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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r 09. 2020

<찬실이는 복도 많지> 김초희 2019

 영화 프로듀서 찬실(강말금)은 자신이 오랜 기간 함께해온 지 감독(서상원)의 신작 <뒷산에 살리라>의 작업에 들어간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 고사를 지내고 감독, 스탭, 배우들과 뒤풀이를 하던 중, 지 감독이 갑자기 쓰러져 사망한다. ‘유일무이한 예술감독’과의 작업만을 이어가던 찬실은 “그런 영화는 어느 프로듀서나 붙어도 상관없다”는 이유로 일자리를 잃게 된다. 직업도, 집도, 돈도 없는 찬실은 친한 배우 소피(윤승아)의 집에서 가사도우미 일을 하고, 어느 할머니(윤여정)의 산동네 집에 세 들어 살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찬실은 소피의 불어 과외를 해주는 단편영화감독 영(배유람)을 알게 되고, 자신을 <아비정전>의 장국영이라 주장하는 한 남자(김영민)가 그의 앞에 불쑥 나타나기도 한다. 아무것도 없는 찬실의 곁에는 이런저런 사람들이 있다. 

 <우리 순이>, <산나물 처녀> 등의 단편영화를 연출해온 김초희 감독은 원래 홍상수 감독 영화의 프로듀서였다. 그는 <밤과 낮>부터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까지, 2008년부터 2015년까지 홍상수와 함께 일했다. 물론 홍상수 영화의 크레딧에서 김초희라는 이름을 찾을 수는 없는데, 김초희는 그가 연출을 할 때 사용하는 이름이며 홍상수 영화에는 ‘프로듀서 김경희’로 이름이 올려져 있다. 그의 첫 장편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암전된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쇼팽의 ‘장송행진곡’과 함께 술을 마시는 찬실과 지 감독, 그리고 여러 사람들을 보여준다. 영화의 오프닝 크레딧과 술자리가 번갈아 나오다 지 감독은 죽는다. 김초희는 영화의 시작부터 프로듀서 찬실과 오랜 시간 함께 일해온 ‘유일무이한 예술감독’을 죽이고 시작한다. 좁은 화면비에서 시작한 영화는 <찬실이는 복도 많지>라는 제목이 등장함과 함께 2.39:1의 넓은 화면비로 열린다. 홍상수의 영화, 혹은 극 중 찬실이 좋아하는 감독으로 꼽은 (그리고 김초희 감독이 인터뷰를 통해 좋아한다고 밝힌) 오즈 야스지로 영화와 유사한 느낌을 주는 오프닝 크레딧은 영화 중반까지의 스타일을 규정한다. 소피의 집으로 향하던 찬실은 어느 외국인 여성이 멍하니 바라보던 배나무를 멍하니 바라본다. 느릿한 패닝의 리듬감이라던가,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공간으로 향하는 찬실을 잡는 카메라는 홍상수 영화의 리듬을 복제한다. 찬실과 영이 술을 마시는 장면에서 찬실은 “우리 마치 오즈 야스지로 영화 같아요”라고 말하고, 그 장면의 구도는 <만춘>이나 <동경 이야기> 속 술자리 장면과 같다. 찬실만이 볼 수 있는 유령 같은 존재인 장국영은 단지 옷차림만 <아비정전>의 맘보춤을 추는 장국영을 따라한 것이 아니다. 그는 “3시에 누군가를 만나러 가야 한다”며 사라지기도 한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김초희 감독이 애정을 품어온 영화들에 대한 러브레터임과 동시에, 그 ‘판’을 떠나온 자신의 상황에 대한 푸념의 기록이다. 갑작스레 일을 잃은 찬실의 모습은 김초희 감독의 모습과 닮았다. 부산 사투리가 섞인 찬실의 말투는 김초희 감독의 실제 말투를 따라한 것이라고 한다. 찬실이 세 들어 사는 집의 할머니는 일찍 죽은 자신의 딸이 쓰던 방에 있는 물건들을 자유롭게 써도 된다고 허락한다. 찬실은 그 방에 있던 카세트 플레이어를 들고 나와 속에 들어 있는 테이프를 들어본다. 1992년부터 1995년, 2003년부터 2004년까지 당시 씨네필들이 즐겨 듣던 [정은임의 FM 영화음악]의 한 대목이 흘러나온다. 게스트로 출연한 정성일 평론가는 <베를린 천사의 시>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집시의 시간>을 언급한다. 찬실은 자신을 영화의 길로 빠져들게 했던 것들,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 <집시의 시간>, 장국영 등을 떠올린다. 버리려던 [키노] 잡지들과 DVD, 비디오들을 다시 자신의 방 안으로 옮기고, 노트북을 열어 각본을 쓰기 시작한다. 

 김초희 감독은 자신의 삶을 복기하듯이 영화를 만들어 나간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찬실의 이야기는 우울하거나 슬프지만은 않다. 찬실은 집은 잃었지만 집주인 할머니를 알게 됐고, 이루어지진 못하지만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을 다시 느끼며, 돈은 없지만 자신의 상황을 도와줄 수 있는 친구가 있다. 특히 영화 프로듀서라는 직업은 잃어버렸지만 영화에 대한 애정을 되살리게 된다. 그 과정에 끼어든 (찬실이 싫어하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를 좋아하는) 단편영화감독 영과 어디선가 나타난 유령 장국영은 찬실의 안과 밖에서 그의 내적 재건을 돕는다. 그런 의미에서 유령 장국영은 스스로 목표라 여기던 영화가 사라진 찬실의 내면에서 튀어나온 찬실 스스로의 목소리에 가깝다. 

 다만 그 과정이 매끄럽지는 않다. 홍상수 영화처럼 시작한 영화는 점점 찬실의 ‘복’들을 보여주며 진행되는데, 이 과정이 다소 덜컹거린다. 집주인 할머니-장국영이 등장하는 장소와 소피-영이 등장하는 장소는 찬실의 집과 소피의 집이라는 두 공간으로 분리되어 있다. 두 공간 사이의 괴리감은 어느 정도 의도된 것이나, 그 사이를 오가는 찬실의 시간은 종종 길을 잃는다. 영화에 대한 찬실의 애정을 복기시켜주는 요소들은 적재적소에 놓여 있다기보단 40대 씨네필들의 이야깃거리처럼 여기저기서 산발적으로 튀어나온다. 그러한 요소들은 어느 정도 코미디로 기능하지만, 동시에 어느 정도 산만함을 만들어낸다.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성별 반전시킨 전작 <산나물 처녀>가 지닌 단점이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서도 드러난다. 다만 그러한 단점들을 어느 정도 상쇄시키는, 한국영화에서 보기 드문 건강한 자기애가 드러난다는 점에서 김초희 감독의 다음 영화를 기다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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