칸테미르 발라고프 2019

 2차 대전 직후의 레닌그라드, 전쟁에서 뇌진탕을 겪은 후 종종 몸이 굳는 후유증을 앓고 있는 이야(빅토리아 미로시니첸코)는 어린아이를 키우며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그러나 사고로 인해 아이가 죽는 일이 발생한다. 그리고 얼마 뒤, 전장에서 돌아온 이야의 친구 마샤(바실리사 페렐리지나)가 돌아온다. 마샤는 이야가 키우던 자신이 전장에서 낳은 아이가 어디 있냐고 묻지만, 이야는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야와 마샤는 병원에서 함께 일하며 살아간다. 2019년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감독상을 수상한 칸테미르 빌라고프의 <빈폴>은 전쟁의 상흔이 짙게 남아 있는 전쟁 직후의 러시아를 담아낸다. 빌라고프 감독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서 영감을 받아 영화를 제작했다고 한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똑같이 전쟁을 경험했으나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논픽션이다. 그만큼 영화는 이야와 마샤, 두 여성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전장에서 태어난 아이는 전장 밖의 도시로 무사히 거처를 옮기지만, 이야가 입은 전쟁의 상흔은 아이를 결국 죽음으로 몰아간다. 이는 전신이 마비된 채 병원에 입원한 병사 스테판의 아이들이 겪은 상황과 유사하다. 마샤는 다시 아이를 얻고자 군 간부의 아들 사샤와 섹스하지만, 마샤는 전쟁에서 입은 부상 때문에 불임이 된 상태이다. 마샤는 자신의 아이를 죽게 한 이야에게 자신의 새로운 아이를 낳아 달라 부탁하고, 마샤를 사랑하는 이야는 마샤를 지배하기 위해 제안을 수락한다. 두 사람은 그렇게 모든 것이 무너진 상태에서도 서로를 놓을 수 없는 기괴한 관계를 형성한다. 하지만 이것을 단순히 기괴함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이것은 전쟁이 앗아간, 생존권에서 재생산권에 이르는 여성의 다양한 권리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다만 영화가 이를 순조롭게 다루는 것에 성공했다고 말하기는 살짝 꺼려진다. 빈번히 등장하는 롱테이크는 이들이 겪는 상흔을 가시화하지만, 몇몇 롱테이크는 인물을 따라가는 데 급급하기만 하다. 마샤가 전차에서 내려 군중을 뚫고 전차에 치인 사람을 확인하러 가는 장면이 그렇다. 이야가 마샤의 제안을 받아들여 병원의 남성과 섹스를 나누는 장면이라던가, 그를 다시 찾아가는 장면, 공중목욕탕 장면 등은 여성들이 전후에 겪는 고통과 여성의 신체를 남성적 시선으로 스펙터클화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그럼에도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빌라고프 감독의 발언은 영화 내적으로 유효하다는 점이 <빈폴>의 장점이다. 어떤 지점에선 책을 읽는 것이 더욱 좋지 않을까 싶지만, 이 영화를 함께 보는 것도 흥미로운 경험이 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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